[책&생각] 정희진은 왜 샛길로 빠지는 말하기를 할까

구둘래 기자 2024. 9. 2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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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는 구도자와 다를 것 없다.

'듣다가 죽어라'고 말해오고 '대화의 불가능성'을 역설해온 철학자에게 '말하기'는 줄곧 관심의 대상일 것이다.

"마치 서툰 무당의 일인극"처럼 말하는 정희진은 입성이나 표정이 풍부하다.

"언제나 표현에 소심하고 조심하며 또한 견결"하다는 구도자의 말이기에 끝까지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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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시인 김영민의 열 차례 강연 묶어
현실 세계의 것들로 질문 던지며 철학 사색
김영민 선생의 천안 ‘장숙’ 강연 모습. 글항아리 제공

조각난 지혜로 세상을 마주하다
김영민 지음 l 글항아리 l 1만6000원

철학자는 구도자와 다를 것 없다. 매일 쓰고, 먹을 것을 몸이 알고, 애쓰지 않아도 고기를 낚으며 이를 자랑하지 않는다. 경험, 세상사, 인용구 등 말하는 걸 받아 써도 생각해온 바대로 옮겨진다. 시인·철학자 김영민의 강연집 ‘조각난 지혜로 세상을 마주하다’는 2023년 10월부터 올 7월까지 서울 서촌 ‘서숙’에서 열 차례 한 강의를 묶었다.

‘듣다가 죽어라’고 말해오고 ‘대화의 불가능성’을 역설해온 철학자에게 ‘말하기’는 줄곧 관심의 대상일 것이다. 인문학에 대한 태도를 말하기 위해, ‘말하기’ 방식의 대표주자로 뽑혀 나온 사람이 셋이다. 여성학자 정희진, 과학자 박문호, 작가 유시민. 첫 번째 강의는 이들 각각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된다. 정희진은 왜 늘 샛길로 빠지는 말하기를 할까. 박문호는 왜 인문학을 물로 볼까. 유시민은 왜 스스로 인문학자연하는 것일까.

“마치 서툰 무당의 일인극”처럼 말하는 정희진은 입성이나 표정이 풍부하다. 여느 여성 지식인과도 다르다. 남성-가부장적 화법과 떨어져 ‘수행적 표현주의적’ 화법으로 ‘몸을 끄-을-고 말하는’ 발화다. “우리 시대의 강자들에게 비소통의 저항적 행위로 읽혀야 마땅할지 모른다.” 박문호의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글의 첫 문장부터 나와 있다. 박문호는 기억의 천재다. 그는 거의 모든 것을 암기하고 체계적으로 지도화하므로, 질문하고 설명하는 인문학이 들어설 틈이 없다. 유시민은 ‘변신의 권도’가 작용해서다. 투사·사회과학자·정치인·관료로서 길을 충실하게 걸어온 그가 변신을 꾀한 데는 ‘인격적 이유’도 있다고 어림한다. 인간으로서의 성숙이라는 과제를 붙들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이다.

시인·철학자 김영민. 글항아리 제공

또 다르게 불려 나온 세 명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 노회찬 전 국회의원이다. 그는 셋의 희유한 공통점으로 경상남도 출신의 정치인을 뽑아낸다. 소시민적 출신과 성장배경, 진보정치에의 헌신도 공통점이다. 그는 “이 세 정치인의 꿈과 행태, 심지어 그들의 정치적 진보성까지를 외려 ‘비루한 것’으로 매도하고 모멸하는 역사사회적 문화가 있다”고 본다.

위의 것에 더해 사랑의 실패, 일본의 ‘법고창신’ 정신, 보살행으로서의 대화법 등 강의의 주제는 철학인문강의가 꽤 호황이었을 것으로 짐작하게 한다. 말하는 대로 말해도 세상 이치에 벗어나는 길 없는 경지(공자)는 ‘현실 철학’을 이야기하는 순간에 가끔 깨진다. “언제나 표현에 소심하고 조심하며 또한 견결”하다는 구도자의 말이기에 끝까지 듣는다. 제목의 ‘조각난 지혜’는 “종교의 전 포괄적 체계성이나 대학의 오연한 무관심에서 벗어나, 마치 절름발이 자라처럼 부지런히 나아갈 뿐이니, 이를 일러 ‘조각난’ 길이라 부른다”는 그의 ‘공부길’에 대한 신념에서 나온 말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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