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자본주의에 예속되지 않는 건축을 위하여
자본주의 맹신 주류 사회 비판
봉헌의 등불, 진실의 등불…
기독교적 가치관서 원칙 도출
건축의 일곱 등불
존 러스킨 지음, 고명희 옮김, 정남영 해설 l 부북스 l 2만원
19세기 영국의 예술평론가이자 사회비평가 존 러스킨이 1849년 출간한 ‘건축의 일곱 등불’은 당대 영국의 건축 현실은 물론, 자본주의를 맹신하는 주류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은 책이다. 러스킨에게 건축은 단지 인간의 몸에 봉사하는 사물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 건강함, 힘 그리고 즐거움에 기여”하는, 즉 정신적 산물이다.
그는 ‘서설’에서 건축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불완전하거나 제한된 관행이 행해지는 동안 건축에 뒤죽박죽 들러붙은 편파적 전통들과 도그마”를 폐함은 물론 “건축의 모든 단계와 양식에 적용할 수 있는 저 거대한 올바른 원칙들”을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노력의 결과 만들어진 법칙들은 “지식의 증가나 결함에 의해 공격을 받거나 무효화될 수 없을 정도”의 견고함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게 러스킨이 정의한 ‘건축의 일곱 등불’은 각각 건축물의 특유함을 보여주며, 끝내 “인간 행동의 전체 지평을 포함”할 정도로 광대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 법칙을 도출하기 위해 러스킨은 기독교적 가치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신을 기쁘게 하는 목적”에서 방식을 찾아냈다는 점이다. 그는 “신의 의지는 유한한 권위나 지성이 아니어서 사소한 일들로 교란될 수 없다”면서 건축에 있어서도 “가장 일상적으로 신의 계시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경건하게 활용하는 것”이라고 명토 박는다. 러스킨이 제시한 첫 번째 등불은 ‘봉헌의 등불’이다.
건축은 단순한 ‘짓기’(building)가 아니다. 세운 건물이 안정적이라고 해서 짓기가 건축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당대 건축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생산하기 바라는” 사고가 우세했다. 이런 세태에 맞서 러스킨은 봉헌의 정신, 즉 “어떤 것이 유용하거나 필요해서가 아니라 오직 귀중하기 때문에 그 귀중한 것을 바치는 정신”이 건축에 깃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만 “모두를 위한 영원한 기쁨”이 될 수 있는 “건축 예술”이 대중의 삶 속까지 파고들 수 있다.
모든 원칙이 그렇지만, 러스킨이 제시한 두 번째 원칙 ‘진실의 등불’에는 당대 사회 세태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담겨 있다. 러스킨에 따르면 세상에 가장 많은 해악을 끼치는 것은 “비방과 배신”이 아니라 “거짓말”이다. “번지르르하고 부드러운 말투의 거짓말, 호감을 주는 오류, 열의를 가장하는 정당인의 거짓말, 인정 많음을 가장하는 친구의 거짓말, 그리고 각자가 자신에게 무심코 하는 거짓말” 등이 인류에게 어둠을 몰고 온다.
그 거짓말이 건축에는 “상상력”이라는 이름으로 틈탈 수 있다. 물론 건축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은 상상력이지만 재료를 속이지 않는, 천연의 것을 제대로 사용하는 등 절제의 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건축에는, 그것이 꼭 고결함을 담보하지는 않지만 규모, 즉 크기가 주는 힘이 있다. 풍부한 재료 역시 그런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그 “널찍함과 옹글짐”이 건축의 모든 것은 아니다. “영국에서는 더 큰 돌을 놓아야 하거나 더 단단한 죔쇠를 달아야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 러스킨은 도시 광장을 빛내기 위한 건축보다 “은둔자 정신의 힘보다 더 순수하고 못지않게 평온한 힘의 원천”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 번째 등불인 ‘힘의 등불’을 밝혀야 하는 이유다.
러스킨이 상정한 네 번째 등불은, 어쩌면 모든 등불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될 수도 있는 ‘아름다움의 등불’이다. 러스킨은 아름다움을 발명의 대상이라고 봤다. 물론 “가장 아름다운 형태들과 생각들은 자연물에서 직접 가져온 것들”이어야 한다. 모든 건축가가 자연의 이미지를 건축에 활용하고자 노력할 때, 그것을 바라보는 대중 역시 “비슷한 종류의 지적 능력을 발휘”하여 건축물에 대한 생각, 즉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스킨은 이를 “이 자연의 이미지는 찾아낸 사물의 인상이 기록되거나 각인된 것이며 형상화된 탐구 결과이자 생각의 육화된 표현”이라고 정의한다. 러스킨에게 있어 건축은 “생명력(활력)의 충만 정도에 비례”해서 고결함을 평가받는다. 건축을 포함한 사물이 “최고 등급의 창조적인 생명력”을 담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의 지적 활력”을 간직하는 것이다.
건축에 있어 ‘생명력의 등불’은 “살아 있는 건축물”로 구현된다. 살아 있는 건축물은 “구석구석마다 감각이 배어 있고”, 건축적 필요가 있을 때마다 “단호한 변화를 주어 그 필요에 맞추는” 모험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 생명력은 상상력을 추동하고, 그로 인해 “사회의 진정한 의미의 부”도 향상될 수 있다.
여섯 번째 등불인 ‘기억의 등불’은 인간 역사에 대한 헌사와도 같다. 인류는 건축물 없이도 “살고 예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건축물 없이는 “기억할 수” 없었다. 러스킨은 건축물이 기억이라는 “신성한 영향력의 집중처이자 수호자”라고 주장한다. 건축물은 건축자들의 힘, 즉 “손솜씨, 지적 능력, 마음, 그들이 부여한 생명력”만을 기억하는 장치가 아니다.
그것이 “인간에 의해 사용되는 동안 줄곧 인간의 삶과 교감”을 기억하고, 그것에 가해진 “자연력의 작용” 또한 기억한다. 이 모든 기억이 결국 생명력의 연장선상이라는 점에서, 기억은 건축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의 흔들리지 않는 법칙 중 대미는 ‘복종의 기둥’이 장식한다. 건축을 포함한 모든 예술은 자연의 힘과 인간의 힘이 만나 합치를 이루는 것, 다시 말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복종”해야만 그 가치를 드높일 수 있다.
여기서 복종은 예속이 아니다. 러스킨에게 복종은 “자유로움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그래야만 “청량함, 유쾌함, 완벽함”이라는 에너지들의 절제를 이룰 수 있다. 러스킨은 ‘건축의 일곱 등불’ 곳곳에서 당대 영국 사회에 대한 예리한 비판의 시선을 던지며, 자본주의라는 괴물이 건축을 포함한 예술을 어떻게 악화시키고 있는지 포착한다. 그 시선은 단지 19세기 중후반에 국한되지 않는다. ‘건축의 일곱 등불’에는 온갖 불필요하고 불가해한 것으로 가득한 오늘 우리 시대 건축과 사회를 향한 신선한 통찰이 담겨 있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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