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에 쫓겨 닿은 땅…한국인은 기후난민이었다 [책&생각]

구둘래 기자 2024. 9. 2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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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분석 통해 3만년 역사 사피엔스의 이동 추적
중국 랴오허 지역 거쳐 간 농경민과 유목민 한국인 형성
기온 상승으로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초간빙기 올 것
랴오허 문명의 정수라고 일컬어지는 훙산문화의 비취 공예품. 소머리 모양의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의 기조에서 훙산문화의 재조명에 나섰는데, 유전자 분석 결과 훙산문화인과 가장 가까운 현대인은 한국인이었다. 바다출판사 제공

한국인의 기원
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기후가 만든 한국인의 역사
박정재 지음 l 바다출판사 l 2만4800원

“기근의 참혹이 올해보다 더 심한 때가 없었고 남방의 추위도 올겨울보다 더 심한 때가 없었습니다. 굶주림과 추위가 몸에 절박하므로 서로 모여 도둑질을 하고 있습니다.”(현종실록 12년, 1671년 음력 1월11일) 전라도에 큰비가 연일 내려 들판이 시내가 되었다. 큰물 보고는 경상도 충청도 경기 함경도로 이어진다. 6월에 우박도 떨어졌다. 봄여름 큰물에 농작물이 자라지 못하고 남은 농작물은 메뚜기 떼 차지였다. 이 시절을 겪고 2년 새 제주도의 인구는 4할이 줄었다. 1670년 ​경신대기근 뒤에는 추위가 닥쳤다. 이때의 추위는 세계적이었다. 유럽에서는 소빙기 중 첫 번째 극소기에는 흑사병이 창궐했고, ‘마운더 극소기’에는 30년 전쟁, 마녀사냥 등이 벌어졌다. 중국에서는 명나라와 청나라 교체기였다.

하지만 지구에 20만년 전부터 살아온 사피엔스는 이보다 더한 혹한을 수없이 겪었다. 털옷과 거주지로 추위를 가릴 수 없고 먹을 것조차 동났을 때 어떻게 해야 했을까. 17세기의 정주하던 사피엔스도 이러한데, 집도 나라도 없던 고대의 사피엔스의 선택은 명확하다. 살 곳을 찾아 움직이는 것이다. 박정재 서울대 교수(지리학)의 ‘한국인의 기원’(바다출판사)의 주제는 단순하다. 고인류 역사에서 기후는 이동을 결정하는 첫째가는 요인이다. 기후의 변화를 짚으면서 인류의 이동을 살피면 동쪽 끝 한반도에 모인 유전자를 알 수 있다. “주기적인 기후 변화가 한반도의 인구 집단, 이른바 ‘한민족’을 만들었다.” 이를 위해 책은 두 가지 방향으로 움직인다. 하나는 기후를 추적한다. 기후 분석에 고대 유전자의 분석을 맞춰본다.

제주도 하논은 한반도 유일의 마르형 분화구로 중요한 고기후 자료들이 생산됐다. 바다출판사 제공

유전자 분석은 최근 인류학적으로 눈부신 성과들이 나온 배경이다. 1980년대 후반 미토콘드리아 분석을 통해 ‘인류의 이브’가 사하라 이남에 20만년 전에 살았다는 것을 특정한 뒤, 미토콘드리아와 Y염색체를 분석하던 데서 더 나간 ‘전장 유전체 분석’이 2009년 시작되었다. 분석의 성과는 그때까지의 가설들을 뒤집으며 화제가 되었다.

기후에는 태양의 흑점 변화, 타원형 지구의 세차운동, 엘니뇨를 포함한 북대서양 열염순환 등이 관여한다. 이런 요소들이 합쳐져 새겨지는 중요한 역사적 나이테는 마지막 빙기 최성기(25ka~18ka, 1ka는 1천 년 전, 기준은 1950년), 기후의 변화가 심각했던 만빙기(~11.7ka), 홀로세 기후 최적기 이전(8.2ka)과 이후(4.2ka), 청동기 저온기(3.2ka), 철기 저온기(2.8ka)다. 마지막 빙기 최성기에 사피엔스는 아프리카를 떠나 북·동·서 세 방향으로 나갔으며 네안데르탈인과 만나 유전자가 교잡했다. 만빙기 급격한 기후 변화는 인류의 이동을 급발진시켰다. 한국에는 청동기 저온기와 철기 저온기에 이민족이 당도했다.

그렇게 하여 맞춰본 ‘한국인의 기원’은 누구일까. 한가위에 방영한 ‘세계테마기행’(EBS). 내레이터는 고무공장에서 일하는 미얀마 출신 몽족을 만난다. 일찍 결혼해 손자가 있는 47살의 고무공장 사장은 손자에게 “맘마”라며 먹이를 준다. 내레이터는 “한국어랑 같다”며 반가워한다. 미얀마의 몽족은 몽골 유래 소수민족으로, 몽골족은 아시다시피 언어의 유사성과 닮은 생김새로 인해 한국인이 유래한 민족으로 여겨졌다. 언어적 분석이 들어맞지 않은 건 일본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우면 대화가 가능한 스페인-이탈리아 등과 달리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전자 분석에 의하면 한국인은 언어가 기원하는 ‘몽골인’보다는 북중국인과 비슷하며, 말이 통하지 않는 일본인과 동질성이 높다.

저자는 원시 일본어를 쓰던 민족이 먼저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고, 이후에 원시 한국어를 쓰던 이들이 한반도에 도착해 정착했다고 추론한다. 한국은 70%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이주민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땅이었다. 이런 땅으로 밀어 넣은 힘 역시 기후다.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모두 기후 난민의 후손인 것이다. 유전자 분석을 바탕으로 언어 유래를 추정하면서, 한국인과 일본인의 기원을 구성해보자. 4200년 전 황허강 유역 기원의 농경사회인이 원시 일본어를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농지를 찾아 랴오허 지역으로 모여들었는데, 3200년 전 추위가 몰아치자 북쪽으로부터의 이민 물결에 밀려 금강 중하류까지 내려온다. 이들은 이곳에서 한반도 청동기를 대표하는 송국리 문화를 형성한다. 이후 기후가 악화되자 이들의 대부분은 더 남쪽으로 이동하여 바다를 건너 일본 규슈까지 진출한다. 이들이 일군 것이 야요이 문화이며 이들은 일본에 자리하고 있던 조몬 선조 집단을 위아래(오키나와와 홋카이도)로 밀어낸다. 송국리 이후 농경문화가 진공 상태가 된 한반도에, 2300년 전 추위에 쫓겨온 이들이 원시 한국어를 말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같은 랴오허 지역의 철기 문화 유목민으로, 연나라의 명장 진개를 앞세운 연나라에 쫓겨 랴오허강을 건넜다. 고조선 사회는 이 유목민으로 인해 혼돈에 빠져든다.

한반도 농경 문화를 대표하는 송국리 민무늬토기. 송국리 문화 이후 한동안 한반도에는 농경문화가 부재했다. 바다출판사 제공

책을 관통해 역사를 추동하는 것은 기후 중에서도 추위다. 그렇다면 인류세 이후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높아지고 있는 ‘기온 상승’은 그만큼의 역할을 할까. 소빙기가 끝난 1850년 이후 지구는 완만하게 기후가 상승하는 온난기에 들어섰다. 문제는 변화의 양상이다. 산업혁명 뒤 1950년 이후의 온도 상승은 너무나도 급작스럽다. 저자는 “지구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초간빙기로 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인의 기원’을 쓴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바다출판사 제공

현재 지구의 온도는 마지막 빙기 최성기 평균 온도보다 9도 높다. 그사이 지구는 주기적인 한랭화로 자기조절을 해왔다. 온난기이지만 교란이 커지면 지구 생태계는 임계점을 넘게 된다. 그것을 과학자들은 4도로 추산한다. 4도가 오르면 저위도에 살 수 있는 지역은 없고, 한반도는 치열한 생존 경쟁의 장이 될 것이다. 3만년 역사를 훑은 저자는 기시감이 든다고 말한다. “마치 과거 추위를 피해 북방에서 한반도로 들어왔던 사람들이 마지막 빙기 최성기 이후 온난화로 환경이 빠르게 변하자 한반도를 떠나 북방을 향해 돌아갔던 상황을 연상시킨다.” 한국의 기온 상승은 세계보다도 더 가파르다. 산업화 이후 세계는 1.1도, 한국은 1.6도가 올랐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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