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비가 매일 150번 진흙을 나르는 동안 꾸는 꿈 [책&생각]

한겨레 2024. 9. 2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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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고 모든 것을 사랑하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뉴스를 슬쩍 보는 것만으로도 그런 마음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는 동고비의 모든 것이 영원히 마음에 남은 사람으로서, 기나긴 시간 딱따구리는 둥지를 짓고 동고비는 그 둥지가 버려지기를 호시탐탐 노리며 진흙을 바르는 일이 계속되기를 원했다.

그런 세상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는 17년 아니라 170년이라도 동고비가 진흙을 나르는 것을 세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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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비의 시간
생명 사랑으로 이어진 17년의 기록
김성호 지음 l 지성사(2024)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고 모든 것을 사랑하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뉴스를 슬쩍 보는 것만으로도 그런 마음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살다가 갑자기 경이로움을 주는 무언가를 만나면 다시 사랑의 마음이 샘솟고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추석날 밤 열두시에 달무리를 화환처럼 두른 신비로운 슈퍼문을 봤을 때도 마음이 설렜고 동고비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랬다.

딱따구리가 오래된 나무, 죽어가는 나무에 둥지를 만들면 그 둥지는 원앙, 다람쥐, 하늘다람쥐 등 여러 동물이 둥지로 쓴다. 딱따구리는 자신이 할 일을 하면서도 다른 생명체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내가 롤모델로 삼고 싶은 동물이다(그런데 알고 보니 자연에는 그런 존재가 수두룩하다. 아니 모두 그런 것 같다). 딱따구리는 아침에 둥지를 떠나면 해가 져야 돌아온다. 그새 딱따구리 둥지를 차지하려는 동물들의 각축전이 벌어진다. 그중에 동고비라는 작은 새도 있다. 동고비는 딱따구리 둥지를 그냥 쓰지 않고 리모델링을 한다. 어떻게? 입구에 진흙을 발라서. 진흙을 날라 둥지를 좁히는 일은 암컷이 담당한다. 수컷은 암컷이 둥지를 짓는 동안 쉴 새 없이 소리를 내서 경계를 담당한다.

동고비가 둥지를 짓는 어느 하루에 관한 근무 일정표가 있다. 동고비 암컷은 해가 떠오르면 진흙을 나르기 시작해 해가 지고 일정을 마치니 대략 12시간 넘게 일을 한다. 50분 일하고 10분을 쉰다. 진흙을 가져오는 계곡 주변에서 둥지까지 거리는 50m, 왕복하면 100m, 하루에 150번을 오갔으니 15㎞를 비행한다. 진흙 마를 날이 없이 일한 해 질 녘의 암컷 동고비는 온몸이 진흙범벅인데다 초췌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이 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동고비가 다져놓은 진흙이 다 떨어져 나가고 없어진 것이다. 대체 누가 그런 일을? 둥지의 주인인 청딱따구리가 그랬다. 청딱따구리가 동고비 진흙 둥지를 허무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 놀라운 것은 동고비의 태도다. 마치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어제와 같은 일을 다시 시작한다. 언제까지? 딱따구리가 둥지를 포기하고 다른 둥지로 떠날 그날까지. 물론 그날은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올 수도 있다. 시시포스의 지옥이 동물에게도 있을 줄이야. 나는 이 이야기를 동고비와 함께한 17년의 기록을 적은 ‘동고비의 시간’이라는 책에서 봤다.

이 책의 저자 김성호 교수는 부지런하고 간절하게 사는 친구로 동고비를 따를 자가 없으며 지칠 줄 모르는 열심의 전형인 친구, 힘이 나게 하는 묘한 힘이 있는 새라고 동고비를 평했다.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무모할 정도로 끝없이 도전하는 동고비의 모습을 ‘동고비 정신’이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이 책도 동고비 정신으로 쓰인 것 같다. 그는 어떻게 그 작은 새가 콩알만 한 진흙을 150번 나르는 것을 세고 있었을까? 이외에도 그가 알려주는 디테일은 수두룩하다. 동고비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동고비의 모든 것이 영원히 마음에 남은 사람으로서, 기나긴 시간 딱따구리는 둥지를 짓고 동고비는 그 둥지가 버려지기를 호시탐탐 노리며 진흙을 바르는 일이 계속되기를 원했다. 생명이 있는 그대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했다. 그런 세상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는 17년 아니라 170년이라도 동고비가 진흙을 나르는 것을 세고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아주 단순한 문장으로 기록된 책에 꿈결 같은 느낌이 가득하다. 그리고 나는 동고비가 진흙을 나르는 봄날 아침처럼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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