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경제 살리고 인구 늘릴 열쇠”…11개 시·도 ‘분산특구 유치’ 참전
부산 '공급자원 유입형', 제주는 ‘신산업 활성화형’
전력 생산 급증하는 울산은 '전력수요 유치형'으로
경기·충북·전남 등 차별화 전략으로 유치경쟁 참전
[이데일리 윤종성 김형욱 기자] 정부가 분산에너지 특화지역(분산특구) 신청을 위한 세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전력 직접거래에 대한 세부 기준을 마련하는 등 제도 정비를 가속화하면서 분산특구 유치를 위한 지방자치단체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분산특구로 지정된 지자체는 독립적인 전력 생산·소비 계획을 세울 수 있고, 이르면 2026년부터 ‘지역 차등 요금제’ 도입도 가능해져 전력 사용량이 많은 첨단산업을 유치하는 데 유리할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인구감소, 청년일자리 부족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분산특구가 위기 극복 방안이 될 것으로 주목하는 분위기다.
19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해 보면 서울특별시를 제외한 16개 시·도 가운데 부산광역시, 인천광역시, 울산광역시, 제주특별자치도, 경기도, 강원도, 충청북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등 11곳이 분산특구 공모에 참여 의사를 나타낸 것으로 집계됐다. 그 중에서도 부산시, 울산시, 제주도 등 3곳이 가장 적극적이다.
‘분산에너지법’은 장거리 송전망에 기반한 중앙집중형 전력체계에서 비롯되는 문제점을 보완하고, 수요지 인근에서 전력을 생산해 소비가 가능한 ‘지산지소(地産地消)형’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한다. 최근 하남시가 지역 주민 반대 등을 이유로 한국전력(015760)이 신청한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및 증설 사업안을 불허 처분한 사례만 봐도 중앙집중형 전력체계의 한계는 극명하다.
이 분산에너지 활성화를 위한 핵심 제도가 바로 ‘분산특구’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내년 1분기 공모를 통해 상반기 중 분산특구 2~3곳을 지정할 계획이다. 분산특구에서는 분산에너지사업자가 전력시장을 거치지 않고 전기사용자에게 직접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특례가 적용되고, 이르면 2026년부터 발전소 주변의 경우 저렴하게 전기를 쓰게 하는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화’도 도입될 예정이다.
이 때문에 지방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고, 데이터센터 등 전력 다소비 산업의 지방 이전을 유인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모든 비수도권이 인구소멸, 청년일자리 부족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분산특구 지정을 통해 첨단업종 기업을 적극 유치해 인구유입 효과와 청년일자리 창출 등 지방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최근 산업부가 각 지자체에 발송한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가이드라인’을 보면,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은 △전력수요 유치형 △공급자원 유치형 △신산업 활성화형 등 세 가지 모델로 구분된다. 전력수요 유치형의 경우 지자체의 인센티브, 전력 직접거래 특례를 통해 전력을 싸게 공급해 기업들을 지역에 유치하는 형태다. 공급자원 유치형은 전력자립률 제고를 위해 분산에너지 발전 설비를 유치하는 형태이고, 신산업 활성화형은 분산자원과 첨단 기술을 연계해 새로운 사업모델을 발굴하는 유형이다.
부산시의 경우 강서구 에코델타시티와 주변 산업단지를 연계해 수요지 인근 도심에 ‘공급자원 유입형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2027년 준공 예정인 에코델타시티에는 이미 데이터센터 5개사가 입주해 있다. 향후 이 곳에는 반도체·이차전지 등이 추가 입주할 예정이어서 전력 수요가 급증할 전망이다. 부산시는 기저 전력으로 한전의 전력을 공급하고, 수소연료전지, 수소혼소 액화천연가스(LNG)열병합, 산업단지 지붕형 태양광 등을 분산에너지 자원으로 활용해 총 전력의 20~30%를 담당한다는 복안이다.
제주도는 ‘신산업 활성화형’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핵심은 ESS(에너지저장장치)와 같은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하는 전력유연성 자원이다. ‘저탄소 전원 중앙계약시장’ 제도를 도입한 제주는 출력제한 160MW 규모의 전지형 ESS를 구축 중이다. 하지만 ESS는 투자비, 안전성 문제로 확산에 한계가 있다. 이에 제주도는 △다양한 분산에너지원들을 연결해 하나의 발전소처럼 운영하는 VPP △발전 부문의 잉여전력을 저장·활용하는 기술인 섹터커플링 등 신사업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울산시는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분산에너지 활성화 조례’ 제정을 추진하는 등 강력한 분산특구 유치 의지를 보이고 있다. 울산시는 전력망 안정성 확보를 위해 ‘전력수요 유치형’ 모델로 분산특구 유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해 말 기준 울산의 전력자급률은 102.2%로,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올 하반기부터 가스복합발전소가 상업 운영에 들어가고, 내년까지 새울원전 3·4호기(2.8GW)가 준공되면 전력 공급이 크게 늘어난다. 전력 직접거래 특례를 통해 남아도는 전력을 싸게 공급해 기업들을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다른 지자체들도 분산특구 유치를 위해 분주하다. 경상북도는 ‘신산업 활성화형’, ‘전력수요 유치형’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신산업 활성화형’은 울진군 한울원전의 송전제약 전력을 이용한 P2G사업 등을 검토 중이고, ‘전력수요 유치형’은 경북 지역 산단에 저렴하게 전력을 공급해 기업을 유치하려는 전략이다.
전라북도는 △우선 전력 수요처 확보가 쉬운 군산국가산단·새만금산단에 특구를 유치한 뒤 △전력 계통 연계가 가능한 시·군에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 단지를 구축하고 △완주 수소특화 국가산단과 연계한 신에너지형 산단을 특구로 추진하는 3단계 전략을 세웠다. 경기도는 시흥~안산~화성~평택을 잇는 신재생 집적단지 구상을 통해, 충청북도는 한국동서발전, SK에코엔지니어링 등과 협약을 통해 유치전 참전을 공식화했다.
일각에서는 분산특구 유치가 지자체장들의 치적 쌓기나 전시 행정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분산특구의 성공 열쇠 중 하나인 ‘지역별 차등요금제’의 시행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이 기저에 깔려 있다. 하지만 이 보다는 인구 유출로 인한 지역경제 위축, 지방 소멸 심화에 대응하려는 지자체의 절박함을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희집 에너아이디어 대표는 “지방 소멸 문제는 단순한 지역 불균형 문제가 아니라, 국가 존립을 좌우할 과제이며, 현재의 중앙 집중적, 수도권 위주의 대응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다”며 “분산에너지의 활성화로 지역 단위에서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가 이뤄진다면, 지역 경제가 살고 인구가 늘어나 지방 소멸 위기를 완화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종성 (jsyoo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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