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땅속 500m서 영구 격리… 짓는 데 37년 걸려

대전=김진화 동아사이언스 기자 2024. 9. 2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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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고준위 방폐장 연구 현장
공학적 방벽재로 감싸 방폐물 저장… 땅 위로 나오는 데 10만 년 소요
핀란드, 내년 세계 첫 방폐장 가동… 한국, 6년 후 저장 시스템 과포화
“특별법 추진 등 건설 기반 마련을”
김진섭 한국원자력연구원 처분성능실증연구부 책임연구원이 연구용으로 제작한 원통형 사용후 핵연료 처분 용기 앞에 서 있다. 과학동아 제공
“실제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처분 용기를 3분의 1 크기로 제작한 겁니다. 부식에 강한 구리로 만들었죠.”

8월 말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 ‘공학적 방벽시스템 성능 실증 실험실’에서 김진섭 한국원자력연구원 처분성능실증연구부 책임연구원은 거대한 원통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지름 0.5m, 길이 2.5m로 여느 공장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원통이었지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를 담을 수 있게 개발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한국은 사용후핵연료를 인간의 생활권에서 영구적으로 격리시키기 위해 이를 처분 용기에 넣고 온도와 습기에 강한 벤토나이트로 감싸는 ‘공학적 방벽’ 설치 후 지하 500m에 묻는 심층 처분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지난 정부 탈원전 기조에서 보류됐던 신한울 원전 3, 4호기가 8년여 만에 건설 허가를 받아 원전이 에너지 정책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상황에서 사용후핵연료 처분과 관련된 연구와 의사 결정은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운 현실이 됐다.

● ‘미니’ 고준위 방폐장 연구 ‘착착’

이날 현장을 찾은 공학적 방벽시스템 성능 실증 실험실은 사용후핵연료의 영구 처분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2023년 구축된 400평 규모의 시설이다. 지하 500m에 심층 처분한 사용후핵연료 속 방사성 물질이 공학적 방벽재를 뚫고 지상으로 올라오는 데는 약 10만 년이 걸린다. 이 기간 동안 여러 번 반감기를 거치며 방사성 물질의 양과 방사능 농도가 감소해 결국 지상에서는 안전한 상태로 변한다.

한국에 건설하고자 하는 고준위 방폐장 조감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 용기에 넣은 뒤 지하 500m 위치에 매립할 계획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고준위 방폐장을 건설하는 지하 500m는 온도와 압력이 높고 지하수가 흐르는 까다로운 환경이다. 이러한 조건에서도 공학적 방벽재가 견딜 수 있게 설계하는 게 연구의 핵심이다. 공학적 방벽시스템 성능 실증 실험실에서는 악조건에서도 성능을 만족하는 방벽재를 개발하기 위한 여러 실험이 진행 중이다. 처분 용기와 완충재를 다양한 두께와 형태로 제작해보고 이들이 특정 열적, 수리적, 역학적 조건에서 어떤 특성을 보이는지 관찰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개발된 공학적 방벽재는 실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고준위 방폐장)에 적용되기 전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에서 추가 검증을 받는다. URL은 고준위 방폐장과 동일한 지하 환경을 재현해 처분 시스템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시설이다. 김 책임연구원은 “이 실험실에서 개발된 핵심 기술들을 2032년에 완공될 연구용 URL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연구용 URL 건설 부지는 올해 12월에 결정될 예정이다.

● 핀란드 내년 가동… 韓 당장 시작해도 2061년

한국과 마찬가지로 심층 처분 방식을 택한 핀란드는 내년인 2025년부터 세계 첫 고준위 방폐장인 ‘온칼로’를 가동할 예정이다. 단단한 화강암 지층 420m 깊이에 건설된 온칼로엔 최대 6500t 분량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10만 년간 봉인된다. 핀란드는 온칼로 가동을 위해 40여 년 전인 1983년부터 방폐장 건설 장기 로드맵을 발표하는 등 준비를 해 왔다. 2001년에는 올킬루오토 지역을 부지로 선정하고 2016년부터 올킬루오토 지역에 온칼로를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21년 12월 수립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한국에 고준위 방폐장을 건설하기까지는 총 37년이 걸린다. 부지의 안전성을 검증하고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부지 선정 절차에 13년이 걸리고, 처분 부지 내 URL을 지어 안전성을 한 번 더 검증하는 기간 14년, 실제 방폐장을 건설하는 데 10년이 걸린다. 지금 당장 시작해도 2061년에야 운영을 시작할 수 있는 셈이다.

한국은 1978년 원전을 가동한 이래 지금까지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를 모두 원전 부지 내 수조에 임시 저장해 왔다. 이대로 가면 2030년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임시 저장 시설이 순차적으로 포화된다. 저장 공간이 부족해지면 원전의 가동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현재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 시설의 저장 용량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임시 저장 수조에 칸막이를 설치하는 기술이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뭉쳐 있으면 온도가 상승해 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간격을 두고 저장해야 한다. 철제 칸막이 역할을 하는 조밀 저장대를 설치하면 사용후핵연료의 저장 간격을 좁혀 저장 용량을 2배가량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도 한계에 다다라 추가로 임시 저장 시설을 건설한 원전도 있다.

한국도 고준위 방폐장 건설 준비에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5월 30일 22대 국회에서는 지난 국회에서 폐기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특별법(고준위 특별법)이 재발의됐다. 고준위 특별법의 핵심은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원자력 발전에 쓰인 뒤 처분하는 것으로 온도와 방사능 농도가 높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에 준하는 물질이다.

대전=김진화 동아사이언스 기자 evolut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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