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뮤지컬의 소재 발굴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2024. 9. 20.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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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메이저 극장들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들의 제목을 주간 판매랭킹 순으로 나열한 것이다.

아니면 극장에서 공연을 보는 동안만이라도 한국이라는 현실을 떠나 판타지에 빠져들고 싶은 것일까.

현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금란방'을 공연하는 서울예술단이 최근 10년간 무대화한 대표 작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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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우(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킹키부츠' '젠틀맨스 가이드' '베르사유의 장미' '스파이' '하데스 타운' '리지' '시카고' '비밀의 화원' '살리에르'….

현재 메이저 극장들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들의 제목을 주간 판매랭킹 순으로 나열한 것이다. 극의 배경은 영국, 프랑스, 미국, 오스트리아 등으로 모두 외국 스토리텔링이다. 우리는 왜 다른 나라 이야기에 빠졌을까. 창작뮤지컬 대본 공모 본선에 올라온 응모작 중엔 한국을 배경으로 한 대본이 거의 없는 경우도 있다. 영화시장에서 볼 수 없는 K스토리 홀대현상이다. 한국에는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극장에서 공연을 보는 동안만이라도 한국이라는 현실을 떠나 판타지에 빠져들고 싶은 것일까.

이런 뮤지컬 제작환경에서도 꾸준히 한국의 스토리를 발굴해 무대화하는 공연제작 단체가 있다. 서울예술단과 에이콤이다. 현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금란방'을 공연하는 서울예술단이 최근 10년간 무대화한 대표 작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과 함께-저승 편'은 이승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다가 죽은 김자홍이 저승변호사 진기한을 만나 일곱 지옥의 심판을 통과하는 내용이다. 한국인의 전통적 내세관을 소재로 '착하게 살자'는 주제를 가진 이 스토리는 뮤지컬 '신과 함께-이승 편'으로 이어진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가상국가의 특권층 자녀들을 위한 프라임스쿨의 학교생활과 살인사건을 통해 악의 기원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내용으로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목적지상주의적인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나빌레라'는 정년퇴직 후 나이 70에 발레를 시작하려는 심덕출 노인이 가족의 반대에도 청년 이채록에게 발레를 배우면서 선한 영향을 주고받는 내용이다. 평범한 시민의 꿈과 노인의 치매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천개의 파랑'은 각종 휴머노이드 로봇이 보편화한 근미래의 한국, 조립자의 실수로 인지능력을 갖게 된 경마용 기수로봇 콜리가 자신의 파트너인 경주마 투데이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낙마해 부서진 후 벌어지는 이야기다. AI와 로보틱스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현대의 환경에서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들을 발굴하고 공연화한 서울예술단의 주미석 PD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소재를 찾아 끊임없이 읽고, 다니고, 만나는 것'이 소재발굴의 방법이라고 한다. 신선한 소재의 발굴은 결과적으로 관객층 확대로 이어졌다.

또 다른 방식으로 뮤지컬의 소재를 찾는 공연제작자가 있다. 에이콤의 윤호진 대표는 '항일 3부작'을 필생의 과제로 삼았다.

'명성황후'는 일본이 저지른 왕비 시해 만행을 당시 국내 정치환경과 국제적 역학관계 속에서 묘사한 작품이다. 1997년 대형 한국 뮤지컬로는 처음으로 미국 뉴욕에 진출해 현지 언론으로부터 "메가 뮤지컬 시대에 걸맞은 모든 것을 갖춘 공연 하나가 방금 막을 올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한국 뮤지컬의 수준을 확인한 작품으로 30주년 공연을 앞두고 있다.

'영웅'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하얼빈 의거를 그린 작품으로 역시 2011년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해 현지 언론으로부터 "브로드웨이 수준에 쉽게 도달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세종문화회관에서 15주년 공연을 마친 후 전국 순회공연 중이다.

'항일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은 '칼의 노래'다. 난중일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충무공 이순신이 백의종군한 시점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할 때까지를 이순신의 시점에서 다룬 김훈의 동명소설을 무대화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2025년까지 구체적인 공연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대관해주는 극장이 없어서다. '칼의 노래'는 홀대받아도 될 스토리가 아니다. 극장으로부터도, 관객으로부터도. 2026년엔 무대에 오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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