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이 만난 사람] “의대 증원 찬성하지만, 규모·방식 정답은 하나만 있지 않아”
한동훈 대표는 타이 없는 정장 차림이었으나 ‘키높이 구두’를 신은 건 아니었다. 대표 취임 후 전투력이 떨어졌다는 세평도 오해였다. 그는 어떤 질문도 피하지 않았다. ’한동훈은 술 안 마시는 윤석열, 싸가지 있는 이준석’이라는 말이 있다고 하자 “1년 뒤에도 그 말이 남아 있는지 보자”고 했다. 대선 출마 질문엔 즉답하지 않았으나, 노동·복지·격차 해소 등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분명해 보였다.
◇전투? 지금은 인내가 필요한 때
-취임 후 두 달이 돼 간다.
“저를 둘러싼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모르고 시작한 게 아니라 담담히 가겠다.”
-’잘 안 참는데 요즘은 참는다’고 했더라.
“지금은 인내가 필요한 때여서.”
-당대표 된 뒤 달라진 건가?
“조직과 진영을 이끄는 당대표는 해가 오랫동안 뜨지 않아도 달을 보고 가야 할 사람이라 그 책임감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야당 공격 호쾌히 받아치던 한동훈이 그립다는 사람도 있더라.
“항상 사이다만 마시고 살 수 있나? 사이다만 먹고 살면 이재명 대표처럼 정치하게 된다.”
-’생산적 싸움을 하겠다’고 했던데, 이재명 일극 체제로 결속한 거대 야당에 먹힐까?
“목소리 크고 상소리를 한다뿐이지 저 당도 뭐 되는 게 있나? 그들도 정치가 직업인 프로들이라 이 상황을 지속해서는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안다.”
◇노동·여성 문제 끌어안을 것
-취임 한 달이 넘었지만 당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이 꼭 장악돼야 하나? 당은 이견이 표출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원외 대표의 한계라던데.
“원내 대표를 안 해봐서 모르겠다.”
-’제3자 채 상병 특검법’이 지지부진한 게 그 때문 아닌가?
“채 상병 죽음은 보수의 이슈고, 보훈과 안보 이슈다. 보수가 더 컴패션(연민)을 갖고 해소해 줬어야 하는데 지난 1년간 실패했다. 의원들 설득해 당론으로 관철할 것이다.”
-당의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했더라.
“인구 구조도, 사람들 생각도 바뀌었다. 콘크리트 지지층 비율도 과거엔 우리가 3, 저쪽이 2였다면 지금은 2대3으로 바뀌었다. 스윙 보터(부동층 유권자)의 마음을 얻어야만 이길 수 있는 구조다. 더 유연하고 덜 배타적이어야 한다.”
-노동, 여성 등 진보의 의제도 품겠다는 뜻인가?
“노동, 여성이 왜 진보 의제인가? 현재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문제를 가장 많이 얘기하는 건 보수다. 법무 장관 시절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의 제안을 다 들어줬다. 신당역 스토킹 피해자 살인 사건 때 제일 먼저 달려갔고, 반의사 불벌죄를 폐지했다. 성범죄자 주거지를 제한하는 제시카법도 발의했다. 민주당은 뭘 했나?”
-격차 해소, 복지도 강조하더라.
“표는 복지에서 나온다. 보수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고 말하는데, 당장 현재가 힘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을까? 그러나 복지는 성장과 결합돼야 한다. 이재명 대표가 주장해 온 전 국민 25만원 지원은 망한 회사가 청산한 돈 나눠 갖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민주당은 반대한다.
“부자와 빈자, 1대99로 갈라치는 게 전가의 보도지만 민주당이 간과한 게 있다. 1400만 주식 투자자가 민주당보다 시장을 훨씬 잘 안다는 것이다. 1이 빠져나가면 나머지 99가 전부 망한다는 걸 그들은 안다. 금투세를 고수하면 민주당은 한동훈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싸우게 될 것이다.”
◇인간 한동훈, 정치인 한동훈
-8일 대통령 만찬에 초대받지 못했다.
“밥을 누구랑 먹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주요 현안에 다른 목소리를 내니 악화되는 것 아닐까?
“대통령실 생각이 민심과 동떨어져 있는데, 불편해지는 게 싫다고 편을 들어야 하나?”
-그래도 좀 숙이고 들어가시지.
“우리는 옳은 일을 해야 한다. 의료 개혁만 해도 많은 국민이 불안을 느낀다면, 정치는 뭐라도 해야 한다.”
-여야의정 협의체는 사실상 무산된 것 아닌가?
“될 때까지 설득할 것이다. 케네디도 ‘달에 가기가 어려우니까 가지, 쉬우면 가겠냐’고 하지 않았나.”
-12일 당정 협의회에선 한덕수 총리와 언쟁했더라.
“언쟁 아니고 예의를 지킨 토론이었다. 저는 의사 증원과 필수 의료 개선에 찬성하지만, 증원 규모와 방식에 정답이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관련 발언으로 대통령과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가 됐다고 한다.
“세상에 건널 수 없는 강은 없다.”
-검찰 수심위는 불기소 의견을 냈다.
“분명한 건, 부적절한 처신이었고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당대회때 당대표 후보 4명이 모두 말했듯이.”
-윤 대통령의 인간적 섭섭함은 이해될 것 같은데.
“대통령님이나 저나 긴 인생에서 아주 짧은 동안 국민 위해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 과업에만 집중해야 한다. 개인 간 문제가 뭐 그리 중요한가? 예전에 같이 일할 때도 서로 언쟁 많이 했다.”
-한동훈의 그런 태도를 싫어하는 보수도 있다.
“장관 때 진중권 교수가 한 방송에서 ‘한동훈이 180대1로 싸우면서도 이기는 이유는 이기는 자리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한 적 있다. 제가 사람들 생각에 더 옳고 공감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순간의 유불리를 위해 ‘가방을 받는 것은 괜찮다’고 말하진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면 힘들지 않은가?
“인간 한동훈에서 정치인 한동훈이 됐다고 내 눈을 갈아 끼우진 않을 것이다.”
-한때 이원석 전 검찰총장과 함께 윤석열 라인, 최측근이었는데.
“나는 누구의 라인이었던 적이 없다. 제 라인도 만들지 않았다.”
◇ 조성진보다 임윤찬?
-대선 주자 선호도에선 이재명과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하며 반응하지 않는 편이다. 제가 정치하는 것도 딱히 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통령 되려는 것 아닌가?
“나라가 잘되는 데 도움 되는 것, 그리스적으로 말하면 ‘공공선’에 도움 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총선에서 지고도 당대표에 출마한 것 역시 나라를 위해서였나?
“어려운 상황이지만 제가 나서는 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한때 ‘조선 제일검’ 소리를 들었다.
“저를 공격하는 이들도 제가 언페어(불공평)하게 수사했다는 사람? 없을 거다. 누구 청탁 받은 적? 더더욱 없다. ‘가혹했다’는 있을 수 있다. 사회적 강자에겐 더 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정치 보복성 수사를 한 적은 없다는 뜻인가?
“정치 검찰이었다면 조국 전 장관을 수사했겠나.”
-정치 검찰을 부정할 순 없지 않은가?
“어떤 집단을 획일화해 문제 삼는 건 위험하다. 예를 들어, 한동훈의 검찰과 이성윤의 검찰이 같을까? 검찰을 악마화해 파탄 내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간다.”
-남의 말을 경청하나?
“매일 아침·점심·저녁 약속을 잡는다. 비공개 행보도 많다. 얼마 전엔 서울 공대 학장님 뵙고 3시간 넘게 들었다.”
-서울 공대 학장은 왜?
“국민이 잘살려면 복지를 잘해야 하고, 복지를 위해선 성장해야 한다. 지금 시점에는 AI가 생산력의 폭발적 증대와 경제성장을 좌우할 거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정치가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과학자들과 얘기했다.”
-어떻게 지원해야 하나?
“전력 공급이 중요한 AI 시대엔 송전망 확충이 절대 필요하다. 성장을 위한 생산력 증대의 해법도 결국 AI 혁명에 있다. 파운데이션 모델, 클라우드 모델은 미·중 경쟁이 치열하니 우리가 끼어들기 어려울지 몰라도, 애플리케이션 같은 모델은 아직 기회가 있다고 본다. 정치는 인프라와 특화될 수 있는 기술을 지원해야 한다.”
-김어준 방송에서 ‘외계인’ ‘키높이’ 운운하며 한동훈 외모를 품평했더라.
“그렇게들 생각한다는데 제가 뭘 어쩌겠나?”
-쉴 때는 뭘 하나?
“음악 듣고, 넷플릭스 보고, 기타 치고 논다.”
-클래식도 좋아하던데, 즐겨 듣는 곡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이 공연 있으면 일부러 찾아간다.”
-조성진과 임윤찬 중엔 어느 쪽인가?
“음… 임윤찬.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듣고 ‘이건 뭐지?’ 했다. 임윤찬은 지루하지 않다.”
-책도 많이 읽을 테고.
“언젠가 읽겠지 하고 사 두는 책은 많다(웃음). 천병희 선생이 번역한 그리스 고전을 특히 좋아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크세노폰의 ‘페르시아 원정기’,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같은 책들.”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의 필독서인데, ‘조선 제일 정치인’이 될 생각인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뭐가 되겠다’는 생각은 내 머릿속에 없다. 출세도 할 만큼 했다. 다만 나는 비관적 낙관주의자다. 박찬욱 영화 중에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있다. 거기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라는 대사를 좋아한다. 현실은 희망으로 차 있지 않지만, 그래도 정치인은 국민이 희망을 느낄 수 있도록 대안을 세워 나가야 한다. 제가 가는 길을 지켜봐 달라.”
☞한동훈
1973년 서울 출생. 서울대 법대,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95년 사법시험에 합격, 서울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고, SK그룹 분식회계 사건에서 조국 사건에 이르기까지 특수통으로 활약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냈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거쳐 지난 7월 당대표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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