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주춤하자, 이시바·다카이치 역전론 급부상

도쿄/성호철 특파원 2024. 9. 20.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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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총리 선거 D-7, 중간 판세 분석
일본의 차기 총리 후보 중 한 명인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이 지난 12일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총재 후보 소견 발표회에 참석했다. /AP 연합뉴스

일본 차기 총리를 뽑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선거 구도가 출렁이고 있다. 초반 돌풍을 일으켰던 고이즈미 신지로(43) 전 환경상이 주춤하는 사이 이시바 시게루(67) 전 자민당 간사장과 다카이치 사나에(63) 경제안보담당상이 약진하고 있는 것이다. 자민당의 혁신을 앞세운 고이즈미에게 기울었던 여론에 변화 조짐이 일면서 막판 대역전극이 벌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시바와 다카이치는 각각 ‘노련한 정치 경험과 대중 인기’ 및 ‘아베 신조 전 총리를 계승하는 보수 강경주의자’라는 확실한 색깔이 있다. 내각제인 일본에선 제1당의 대표가 총리가 되기 때문에, 이번에 당선된 신임 총재가 차기 총리가 된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19일 일본 언론과 자민당 내부 분석에 따르면 고이즈미는 여전히 한발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년 말 터진 파벌들의 정치자금 스캔들 탓에 지지율이 20% 안팎까지 추락한 자민당으로선 일본 역사상 최연소 총리에 도전하는 고이즈미를 간판으로 내세워 위기를 돌파하자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통상 차기 총리가 등장하면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한다. 이 때문에 아버지(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에 이어 부자(父子) 총리를 노리는 정치 명문가 출신에다 배우 못지않은 외모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갖춘 고이즈미가 ‘총선 승리를 이끌 자민당의 간판’으로 적합하다는 것이다.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한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AP 연합뉴스

하지만 총재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리스크도 부각되고 있다. 우선 각종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며 ‘정치 경험이 미숙하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예컨대, 민감한 노동 개혁과 관련해 “일본 경제가 역동성을 되찾으려면 노동시장 개혁이 불가피하다. 해고 관련 규제의 재검토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 노동계 등에서 ‘해고를 자유롭게 하려는 게 아니냐’며 반발이 일자 고이즈미는 “해고 자유화라고 말한 적 없다. 완화가 아니라, 재검토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여기에 주간지인 슈칸분슌(週刊文春)이 고이즈미가 총리가 되면 곧바로 과거에 취재했던 ‘불륜’ 의혹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까지 정치권에서 떠돌고 있다.

고이즈미가 주춤한 사이에 이시바와 다카이치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12선(選)에다 방위상·농림수산상·특임대신·간사장·정조회장 등 내각과 당내 요직을 역임한 이시바는 올해 ‘차기 총리 선호도 여론조사’ 때마다 부동의 1위였다가 고이즈미 돌풍이 불면서 2위로 밀렸다. 하지만 이시바는 아사히신문이 14~15일에 자민당 지지층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32%를 기록, 고이즈미(24%)를 8%포인트 앞섰다. 직전 조사에서 23%로 고이즈미(28%)에게 5%포인트 뒤졌던 것과 180도 달라진 판세다. 고이즈미의 설익은 발언이 나올 때마다 안정감과 경륜을 갖춘 이시바로 여론이 쏠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경제안보 담당상이 지난 9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7일 열리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의사를 밝히고 있다. /AFP 연합뉴스

자민당 총재 1차 투표는 국회의원표와 당원·당우(의원을 후원하는 정치 단체 회원) 표가 절반씩 반영되고 과반이 안 나오면 치르는 결선 투표에서는 국회의원 367명, 도도부현(광역단체) 47곳을 합쳐 총 414표로 결정된다. 당락은 여론이 아닌 국회의원의 표심이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자민당 한 의원은 “이시바가 1차 투표의 당원 득표에서 고이즈미를 큰 표 차로 이긴다면, 결선 투표에서 의원 표심을 움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차기 총선에 도움이 될 간판은 고이즈미가 아니라, 이시바라는 민심의 메시지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시바는 2012년 총재 선거 때, 1차 투표에서 당원 지지를 바탕으로 1위를 차지했지만 결선 투표에선 국회의원의 몰표를 받은 아베 신조 전 총리에게 패배한 경험이 있다. ‘동료 의원에게 인기 없는 정치인’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는 게 이시바의 최대 숙제다.

그래픽=김성규

강경 보수 성향의 다카이치는 지난달만 해도 총재 선거 입후보 요건인 의원 20명의 추천인 모집에서조차 고전했지만, 보수 강경 지지자들이 결집하며 급부상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의 14~15일 자민당 당원·당우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는 25%를 기록, 이시바(26%)에 이은 2위를 차지했고, 고이즈미(16%)를 상당한 격차로 앞섰다. 이 때문에 다카이치가 결선 투표에 올라간다면 보수 표심을 결집시켜 대역전 시나리오도 꿈꿀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사히신문의 자민당 367명 국회의원 전수조사(14~15일)에서 1위는 46명이 지지한 고이즈미였고, 다카이치는 30명으로 공동 5위에 그쳤다. 같은 강경 보수 성향의 고바야시 다카유키(49)전 경제안보담당상이 43명으로 2위였다. 결선 투표가 이시바와 다카이치의 구도로 성사될 경우에는 고바야시를 선호하는 강경 보수 의원들의 지지만 확보한다면 대이변이 가능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 역사상 첫 여성 총리’라는 명분도 플러스 요인이다.

다만 불법·편법 선거운동 논란이 발목을 잡고 있다. 자민당 선관위는 ‘돈 안 드는 총재 선거’를 내걸고 이달 4일 선거용 우편 발송을 금지했는데 다카이치는 30만명 이상의 당원에게 홍보 자료를 배포했다. 당 총재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17일 주재한 긴급회의에서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 지지율이 올라간 배경에 우편 배포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며 당 선관위에 제재 검토를 지시했다. 선거 캠프에선 ‘다카이치 죽이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불법·편법 논란을 통해 다카이치를 ‘아베 신조의 뒤를 잇는 보수의 상징’으로 각인시키려 한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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