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 잇따라 뛰어들어… 사모펀드 MBK 왜 이러나

정한국 기자 2024. 9. 2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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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취지 벗어났다” 목소리

작년 12월 5일 사모펀드 MBK는 형제 간 경영권 다툼이 진행 중이던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 주식 공개 매수를 시작했다. 경영자인 조현범 회장과 맞서던 그의 형 조현식 고문과 손잡고 당시 1만6000원대였던 회사 주식을 1주당 2만원에 사들이는 방식으로 경영권 확보를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약 보름 만에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뉴스1

조현범 회장은 당시 지분율이 42%에 달했다. 경영권을 확보하려면 조현식 고문 등 MBK 측은 20일 내로 최대 5200억원을 투입해 20% 이상의 지분을 더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1만6000원대였던 이 회사 주식은 공개 매수 첫날 2만2000원 가까이 올라, 공개 매수가를 크게 웃돌았다. 조양래 명예회장이 주식 4% 이상을 사며 방어에 나서자, 상황이 조기에 사실상 끝나버렸다.

그 사이 한국앤컴퍼니 안팎은 혼란이 컸다. 최대 30% 넘게 오른 주가가 제자리로 돌아오며 손실을 본 투자자도 적지 않았다. 한국앤컴퍼니는 작년 253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역대급 실적을 냈지만 빛이 바랬다. 경영진의 장악력이 약한 기업이란 이미지만 남았다. 반면 MBK는 공개 매수에 실패하면서 이 기간 약정한 주식 매입도 하지 않은 만큼 별로 손해가 없었다.

이랬던 MBK는 지난 13일 한국앤컴퍼니와 닮은꼴인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또 등장해 주식 공개 매수를 시작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국내 1위 사모펀드 MBK가 위상에 걸맞지 않게 본질을 비껴간 투자로 혼란만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딜라이브, 네파, 홈플러스 등 총 10조원 넘게 투자를 한 기업에서 수년째 자금 회수를 하지 못하다 보니, 주주 장악력이 취약한 기업의 경영권을 노려 단기간에 이익을 내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이철원

◇사모펀드 본래 취지 벗어났나

MBK 같은 사모펀드는 국내 자본시장에서 대표적인 모험 자본이다. 자금력이 부족하지만 역량 있는 기업에 과감히 투자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게 2004년 사모펀드 설립을 허용한 이유였다. 외환 위기 이후 해외 사모펀드가 국내 기업을 마구잡이로 인수하는 것에 대응하는 차원도 있었다.

다수 사모펀드는 최근까지 기업과의 건전한 긴장 관계 속에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금을 투입하고 오너 일가 대신 구조 조정을 하며 경쟁력을 높였다. 주요 주주로서 기업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례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 한국타이어, 고려아연 주식 공개 매수 사건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사모펀드의 역할이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두 회사 모두 최근 배당을 늘리는 등 주주 친화 정책을 쓰고, 실적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경영진 지분율이 낮다는 이유로 경영권 공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국내 다수 기업에선 창업주의 3~4세로 경영 승계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상속·증여 부담 등으로 오너 일가 지분율이 줄어들고 있어 제2, 제3의 고려아연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작지 않다.

박남규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기업 경영권 분쟁이 생길 때마다 정해진 기간 내 수익을 챙겨야 하는 사모펀드 등이 개입하면 기업의 지속 가능성이 불확실해진다”고 했다.

◇MBK “적대적 인수 아니다”

일각에선 인수한 기업을 재매각해 이익을 내는 MBK의 핵심 역량이 한계에 이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2015년 7조원대에 사들인 홈플러스가 대표적이다. 인수 이후 강도 높은 구조 조정에도 기업 가치가 오히려 떨어져 9년째 매각을 못 하고 있다. 2013년 인수한 아웃도어 기업 네파도 약 1조원을 투입했지만 실적이 나빠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갈수록 업종이 복잡, 다양해지면서 사모펀드가 관리하며 기업을 성장시키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편 19일 MBK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고려아연 공개 매수가 적대적 M&A(인수합병)는 아니라고 했다. 잘못된 현재 경영진의 의사 결정 구조를 바로잡는 것이라는 뜻이었다. 이날 김광일 MBK 부회장은 “2019년 고려아연의 금융권 차입 부채는 410억원으로 사실상 없었는데 올해 6월 말 현재 1조4000억원에 이른다”면서 “(현재 경영진이) 쉬운 말로 현금을 물 쓰듯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려아연은 반박문을 내고 “영풍과 MBK는 고려아연의 유동성을 평가절하하기 위해 현금성 자산 외에 ‘빠르게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을 제외했다”며 “지난 6월말 연결기준 고려아연의 현금은 2조1277억원으로, 부채비율은 36%, 차입금의존도는 10%로 매우 우량하다”고 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도 이날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MBK 등) 그들의 허점과 실수를 파악하고 대항해 이기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했다. 그는 현재 공개 매수에 대항할 외부 투자자 유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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