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국發 금리 인하, 집값에 발목 잡힌 韓 금리는 어쩌나
미국 연준이 기준 금리를 0.5%포인트 내리는 ‘빅컷(대폭 인하)’을 단행하면서 2년여 동안 계속한 금융 긴축을 마감했다. 연내 추가 인하도 예고했다. 미국은 코로나 때 풀린 돈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으려 2022년 3월 이후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려왔지만 물가가 안정되자 금리 인하로 돌아선 것이다. 이에 앞서 유럽중앙은행(ECB)이 두 차례 금리를 내리고 영국·캐나다·스위스·스웨덴·뉴질랜드 등도 가세하는 등 주요국이 금리 인하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미국 등이 고금리 해소에 나선 것은 물가가 잡히면서 경기 부양에 나설 여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때 9.1%까지 치솟았던 미국의 월별 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2.5%로 3년 반 만의 최저치로 내려가면서 안정되는 추세다. 반면 7월 고용 시장은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연준의 금리 인하는 이제 일자리를 창출하고 선제적 경기 부양에 나설 때라는 것이다.
한국도 경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로 둔화하면서 2년 가까이 괴롭혔던 인플레이션이 잡혀가고 있다. 반면 내수(內需) 경기는 침체 조짐이 뚜렷하다. 살림살이의 여유를 보여주는 가계 흑자율은 8분기 연속 하락했다. 우리 역시 경기 진작을 위한 금융 완화에 나설 타이밍인 것이다.
그러나 집값이 발목을 잡고 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23주 연속, 전셋값은 67주 연속 상승 중이다. 8월 가계 대출은 역대 최대치로 늘었다. 집값 상승 초기에 정부가 “추세적 상승은 없을 것”이라고 오판하고 정책 대출 신설, 부동산 규제 완화 등으로 집값 상승 기대감을 키우는 실책을 범했다. 그 결과 금리를 내려야 할 때 금리를 내리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졌다. 지금 금리를 내리면 집값에 기름을 부을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신중한 입장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창용 총재는 미국발(發) 금리 인하를 따라가기 보다 ‘국내 요인’을 감안해 금리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한은과 정부가 긴밀히 공조해 가며 세계적 금리 인하 국면에 대응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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