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통일 운동’ 한다던 임종석, 北이 통일 거부하자 “통일 반대”
문재인 청와대의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19일 ‘9·19 평양선언’ 6주년 기념사에서 “통일, 하지 말자”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의 영토 조항도 “지우든지 개정하자”고 했다. “통일이 무조건 좋다는 보장도 없다”고 했다. “통일 논의를 완전히 봉인하자”고까지 했다.
임 전 실장은 1989년 전대협 의장 시절 임수경씨 방북을 주도했다. ‘통일 운동’이라고 했다. 주사파가 장악한 전대협은 ‘자주적 평화 통일’을 목표로 내건 단체다. 2019년 비서실장을 그만둔 뒤엔 “다시 통일 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했다. 2020년 북한 TV 저작권료를 남한에서 걷어 북에 송금하는 경문협 이사장을 맡았는데 경문협은 ‘한반도 통일 기여’가 설립 목적이다. 평생 ‘통일’을 주장하던 사람이 갑자기 ‘통일하지 말자’고 입장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임 전 실장의 입장 변화는 김정은이 통일 거부 선언을 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작년 말 김정은은 “북남 관계는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며 통일을 위한 조직과 제도를 모두 없앴다. 평양 입구에 있던 통일탑도 부수고 북한 국가에 있는 통일 표현도 없앴다. 심지어 평양 지하철 ‘통일역’ 이름을 그냥 ‘역’으로 바꿨다.
그러자 한국 내 친북 단체들이 장단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적 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는 올 초 스스로 해산하며 ‘통일’을 뺀 한국자주화운동연합(가칭)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동안 이 단체는 김일성이 직접 지어줬다며 ‘조국통일’ 명칭을 고수했지만 김정은 한마디에 간판을 내린 것이다. 다른 국내 친북·종북 단체들도 ‘통일 지우기’에 나섰다. 임 전 실장의 급변 이유도 이들과 같은 맥락일 것으로 본다.
김정은이 통일 거부 선언을 한 것은 한국과의 국력 차이가 너무나 벌어지고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동경이 커지자 이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평양을 제외한 북한의 주민 생활은 100년 전 일제 강점기보다 못하다는 것이 탈북민들의 증언이다. 이 상황은 김정은의 정당성 없는 권력에 위기가 됐다. 김정은은 결국 주민들이 통일에 대한 기대를 갖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싹을 자르는 방법을 택했다. 통일을 지우는 한편으로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식 말투를 썼다고 청소년들에게 수갑을 채워 징역 10년형을 내리는 만행을 병행하고 있다. ‘척추를 꺾어 죽인다’고 위협한다. 모두 김씨 왕조 수호가 근본 목적이다.
한국 내 친북 단체들이 김정은의 반통일 선언을 추종하는 것은 결국 김씨 왕조 수호를 돕는 것이고, 북 주민들의 참상을 외면하는 것이다. 이들은 나중에 김정은이 상황이 좋아졌다고 판단하고 ‘통일하자’도 나오면 바로 ‘통일’ 깃발을 들고 나올 것이다. 다선 국회의원에 이어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중책을 지낸 사람까지 자신의 평생 주장을 뒤엎고 김정은의 통일 거부 선언에 동조하는 것을 보면서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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