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형의 책·읽·기] 병리학적 세계에 남은 우울한 자화상

김진형 2024. 9. 2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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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미운 건 말이지, 세상이 이처럼 위긴데두 그 위기감마저 마비된" 홍천 출신 전상국 소설가의 '선수'들은 집단주의로 대표되는 세계에서 정신적 외상을 앓고 있다.

"민족과 역사를 위한 일"이라며 돈을 빌리 뒤에 탕진하고 오는 일도 많자 가족들은 그를 정신병원과 기도원 등으로 보냈지만, '땡삐'는 또 다시 탈출을 감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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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출신 전상국 8번째 전집
기형적 인물 통해 사회 비판
“광기는 성공 못한 악의 유형”
▲ 1990년 ‘사이코 시대’로 제1회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하고 있는 전상국(왼쪽) 소설가.

“더 미운 건 말이지, 세상이 이처럼 위긴데두 그 위기감마저 마비된…”

홍천 출신 전상국 소설가의 ‘선수’들은 집단주의로 대표되는 세계에서 정신적 외상을 앓고 있다. 전상국 작가의 8번째 중단편소설전집으로 최근 나온 ‘사이코 시대’는 타락한 세계의 갖가지 병에 대한 소설적 보고서다. 이 시기의 작가는 세상을 보는 뒤틀린 심사만큼이나 글 쓰기에 냉소적이었고, “글을 쓰는 신명의 불길이 꺼질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고 한다.

1990년 동서문학사에서 시상한 제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인 표제작 ‘사이코 시대’부터 ‘이것은 기분 문제가 아니다’, ‘퇴장’, ‘밀정’ 등 7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특정인을 배제함으로써 소속감과 안정감을 얻고자 하는 심리, 읽기 괴로울 정도로 고통 속에서 허우적 거리는 인물들을 통한 우울한 비관주의 등이 흐른다. 1980년 말을 대표하는 시대의 자화상이자 현재의 모습이다. 전상국이 구축한 병리학적 세계는 사회비판적 의식과 함께 소외된 인간의 광기를 전면 등장시킨다.

‘사이코 시대’에서는 도처에 광인들이 있다. 전작 ‘아베의 가족’에서 보여준 기형적 인물들의 전형이다. 편집증적 증세를 보이는 반사회적인 인물들의 중심인 ‘피요학’은 ‘땡삐’라는 별명처럼 모든 것을 들쑤시고 다닌다. “민족과 역사를 위한 일”이라며 돈을 빌리 뒤에 탕진하고 오는 일도 많자 가족들은 그를 정신병원과 기도원 등으로 보냈지만, ‘땡삐’는 또 다시 탈출을 감행한다. 그와 같은 유형의 인물이 되지 않기 위해 자기성찰을 멈추지 않는 인물들도 종국에는 무너진다. 타자 혐오와 자기혐오의 벽에 갇혀 빠져나올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작품 ‘거울의 알리바이’, ‘개미거미들의 화음’, ‘시인의 겨울’에서는 각각 고발문학 작가, 소설가, 시인이 서술자로 등장하며 작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반성한다. 서술자들은 “나를 고발하여 처단하는 그 복수극”이라는 글쓰기로 나아가는 한편, “인간 삶의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진짜 시”라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개미거미들의 화음’에는 춘천시의원이 되기 위해 거짓과 위선의 언행을 서슴지 않는 삼촌에 대한 환멸이 들어 있다.

이밖에 단편 ‘퇴장’에 등장하는 교사는 올바른 일을 실천하려고 하지만, 모든 이들에게 미움을 사 죽음을 맞이한다. 그 맞은 편에 위치한 소설에서는 철저한 프로의식에 기반한 ‘밀정’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면서 한국 소설사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전상국 작가는 “그 시절 내가 즐겨 다룬 광기는 성공하지 못한 악의 한 유형이라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부패와 맹목적 이념보다는 광기가 한결 창의적이고 인간적이었다”며 “그 시대의 광기는 물질의 풍요가 불러온 정신의 피폐와 희극화한 정치 상황이 낳은 말세적 징후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진형 formation@kado.net 

#병리학적 #자화상 #전상국 #사이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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