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돈선의 예술인 탐방지도 - 비밀의 방] 79. 그냥 그렇게 살다보면-시를 쓰는 화가 유명선

최돈선 2024. 9. 2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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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길 다녀온 바람의 목소리…이제 숨 고를 시간
홀연히 떠나고 돌아오길 반복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한 삶
내면의 길 시·그림 매개 형상화
초기 방황 잠재 황량한 화면
춘천 전시부터 서서히 변화
양구 공리 정착 자급자족 생활
자발적 가난 속 풍요로움 누려
색색 계절 흐름 작품 고스란히
유명선 작가가 글을 쓰는 방

-만남

그니를 만난 날을 나는 정확히 기억한다. 나는 그니와 우연히 강원대 정문 어느 카페에서 만났다. 내가 아는 지인 한 분이 그니를 소개했다. 그니는 인사를 했고 나도 인사를 했다. 그니는 유목민이었고 늘 혼자 이곳저곳을 탐구하듯 돌아다녔다.

그런 그니가 덕두원 명월리에 둥지를 틀었다. 유목민인 그 예술가는 자신이 거처하는 방 문간에다 ‘뫎’(뫎은 마음, 몸, 앎이란 뜻의 조어로 박상륭 소설가가 지은 것이다.그러다가 어느 날, 그니는 홀연 먼 여행을 떠나 집을 비우곤 했다.)이란 달을 띄워놓고 시를 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우린 맥주를 마시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니는 쾌활했고 서글서글한 눈매로 자주 웃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니는 가방 속에서 시화집 한 권을 꺼냈다. 그리고 속표지에다 연필로 2013. 12. 6 유명선 드림, 이렇게 썼다. 그 책 표지엔 빈 나뭇가지가 여러 갈래로 드리워진 얼굴이 그려져 있었고, 명상하는 그 그림은 그니의 자화상 같기도 했다. 시화집 제목은 ‘바람의 길’. 그때가 겨울 초입이었다. 통유리 바깥의 가로수 가지들엔 나뭇잎 하나 붙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후 나는 ‘바람의 길’을 다시 만났다. 우연히 책상 옆 서가를 죽 둘러보다가였다. 책 표지를 열자 나는 HB연필로 쓴 희미한 글씨를 보았다. 유명선 화가는 지금도 명월리에 살고 있을까. 즉시 나는 전화를 넣었다. 저쪽에서 유명선 화가, 아니 시를 쓰는 화가의 낭랑한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그니는 양구 공리에 정착해 있었다.

유명선 작가의 시화집과 에세이

- 여행

유명선 그니는 왜 자주 멀리, 무작정 떠나는 것일까. 그니는 바람처럼 떠나고 바람처럼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삶이었다. 그니는 목적을 가진 여행가도 아니었고, 여가를 즐기려 여행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유명선은 문득 가고 싶으면 어디든 떠돌았다. 일정한 목적지가 있을 리 없었다. 그니의 여행은 자신을 찾기 위한 길이었다. 길은 그니의 내면에 있었고, 내면의 길은 시와 그림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났다.

두 권의 시집과 두 권의 여행에세이집, 그리고 여덟 번의 전시를 거치는 동안, 그니는 물감이 화선지에 스며들 듯이 사람들의 영혼에 스며들어 저마다 독특한 색채를 남겼다. 자유로운 새 한 마리는 비록 외로웠으나, 그 새는 우리 자신이 가슴에 감추어 왔던 저 비밀의 어둠을 조용히 열어 주었다. 그것은 푸른 고뇌였고 깊은 동굴이었고 폐가처럼 너덜해진 영혼이었다. 내면의 길은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자의식의 길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혼자 가야 했다. 그니가 선문답처럼 넌지시 내민 한마디.

“그냥 그렇게 살다 보면”

마치 선문답 같기도 하고 노장자의 무위 같기도 한 이 말 한마디. 그 한마디가 문득 삶을 깨달아버린 여정의 궤적일지도 몰랐다.

나는 유명선이 쓴 시와 그림을 여러 번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시와 그림에서 유명선의 변화를 읽었다. 그니의 초기 그림에서부터 지금까지의 그림들, 그리고 그니의 시집 전부를 읽었다. 물론 단 두 권뿐인 시집이었지만.

나는 그니의 잃어버린 시간을 읽으면서 그니의 검푸른 공간을 들여다보았다. 시간은 흐른다기보다 정지한 채였고, 공간은 색채의 고단함과 우울과 막막한 길 한 줄기로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위태로웠다. 하지만 그것은 유명선이 내재한 노스탤지아의 나부낌으로 하여 그 위태로움을 지우고 있었다.

어쩌면 궁극적으로 어둠조차 거부된 백야의 나라로 가는 듯도 싶었다. 삶이 고통과 분노로 이글거린다 한들, 그 삶은 분노로 하여 자신을 꽁꽁 묶어놓고 소멸하고 만다. 그러하니 흐르는 대로 놔두어야 해, 그게 자유야, 라고 유명선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매여있음을 초월코자 했다.

이 ‘자유에의 의지’가 살아나기 시작하자 어디에선가 뿌리를 내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찾아들었다. 역설이었다. 비로소 유명선은 그런 장착지를 발견했다. 삶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무심함 속의 발견처럼.

- 자발적 가난의 즐거움

빨간 머리 앤의 소녀(환갑을 넘긴 나이지만)는 환히 웃으며 우리 부부를 맞이했다. 유명선 화가와 아내는 금세 친해져 담소를 나누었다. 딱 한 사람이 살기에는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그림 그리는 작업실을 겸하기에는 좁아 보였으나 그런 것엔 전혀 개의치 않은 듯싶었다. 거실은 서가에 꽂힌 책과 그림으로 촘촘히 채워져 있었다. 그중 액자 사진 한 장이 서가에 놓여 있었는데, 몇 년 전 작고한 아버지라 했다.

공리의 집터는 그간 조금씩 모아온 돈으로 장만한 터전이었다. 6년간의 춘천 셋방살이를 접고 양구 공리로 들어오자, 모든 것을 절약해야 했다. 그리고 육체노동이 그니의 근육을 굳세게 했고, 힘든 노동의 대가는 건강한 피로감과 더불어 새로운 기운을 느끼게 했다. 꿀 같았다. 이젠 자급자족의 농부일 망정 자부심마저 느낄 정도였다. 마당은 빨간 장미꽃이 늦도록 피어 있었고, 들깨밭이 무성한 한구석으로 장독들이 가을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300여 평의 땅에다 고추와 배추, 무, 마늘, 깨 등속을 심었다. 채마밭엔 푸성귀가 자랐다. 고추는 유명선 화가의 주된 수입원이 되었다. 햇볕에 말린 태양초는 인기가 많았다. 그것으로 쌀과 생선, 고기를 사 먹었다. 모든 것을 자급자족한다는 게 원칙이었다. 이것을 유명선은 자발적 가난이요 풍요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두 딸이 양구의 산골 소녀를 찾아들었다. 딸들이 온다는 날은 언덕빼기 집에서 바깥을 멀리 응시했다. 딸들은 엄마의 생각과 꿈을 존중했고 엄마의 작품들을 진심으로 공감했다.

유명선의 글 쓰는 방엔 어린아이들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딸들은 자라기를 멈춘 채 엄마를 응시했다. 엄마는 흰머리를 빨간 머리 앤으로 염색했다. 사진 속의 너희들처럼 나도 그때의 그대로 여기 있는 거야.

▲ 유명선 작가의 최근 작품

- 변화

하루 종일 시를 쓸 때도 있었다.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릴 때도 있었다. 비 오는 날 하루 종일 무심히 창밖을 내다보며 음악을 들을 때도 있었다. 모든 것을 단순화했다. 배고프면 먹고, 술이 고프면 혼자서 술을 마셨다. 잠이 오면 편안히 의자에 앉아 잠들었다. 계절은 그니에게 녹색과 노랑과 흰색을 선물했다. 선물은 환희였다. 유명선 화가는 녹색의 풀밭에 앉아 토끼에게 풀을 먹이는 어린아이들의 동심을 그렸다.

초기에 나타나는 어두운 화면, 바람과 헐벗은 나무와 저녁노을, 하염없이 걸어야 하는 길. 이 모두가 자의식이었고, 이 모두가 쓸쓸히 비어 있었다. 방황과 갈등이 잠재된 황량한 화면의 표출은 천재적인 번뜩임으로 빛나 유명선을 날카롭게 고문했다. 당시 유명선은, 나는 내가 불안하다고 기술했었다. 마음의 집이 불타고, 푸른 밤의 절규와 검은 시선, 파라독스와 새벽이 올 때까지의 웅크림, 그리고 아스라한 정적, 이러한 것들이 춘천에서 전시된 작품들에서부터 서서히 변화를 일으켰다.

- 봄은 사무친다는 또 다른 이름

나는 유명선의 초기 작품에 매료된 사람이다. 죽은 나무와 검푸른 하늘과 폐가와 고독을 나는 공감했었다. 그러나 유명선의 두 번째 시집에서 나는 흙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체취와 딸들의 육성이 그니의 작품에서 번지고 있음을 감지했다.

낙원동 지하상가에서 아버지와 마셨던 막걸리. 흥에 취해 불렀던, 눈 녹은 삼팔선에 꽃은 피누나 라는 아버지의 노래. 그 노래가 지금 산골 마을 공리의 풍경으로 새로이 채색되고 있다는 건 분명 새로운 변화였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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