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딥페이크 최대 피해국의 게으름
미국 청소년들은 17일부터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이 모르는 사람의 개인 메시지를 받지 않는다. 청소년 이용자 계정 기본값을 모두 ‘비공개’로 설정해 범죄자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려는 인스타그램 조치 덕분이다. 또 폭력·성적 콘텐츠, 공격적 단어나 문구 접근도 어려워진다. 이 같은 조치는 인스타그램의 자발적인 대책이라기보단 그동안 기업 육성과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던 미국조차도 거대 플랫폼 폐해가 심각해지자 규제를 강화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된 영향이다.
거대 플랫폼의 영향력은 각국에서 여느 미디어보다 강력하다. 유튜브는 전 세계 인구의 31%인 25억명, 인스타그램도 20억명이 사용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들은 개인들이 올리는 콘텐츠에 붙는 기업 광고 수익 중 30~50%가량을 가져가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의 플랫폼에 올라온 유해 콘텐츠 책임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회피하고, 성착취·마약·테러 등 각종 범죄의 온상이 됐는데도 수사 당국의 협조에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각국 정부는 플랫폼과의 전쟁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검찰은 지난달 텔레그램의 파벨 두로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를 미성년자 성착취물 유포 등을 방조·공모한 혐의로 체포했다. 브라질 법원은 수사 협조를 하지 않은 ‘엑스(X·옛 트위터)’의 브라질 내 접속을 차단했으며, 호주 정부는 가짜 뉴스를 방치한 플랫폼에 전 세계 매출의 5%를 벌금으로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올해 2월부터 플랫폼 기업에 강도 높은 책임을 묻는 ‘디지털 서비스법(DSA)’을 시행한 유럽은 이미 구글 등 여러 플랫폼 기업에 수조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번 플랫폼과의 전쟁에선 유난히 조용하다. 지난달 당정은 딥페이크(AI로 합성한 진짜 같은 가짜 콘텐츠) 성범죄 대책을 내놨지만, 제작자의 형량을 강화하는 수준에 그쳤다. 거대 플랫폼 관련 내용은 지금까진 이메일로만 소통했는데 앞으로는 핫라인을 확보하겠다는 정도였다.
정부가 거대 플랫폼 눈치를 보는 사이 2021년 세계 최초로 플랫폼 규제법을 시행했다는 한국은 이제 딥페이크 최대 피해국이라는 오명을 썼다. 전 세계 딥페이크 음란물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53%)이다. 정부가 관련법이 없다는 이유로 나서지 않아 피해자들은 결국 가해자를 직접 찾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오랜 법적 다툼 끝에 승소하더라도 벌금은 많아야 수백만원에 그친다. 플랫폼 규제가 정작 국내 기업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미 세계 플랫폼 경쟁에서 네이버·카카오는 보이지 않는 데다, 한국인 피해 규모를 감안하면 국내 기업 보호는 너무 한가한 명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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