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국가인권위, 왜 있어야 하나?
감옥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과밀수용 때문이다. 4.5평. 15㎡쯤 되는 감방에 15명을 가둔다. 좁은 감방에서 몸을 맞대고 자는데 폭염에 난로를 껴안고 사는 셈이다. 양계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에어컨은 없고 선풍기는 있지만, 숨 막히는 더운 바람만 보내줄 뿐이다.
하루 30분 짧은 운동시간을 빼고 23시간30분을 좁은 감방에서 다른 재소자와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 그나마 면회와 운동이 금지된 휴일엔 꼼짝 못한다. 추석 연휴 닷새 동안 감방에만 갇혀 있어야 했다. 지옥이 따로 없다. 윤석열 정권 들어 재소자 숫자가 부쩍 늘었다. 지옥을 견뎌야 하는 사람도 그만큼 늘었다.
감옥은 범죄자를 괴롭히려고 만든 곳이 아니다. 현대국가들은 예외 없이 ‘교정교화’ ‘재사회화’를 위해 감옥 시스템을 마련했다. 하지만 과밀수용 때문에 교정교화는 엄두도 못 낼 지경이다. 그저 사고 없기만 바라는 수준의 단순 구금행정만 있을 뿐이다.
재소자들은 갇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상적 인권침해를 당하게 되었다. 과밀수용을 해결하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었고, 과밀수용에 대한 소송이 줄을 잇고 있지만, 현실은 더 나빠지고 있다.
이럴 때, 호민관 역할을 하라고 만든 게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다. 인권위는 인권피해자들의 진정을 받아 처리하고 인권침해나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와 구제 활동도 펼친다. 구금시설을 방문 조사할 권한도 있다. 인권위가 시설을 방문하면 시설장은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재소자를 면담하거나 문제를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인권위의 인권옹호 업무를 방해하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강제 수사권은 없지만, 잘만 쓰면 꽤 쓸모 있는 맞춤형 권한을 갖고 있다.
인권위는 구금시설 수용자의 진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교도소마다 진정함을 설치해두었다. 진정함은 진정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게 투명 아크릴 재질로 만들었다. 1963년 문을 연 안양교도소 진정함을 살펴봤다. 바닥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되어야 저 지경일까. 적어도 10년 넘어 보였다.
재소자들은 인권위에 기대할 게 없다고 했다. 진정을 넣어도 인권위 직원이 진정서를 챙기지 않는단다. 찾아오는 것은 물론, 연락조차 없는데 괜한 짓을 할 까닭이 없다는 거다. 가장 심각한 인권 현장에서 인권위는 차갑게 외면당하고 있다.
인권위는 관료화되었다. 내부 갈등은 제법 시끄럽지만, 인권침해에는 둔감하다. 진보를 자처하든 보수에 속해 있든 누구도 재소자들이 놓인 극단적인 상황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기념사진 한 장 남기는 게 전부인 의례적인 방문 말고, 구금시설을 찾아 감방의 면적과 온도 등 기본을 챙기는 일은 없었다.
심각한 인권문제로 꼽히는 기후위기도 그렇다. 그 폐해가 가난한 사람 등 약자, 소수자를 겨냥하기에 대응이 필요하지만, 인권위는 딴판이다. 인력과 예산을 배치하고 뭔가 할 일을 찾는 모습은 없고, 그저 입장 발표뿐이다.
얼마 전 그만둔 송두환 위원장. 헌법재판관을 마치고 로펌 대표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72세 고령에도 위원장이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였다는 것 말고 주목해서 봐야 할 대목이 뭔지 모를 인사였다. 아니나 다를까. 송 위원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재임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의견 표명’을 꼽았다. 진상규명 등에 대해 의견을 냈다는 거다. 159명이 죽어간 참사를 두고 인권위가 한 일은 성명 발표뿐이었고, 위원장은 그걸 가장 보람 있는 일로 꼽았다.
이런 송 위원장의 안이함이 인권위의 직무유기를 낳았다. 성명이야 시민단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인권위라면 본연의 일을 해야 했다. 이태원 참사가 경찰과 지방정부의 책임이 무거운 사안임을 감안해 진상을 밝히는 일부터 먼저 챙겨야 했다. 직원들을 대거 투입해 조사활동을 벌이고 그 결과를 국민과 국회에 보고하며, 이태원 참사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물꼬를 터야 했다. 그러나 송 위원장과 인권위는 그러지 않았다. 성명 발표를 가장 보람 있는 일로 꼽을 만큼 제대로 일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송 위원장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거다. 교도소 진정함에 먼지가 두껍게 쌓였던 세월만큼 그의 전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인권위에서 경력을 쌓고 고위직으로 출세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인권위는 인권으로부터 멀어져만 갔다. 이런 식이라면 아예 문을 닫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인권위는 심각한 위기를 넘어 존재 이유를 찾기 어려운, 세금만 낭비하는 조직이 되어 버렸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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