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누구든 ‘치빠’만 잘하면 됩니까
“잘하는 사람은 치빠를 잘합니다.”
온라인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힘들어하는 자영업자를 위한 이런 훈수들이 적잖다. “초기에 들어가 반짝 상승 때 털어야 한다”는 돌직구도 보인다. 우리 동네 한 카레집은 수완이 좋다. 알바생 말을 들어보니, 젊은 주인은 가게에 잘 나타나지도 않는다. 일은 거의 다 알바들 몫이다. 그런 가게를 몇개 굴리는 모양이다. 어떤 이는 파리바게뜨, 본죽 같은 체인점을 동시에 3~4개씩 총 20개 정도 운영한다고 한다. 그러다 권리금을 대부분 2배 받고 넘긴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대다수 현실은? 그 반대다. 집 근처에 유명한 베이커리집이 당분간 쉰다며 ‘영업중지’ 공고문을 붙였다. 옆에 제법 인기 있는 돈가스집은 아예 문을 닫고 말았다. 요즘 심한 곳은 한 집 건너 두 집에 폐업 딱지가 붙었다. 오죽하면 그나마 나은 자영업은 인테리어업이란 말까지 들릴까 싶다.
자영업 위기가 심상찮다. 항간에 코로나 때보다 힘들다는데 괜한 곡소리가 아니다. 국세청 통계를 보면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가 98만6487명으로, 2006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다. 코로나 때의 80만명대를 훌쩍 넘었다. 특히 음식업의 신규 창업 대비 폐업 비율은 96.2%나 된다.
결국 돌고 도는 유행에 잘 편승한 몇몇만 단맛을 볼 뿐이다. 대왕 카스테라도, 탕후루도 반짝하고 말았다. 탕후루를 개업한 사람도, 사먹는 사람도 이미 알고 있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곧 밀어낼 것이라고. 밀려난 이들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반지하집에서 피자 박스를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자영업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다수는 명예퇴직, 정년퇴직 후 자영업 전선에 나선 이들이다. 또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은 이들도 많다. 가계대출 위기관리에 시한폭탄이 이들이다. 다 같이 죽을 순 없기에 같이 살 방도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전 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안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코로나 때처럼 지금도 ‘보편 vs 선별’ 논쟁은 진행형이다. 코로나 때는 재난지원금으로 위기를 잘 이겨냈다. 주위 자영업자나 택시기사들 말을 들어보면 초기에 전 국민 대상 재난지원금을 뿌렸을 때가 분위기가 가장 나았다고 한다. 한 기사는 “그때는 정말 돈이 돈다, 경제가 돌아간다는 게 피부에 와닿았다”고 했다.
경제는 곧 흐름이다. 같은 재원이라면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하게 지출케 하는 게 최대한 경제 역동성을 끌어올리는 원리다. 현금 아닌 지역소비 상품권 같은 형태로 지급하면 다 쓰게 돼 있다. 부자들은 푼돈인 25만원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내팽개칠 것 같은가.
나아가 근본적인 구조 개편까지 절실하다. 국내 자영업 비중이 너무 크다. 2022년 말 기준 자영업자 등 비임금근로자 비율이 23.5%로, 미국(6.6%), 일본(9.6%) 등과 비교해 최대 약 4배나 높다.
은퇴자의 미래가 괜찮은 자영업 고르기여선 안 된다. 서구처럼 노후가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복지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해법의 본질이다. 아니면 제2, 제3의 탕후루는 흥망을 거듭하게 돼 있다. 이쪽에 돌파구를 만들면 과도한 의대 쏠림이나 부동산 투기 같은 얽힌 매듭까지 상당 부분 풀어낼 수 있다.
정부는 반도체, 자동차 수출을 강조하지만, 내수 소비에는 딱히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제구조가 됐다. 이른바 낙수효과는 ‘나으리들’이 고시 공부하던 시절 경제원론에나 나왔을 법한 구문이다. 자영업자들이 추석 연휴 뒤를 걱정하는 동안, 인천공항은 해외여행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상속세·종합부동산세 완화처럼 부자에게 깎아줄 세금은 줄이고 지금은 재정을 내수 부양에 넣어야 할 때다. 일단 긴급재난지원금 같은 마중물이라도 제대로 부어보라. 그렇다고 찔끔찔끔 풀어봤자 효과는 없고 나라 곳간만 축내기 마련이다. 확고한 판단을 내린 다음엔 과감히 부어야 경제 역동성이 샘물처럼 되솟아날 것이다. 돈이 돌면 결국 세금으로 상당 부분 돌아오게 된다.
경제는 심리라고들 한다. 이 정도로 얼어붙을 만큼 한국 경제 펀더멘털 자체가 부실해진 건 사실 아니다. 그저 불안해서다. 대통령이, 집권당이 못 미더워서다. 앞날이 더 나빠질까 걱정이 앞서니 지갑을 닫을 수밖에….
부잣집 도련님인 나라님이나 정치인들은 적당히 즐기다 ‘치빠(치고 빠지기)’ 하면 그만일 테다. 그러나 서민들에겐 드라마 <미생> 말마따나 ‘전쟁터(회사)냐, 지옥(회사 밖)이냐’의 선택지뿐이다.
전병역 경제에디터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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