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에 과학 한 스푼]우동국물과 캐러멜
산행 후 우연히 들른 한 분식집에서 우동 한 그릇을 주문했습니다. 우동은 참 매력적인 요리입니다. 간단하게 즐길 수도 있지만, 쫄깃한 면발과 감칠맛 나는 국물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그 어느 요리 못지않게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젓가락으로 면을 건져 후루룩 입안으로 빨아들였습니다. 냉동면을 사용했겠지만, 그럼에도 면발의 탄력성은 아주 훌륭합니다. 이제는 국물을 맛볼 차례입니다. 우동 스푼으로 국물을 떠서 천천히 맛과 향을 음미해 봅니다. 그런데 감칠맛을 강조하는 일반적인 우동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단맛이 느껴집니다. 그것도 단순한 단맛이 아니라 여러 맛과 향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그러한 단맛이었습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사장님께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독특한 우동국물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말이죠. 그런데 의외로 사장님은 그 비결을 상세히 말씀해 주십니다. 대파, 무, 양파 등 야채를 큼직하게 썬 후에 오븐에서 10분 동안 노릇해질 때까지 굽고, 이를 다시마와 멸치로 우린 국물에 함께 넣어 다시 끓인 후 건더기를 걸러내면 이 우동국물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아하!’ 저도 모르게 나지막하게 감탄사를 내지르고 말았습니다. 깊은 단맛이 나는 우동국물의 비결은 바로 ‘캐러멜화 반응’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캐러멜이란 설탕 따위의 당류를 색이 진해질 때까지 졸여서 만든 물질을 말합니다. 당류가 고온에서 분해되면 제일 먼저 일어나는 일은 가장 작은 크기의 당류인 포도당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단맛의 강도 또한 높아집니다. 그다음은 이 포도당 또한 분해되면서 새로운 다양한 물질들이 만들어지는 일련의 반응들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캐러멜 특유의 맛과 향성분들, 그리고 갈색의 색소성분들 또한 생성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캐러멜화 반응이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양파 등과 같은 야채를 고온으로 가열할 때도 이 캐러멜화 반응이 일어나는 걸까요?
그 이유는 이들 야채의 주성분인 탄수화물 또한 바로 당류의 일종이기 때문입니다. 탄수화물은 가장 작은 크기를 갖는 기본적 당류인 포도당이 수백 개 결합되어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탄수화물도 열이 가해지면 앞서 말한 캐러멜화 반응에 따라 달콤한 맛과 향, 그리고 갈색의 색소성분들이 생성됩니다. 지금 먹고 있는 이 우동국물의 깊은 풍미는 이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서양 요리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쓰이는 브라운소스 또한 이 반응을 이용해 만들어집니다. 녹인 버터에 밀가루를 넣고 오래 가열하다보면 캐러멜화 반응이 일어나 갈색으로 변하는데, 여기에 육수와 여러 야채를 넣고 졸인 다음, 채로 걸러내면 먹음직스러운 갈색 소스가 완성되죠. 돈가스나 햄버그스테이크에 사용되는 데미글라스 소스 또한 이 브라운소스의 일종입니다.
과학은 가장 보편적인 학문입니다. 모든 분야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법칙과 원리를 찾기 때문이죠. 요리 또한 그러한데요, 그것이 동양 요리든 서양 요리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요리는 과학이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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