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이 가해자…세상이 무너졌다” [이경자 칼럼]
이경자 | 소설가
허공에 뜨거운 철판 뚜껑이 덮인 것 같던 열대야의 이른 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아파트 단지를 걸었다. 내 몸의 피로와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스스로 찾은 치료법이 있는데 걷는 것이다. 숲길을 걷거나 등산을 하는 게 가장 좋지만 때가 맞지 않으면 동네라도 걸어야 한다. 늘 그렇지만 열대야라도 단지를 걷는 사람들은 여럿이었다. 운동복 차림으로 힘차게 걷는 듯 보이는 아저씨. 씩씩해 보이는 아줌마들. 그리고 나처럼 지쳐서 걸음이 느린 할머니들.
그러다가 문득 아파트 뒤편의 골목 어귀에서 걸음을 멈췄다. 어린 소녀 셋이 한 손으로 자전거를 잡고 페트병의 물을 나눠 마시고 있었다. 다 같이 긴 머리를 하나로 묶어 내린 소녀들. 물을 마시며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일 다시 만나자, 혹은 좀 더 타자, 너무 덥다 등등의 이야기를 하는 걸까? 어떤 남학생, 혹은 선생님에 대해서? 순식간에 상상했다.
몇살인지, 초등학생인지, 매일 이렇게 밤에 자전거를 타는지 묻고 싶었지만 호기심을 참고 그냥 지나쳤다. 조금만 더 소녀들을 지켜보았다간 이상한 할머니로 보일까 봐 염려되기도 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무턱대고 인사하고 이야기도 나누려 하는 사람은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는 때니까.
그런데 다시 단지를 이리저리 걷는 내내 마음에서 소녀들의 인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우선 건강하고 또 당당해 보였던 것. 주변에 신경 쓰지 않는 것. 만약 그 소녀들이 또래의 소년들이었다면 이런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학교 운동장이나 아파트 단지의 작은 운동장에서도 소리 지르며 웃통을 벌거벗고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니까. 그래서 그런 씩씩함은 남자의 몫이라고 생각하니까.
집으로 돌아와서도 소녀들의 인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받은 소녀들의 인상. 그것이 이 시대, 소녀들의 실체적 전형이라고 주장하고 믿어도 될까? 괜찮을까? 이리저리 생각해봤다. 남자와 여자의 생활 태도를 정반대로, 대칭적으로 규정짓고 그것이 도덕적이며 인륜에 맞는다고 배웠던 세대에겐 아무래도 놀랍다. 남자와 여자의 성적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 것 같아 사뭇 진보를 느낀다. 사회에 대해, 스스로의 목소리로 ‘왜?’라고 질문하는 여성이 돋보이니까. 물론 궁극적으로는 그런 여성이 돋보이지 않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만.
몇년 전, 손녀뻘 되는 20대 여성과 산책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여성들이 전통적인 문화적 편견에서 벗어난다면 한 사람으로 가진 능력을 아낌없이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 세대 여성은 남성과의 차별을 ‘운명’이라고 믿게 한 시대에 살았고, 그것에 저항하면 ‘파문’되기도 했다. 그래서 여성은 어떤 남성을 만나고, 그 남성이 속한 어떤 집안으로 존재 이전을 하느냐에 따라 삶이 바뀌므로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생겼었다. 이제 뒤웅박 팔자가 여성 억압의 미신이라 여겨지는 시기를 지나 농담거리로도 말해지지 않게 됐다. 그러니 여성과 남성은 서로 다름을 차별하지 않고 존중하고 보완하면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서울대학교 출신의 남성이 대학 동문들 사진 등을 불법합성해 성범죄물을 제작 유포했다.
“익명의 계정으로부터 대뜸 제 얼굴이 합성된 음란물 수십장과 남성들의 자위 영상이 쏟아져 왔을 때, 제 사진과 신상정보를 유포한 단체 대화방에서 다수의 가해자들이 함께 낄낄대며 저를 희롱하고 모욕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게 다름 아니라 대학이란 공간에서 저와 함께 지냈던 이들의 짓이라는 처참한 진실 앞에, 제가 알고 있던 세상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사람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게 지옥 같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런 세상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했습니다.” “신상정보와 사진, 허위 영상물 등은 불특정 다수에게 유포됐고 범행에 가담했으나 여전히 잡히지 않은 수많은 가해자들이 어디서 어떻게 피해물을 이용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를 떠안고 살아가야만 합니다.” 사건 피해자가 재판부에 보낸 진술문의 일부를 인용했다.
한겨레는 지난달 28일 신진희 성범죄 피해자 전담 국선변호사와 면담한 내용도 보도했다. “제가 만나본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은 ‘내가 죽어도 안 끝날 것 같다’고 말해요. 피해자가 숨지면 ‘유작’이라고 조롱하면서 성범죄물이 더 많이 유포되거든요.” 기사는 이렇게 신 변호사의 말로 시작되는데 다 읽고 나면 여성의 몸으로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일이 지옥이란 생각이 든다. 여성의 몸을 조롱하고 능멸하되 그것이 현장의 범죄가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범죄 현장’이 된다. 심지어 피해 여성이 지극한 환멸로 지구를 떠나도 ‘유작’이라니!
여성에 대한 성범죄의 근원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여성에 대한 차별 의식이다.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인격의 사람이 아니라 남성의 요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그 존재 가치가 증명되는 ‘다른 존재’라는 것, 이것은 남성이 여성에게 가지는 편견이 아니라 하늘이 내린 것이라는 것, 하늘에는 두개의 태양이 없다는 것 등등. 여성혐오의 오래된 역사를 톺아보지 않고는 여성의 몸 그 자체에 대한 범죄를 없앨 순 없을 것이다. 남성 서사 속에 여성이 어떻게 등장하는지, 다루어지는지, 그 사랑과 존중의 방식을 지금의 소위 민주니 평등이니 진보니 하는 관점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내가 자랄 땐 딸이 가정에서 차별을 경험하며 자기 비하의 정서를 체화했다. 그런데 이제 불평등은 범죄라고 느끼는 딸, 학생, 청소년, 신입 직원, 후배들이 삶에서 저절로 만들어내는 성평등 문화! 오랜 역사의 남성우월주의에는 가소로운 도전일까? 이른바 남성성의 정서엔 불쾌하고 불편하고 괴롭기만 할까? 불쾌하고 불편하고 괴로울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지금 자라나는 여성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건 문화의 충돌! 새로운 것의 탄생은 반드시 충돌과 파괴와 갈등을 통해서만 가능할 테니까.(그런데 새로운 문화가 정착하기 전에 지구가 망하는 건 아닐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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