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컷에도 숨죽인 자금시장… `경기침체`가 돈 흐름 바꾼다
발표후 금값 사상 최고치 기록
침체 확인 땐 달러·국채 유입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4년 반만에 금리 인하에 나서면서 글로벌 투자자금 향방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금리인하가 경기침체를 동반했는지에 따라 자금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빅컷'(금리 0.50%p 인하) 이후 환율과 주식 등 시장이 관망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경기침체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기 때문으로 봤다.
18일(현지시간)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기준금리를 5.25~5.50%에서 4.75~5.00%로 50bp(1bp=0.01%) 인하했다. 지난 2020년 3월 이후 4년 6개월 만에 미국의 금리인하 사이클이 시작됐다.
현금 보유만으로 연 5%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었던 고금리 시대가 저물고 내년까지 1.50%포인트(p)의 추가 금리 인하가 예상되면서 투자자들의 전략 수정도 불가피해졌다. 다만 아직까지 해석이 분분한 미국의 '경기침체' 여부에 따라 투자 자금의 방향도 갈릴 것으로 보인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회의 이후 기자회견에서 이번 빅컷이 미국의 경기침체 신호가 아닌, 선제적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미 노동시장 냉각 등 경기침체가 시작된 상황에서 연준의 금리인하 대응이 너무 늦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고금리 시기 머니마켓펀드(MMF) 등에 집중됐던 자금 유출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인베스트먼트 컴퍼니 인스티튜트에 따르면 연준의 금리인상이 시작되면서 2022년 9월 1조5000억달러였던 MMF 개인 투자금은 지난주 약 2조6000억달러까지 불어났다.
다만 경기침체가 동반한 금리인하라고 해석될 경우, 오히려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미국채에 자금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남아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같은 안전자산 선호 여부는 달러화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통상 미국의 기준금리가 내리면 달러도 약세를 보이지만, 미국의 경기침체가 확인될 경우 역설적으로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달러가 상대적 강세를 보이며 자금이 미국으로 유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달러지수는 이날 금리인하 발표 직전 99.98까지 급락한 뒤 발표 이후 101까지 치솟았다. 이후 시장이 다시 관망세로 돌아서며 100.4로 안정세를 찾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이번 금리인하가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 신호가 아닌 정책 금리의 '재조정'이라고 봤다. 시장 반응 역시 빅컷 직후 경기침체 우려가 커졌지만, 기자회견 이후 이를 대부분 해소했다고 해석했다. 다만 이같은 연준의 정책 조정이 실패할 가능성은 남아있다고 봤다.
아디티아 바베 BofA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이 오늘 밝힌 것보다 금리 인하 속도를 앞당길 것으로 본다"며 "노동 시장은 여전히 미온적일 가능성이 높아 시장에서는 4분기 또 한번의 빅컷을 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재 시장에서는 연준의 빅컷 결정에도 이같은 경기침체 우려를 이미 반영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날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금값은 연준의 금리인하 발표 이후 2600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후 소폭 조정을 받았지만 여전히 2570달러 선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국제 유가의 경우 서부텍사스산원유(WTI) 11월 인도분은 선물시장에서 70달러선에 거래되며 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브렌트유 역시 반등 없이 74달러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통상 금리가 낮아지면 위험자산 선호도가 높아지고, 차입 부담 저하로 기업의 경제활동 기대감이 높아진다. 이 경우 안전자산인 금값은 약세를 보이고, 유가는 수요 증가로 강세를 보인다. 하지만 가격 방향이 반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결국 시장에서 경기침체 가능성을 더 크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김상훈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번 금리인하가 시장에 미칠 영향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하지만, 원자재 시장에서의 판단은 어느정도 판가름이 났다고 볼 수 있다"며 "주식시장의 경우 이날 빅컷 전후의 큰 움직임이 경기침체 우려 때문인지, 단순히 시장의 예민한 반응이었는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국내 증시에 대해서는 "이날 코스피 변동은 경기침체 가능성을 높게 예상한 결과일 수 있다"며 "경기 둔화에 민감한 IT 섹터가 큰 폭으로 하락했고, 관련 종목의 시총 비중이 높은 코스피 역시 약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대한 우려는 다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저금리인 일본 엔화를 빌려 고금리·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전략이다.
지난 7월 일본 중앙은행(BoJ)가 금리를 인상하고, 연준의 금리인하 기대감이 높아지자 투자자들이 엔 캐리 트레이드를 급격하게 청산했고, 8월 5일 글로벌 증시가 일제히 폭락하는 '블랙 먼데이'를 야기한 바 있다.
이번 연준의 금리인하와 20일 정오 발표되는 BoJ의 통화정책회의 결과와 맞물리며 이같은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야마다 슈스케 BofA 일본 환율 담당자는 "BoJ가 이번 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며 인플레이션 상승 위험이 감소했고, 미국 경제 전망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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