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개 먹는 이민자’는 어떻게 시작됐나
미국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는 <힐빌리의 노래>를 쓴 공화당 부통령 후보 J D 밴스의 고향과 가까운 곳이다. 한때 ‘작은 시카고’라 불릴 만큼 번성했던 이 도시는 다른 러스트벨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제조업이 무너져 사람들이 떠나가고, 많은 집과 건물은 폐가가 됐다.
다행히 도시는 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 덕에 2017년부터 전환점을 맞았다. 일본 자동차부품 공장 유치를 필두로 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계속된 인구 유출로 인한 노동력 부족이었는데, 그 빈자리를 메운 것이 아이티 이민자다. 최근 몇년 새 스프링필드로 몰려온 아이티 이민자는 1만5000여명에 달한다.
경제는 활력을 찾았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겨났다. 급격한 인구 증가로 집값이 치솟고, 학교와 병원 등이 부족해졌다. 수면 아래 부글부글 끓던 불만이 터져나온 계기는 교통사고였다. 지난해 아이티 이민자가 몰던 차량이 스쿨버스와 충돌해 11세 소년이 사망했다. 일부 사람들은 “아이티 이민자가 어린이까지 죽였다”며 누적된 분노를 이민자에게 쏟아냈다.
급기야 지난달 열린 시의회 청문회에서 한 인플루언서가 “아이티 이민자들이 공원의 오리를 잡아먹고 있다”고 발언하면서 혐오가 증폭되기 시작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고양이를 잡아먹는 사람의 영상이 올라왔다. 도널드 트럼프의 아들과 일론 머스크가 이 게시물을 공유하고, 밴스가 “이민자들이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데 카멀라 해리스는 무얼 하고 있나”라는 글을 올리면서 일파만파 확산됐다. 하지만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시 당국 조사 결과 공원의 오리는 잡아먹힌 적이 없고, 고양이를 잡아먹는 영상은 아이티 이민자도, 스프링필드도 아니었다.
지난 10일 다시 열린 시의회 청문회에서 한 남성이 발언을 자청했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11세 소년의 아버지였다. “제 아들은 이민자에게 살해당한 게 아니라 교통사고로 죽은 겁니다. 차라리 아들이 60세 백인 남성이 모는 차에 치였다면 좋았겠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렇다면 이런 혐오는 없었을 테니까요.” 그가 아들의 죽음을 이용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한 날은 트럼프가 대선 TV토론에서 아이티 이민자들이 개를 잡아먹고 있다고 말한 날이었다.
정유진 논설위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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