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칼럼] `세계 최초`만이 목표인 AI 디지털교과서 사업
내년부터 교육 현장에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가 등장한다. 국가 교육 수준에서는 '세계 최초'의 일이라고 한다. '맞춤형' 지식 교육을 전담하는 AI 디지털교과서가 교실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고 야단법석이다. 현장의 교육 격차를 확실하게 해소하고, 수포자·영포자까지 포용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교육은 제쳐두고 오로지 겉으로만 화려한 디지털 전환만 강조하는 교육부와 일부 교육학자들의 어설픈 주장이다.
정작 AI 교과서를 활용해야 하는 교사의 인식은 정반대다. 지난 7월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반대하는 교사가 73.6%나 된다. 찬성하는 교사는 12.1%뿐이다. '학습 효과성'이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학생들의 '디지털 중독'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학부모 역시 디지털 중독에 의한 문해력 저하를 걱정한다. 지난 6월 27일 마감한 국회의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유보에 관한 청원'에 동의한 국민도 5만6505명이나 된다.
디지털교과서가 우리에게 낯선 것은 아니다. 이미 2015년에 일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도입된 적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까지 역임했던 이주호 장관의 작품이었다. 오늘날의 전자책(e-book) 수준의 초라하고 어설픈 수준이었지만 시범학교까지 지정하면서 요란하게 출발했다. 그러나 아까운 예산만 낭비하고 학교 현장에서 곧바로 퇴출됐다. 교육부의 가장 부끄러운 정책 실패 사례 중 하나다.
이주호 장관의 복귀와 함께 기사회생한 AI 디지털교과서가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챗GPT 덕분에 유명해진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포장을 바꿨을 뿐이다. 교육부가 내놓을 AIDT가 어떤 수준의 AI를 활용하는지도 분명치 않다. 더욱이 생성형 인공지능이 교사의 역할을 떠맡을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하게 발전한 것이 아니다. 학생의 성과를 정확하게 평가하지도 못하고, 평가 문항을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완성인 생성형 인공지능의 부작용을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생성형 인공지능이 활용하는 '대규모 언어 모델'은 놀라울 정도로 부실하다. 학생에게 가르쳐야 할 '팩트'나 '진실'을 판단하는 능력은 절대 기대할 수 없다. 인터넷의 방대한 자료를 통계적으로 분석·처리하고, 그럴듯하게 '표절'하는 기묘한 능력이 고작이다. 세계적인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의 냉정한 평가다. 그런 인공지능에게 '창의성' 교육까지 기대한다는 교육부와 교육학자의 주장은 황당한 것일 수밖에 없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오류'에 해당하는 '환각'(hallucination)의 문제도 절대 외면할 수 없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학생 교육에 꼭 필요한 '윤리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인공지능 개발 초기에 논란이 되었던 욕설과 차별적 언어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했다. 그런데도 생성형 인공지능을 철저하게 규제해야만 한다는 목소리는 오히려 더 커지고 있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딥페이크 공화국'이라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전 세계 딥페이크(허위 영상물) 성착취물 피해자의 53%가 한국인이다. 우리 사회가 '신기술'이라는 이유만으로 생성형 인공지능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끄러운 결과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 현장은 다를 것이라는 교육부의 순진한 인식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실제로 인공지능 교과서보다 인공지능을 합리적·윤리적으로 활용하는 자세에 대한 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새로운 '사교육 카르텔'로 등장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에듀테크 기업과의 유착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심각하다. 교육부가 졸속으로 밀어붙이는 AIDT의 구독 예산이 연간 1조 원을 넘어서는 모양이다. 올해부터 3년 동안 32만 명의 교사 연수에 투입되는 예산도 1조 원이나 된다. AIDT가 교육재정을 빨아들여 에듀테크 기업의 배를 불려주는 '검은 블랙홀'로 변질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깜깜이 교육개혁'은 공정·정의·상식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도록 "각별히 살피겠다"는 이주호 장관의 각오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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