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해킹' 소문에 속은 헤즈볼라 … 이스라엘 3년 설계에 당했다

김상준 기자(kim.sangjun@mk.co.kr) 2024. 9. 19. 17:4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레바논 무선호출기·무전기 폭발사건 궁금증
이 비밀 첩보기관 '8200부대'
모사드와 수년 동안 작전 주도
통신 감청·해킹 등 소문 퍼트려
헤즈볼라 '휴대폰 자제령' 유도
무선 호출기에 심어진 폭발물
유령회사 세워 직접 만들거나
운송할 때 내부에 설치했을 듯
18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헤즈볼라 대원들이 무선호출기 폭발로 숨진 4명의 시신이 든 관을 옮기고 있다. 지난 17~18일 레바논 전역에서 호출기와 무전기가 폭발하면서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방식을 고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7~18일(현지시간) 레바논을 뒤흔든 '삐삐(무선호출기)·무전기(워키토키) 동시 폭발 사건'으로 수천 명이 피해를 입은 가운데 이스라엘이 이번 사건의 배후임을 사실상 시인했다. 이스라엘이 왜 지금 이 같은 폭발 사고를 일으켰는지, 어떻게 폭발물이 장착된 삐삐가 헤즈볼라에 자연스레 전달됐는지 등 사건 전반에 대한 의문이 쏟아지고 있다. 주요 궁금증을 외신과 전문가 의견을 기반으로 정리했다.

―이스라엘, 삐삐 '유령회사' 수년 동안 운영하며 직접 생산?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의 이스라엘 정보당국 관계자 3명을 인용해 삐삐를 위탁생산한 헝가리 업체는 이스라엘이 몇 년 전에 설립한 '유령회사'라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이 공급망에 직접적으로 침투했다는 의미다.

레바논 전역에서 폭발한 삐삐는 대만의 삐삐 제조업체 골드아폴로가 만든 'AR-924' 제품이다. 사건 발생 직후 골드아폴로는 유럽의 제휴업체에 위탁생산 권한을 줬을 뿐, 자신들은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폭발한 삐삐가 제작된 곳은 사실상 '유령공장'이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소재의 'BAC'로 추정되는데, 골드아폴로 측은 "BAC가 그동안 송금해온 금액에 이상한 부분이 많았다"고 밝혔다고 BBC방송이 전했다. 로이터통신이 직접 업체 주소지를 방문한 결과, 간판도 없이 출입문 유리에 A4 용지로 회사 이름만 적혀 있었다.

NYT에 따르면 BAC는 평시에는 일반 업체처럼 주문을 받고 정상적인 제품을 생산해 납품했다. 그러나 헤즈볼라로 추정되는 단체가 주문을 넣었을 때는 폭발물 등을 포함해 삐삐를 제조했다.

―폭발물 언제 심었나…제조할 때?

앞서 삐삐를 해킹해 배터리가 폭발하도록 했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전문가들은 사건 규모를 보면 제작뿐만 아니라 발주 과정에까지 이스라엘이 깊숙이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 2년 정도는 준비해야 하는 '공작'이라는 게 중론이다.

미국 뉴욕대 국제문제센터 교수인 니컬러스 리스는 AP통신에 "이 정도 공격을 위해서는 삐삐 생산·판매가 시작되기 전에 (삐삐에) 물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장치에 폭발물을 내장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표적이 삐삐를 소지하고 있다는 정보를 확인할 채널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삐삐 폭발 다음 날인 18일 레바논 전역에서 발생한 무전기 폭발 사건 역시 이스라엘이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폭발을 일으킨 과정이 유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폭발한 무전기들은 일본 '아이콤' 제품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이콤 관계자는 AP에 해당 무전기가 모조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해당 모델(IC-V82)은 단종된 제품이다.

아랍 매체 알자지라방송은 이날 군사 분석가들을 인용해 헤즈볼라에 공급된 삐삐가 레바논으로 운송되기 전 3개월 동안 항구에서 선적을 기다렸는데, 이때 이스라엘 측이 폭발물을 설치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실무 맡은 8200부대 정체는.

최소 몇 년이 소요되고, 사이버 역량과 엔지니어링 기술이 필요한 이번 프로젝트를 해외 정보 공작 담당 기관인 이스라엘 모사드 혼자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로이터는 서방의 고위 안보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 군 정보기관에 속하지 않는 비밀 첩보기관 8200부대가 이번 작전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8200부대는 남녀 모두 군 복무를 하는 이스라엘 최고 엘리트가 모이는 부대다. 젊은이 중 학습 능력이 뛰어난 인재가 선발되며, 코딩이나 해킹 등 컴퓨터 관련 역량을 교육받은 뒤 신호 정보 감청, 사이버전·정보 수집 등 임무를 수행한다.

8200부대를 전역하면 이스라엘이나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수 정보기술(IT) 기업에 쉽게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국가 기밀에 가까운 첨단 정보기술을 다룬다고 알려졌다.

―헤즈볼라 수장, 올 초 '휴대폰 자제령'…삐삐 공격 꿈에도 몰랐나.

헤즈볼라 대원들이 올 들어 삐삐를 많이 사용하게 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수장은 지난 2월 이스라엘의 통신 감청 등을 우려해 대원들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라는 지령을 내렸고, 이 명령이 피해를 키운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첩보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나스랄라에게 의도적으로 '삐삐나 무전기로 갈아타야 한다'는 생각을 심었다고 보고 있다. 최근 중동에서는 이스라엘이 휴대전화를 해킹해 원격으로 카메라나 마이크를 몰래 작동시키는 방식으로 사용자를 감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헤즈볼라 등 이슬람 무장단체가 수개월 전부터 삐삐 등을 대거 반입한 배경이다. 애초에 삐삐 폭발 작전을 염두에 두고, 이스라엘이 이러한 소문을 퍼뜨렸을 수 있다.

[김상준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