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산업안전 선진국으로 가는 길, 예방적 사법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울산지방검찰청에서 근무했던 2014년, 울산산업단지에선 불산 누출, 석유 유출, 공장 폭발 사고가 연속 발생했습니다.
지게차 사고 예방을 위해 우리는 바닥에 노란 선을 긋고 접근하지 않게 교육한다면, 외국계에선 안전 울타리와 육교를 설치합니다.
안전 미비로 인명 사고가 발생하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합니다.
'사고 예방'과 '경쟁력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방법은 없을까.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장 자율성·노사협치 강조
처벌보단 예방에 초점 맞춰
안전한 현장 긴호흡 필요해
울산지방검찰청에서 근무했던 2014년, 울산산업단지에선 불산 누출, 석유 유출, 공장 폭발 사고가 연속 발생했습니다. 공단 설립 50년이 지나 시설도 노후화되고 배관도 복잡해졌습니다. 시민 불안이 커지자 검사장도 현장을 살폈습니다. 우리 기업보다 외국계 회사의 안전시설이 앞서 있었습니다. 지게차 사고 예방을 위해 우리는 바닥에 노란 선을 긋고 접근하지 않게 교육한다면, 외국계에선 안전 울타리와 육교를 설치합니다. 근원적 예방에는 긴 호흡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산업재해 사고 사망이 매년 800명이 넘습니다. 지난해 812명으로 20년간 줄고 있지만, 주요 선진국보다 3배 이상 많습니다. 근로자 1000만명당 사망 인원이 우리가 390명이라면 일본은 130명, 독일은 120명, 영국은 30명입니다. 안전을 요구하는 국민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지하철역에서 스크린도어를 홀로 정비하던 청년의 죽음과 화력발전소 하도급 업체 직원의 희생이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어냅니다.
종래의 산업안전보건법과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죄는 현장 실무자 처벌이 많았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최고경영책임자를 처벌합니다. 직원 5명 이상이면 제조업체는 물론 소상공인, 자영업자도 대상입니다. 안전 미비로 인명 사고가 발생하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선 찬반양론이 대립됩니다. 찬성 입장에선 산재를 줄이려면 예산과 조직, 시스템을 결정하는 책임자를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측면에서도 근로자의 생명권이 가장 앞선다고 강조합니다. 반면 처벌보다 예방이 중요하며 법 내용이 불명확해 어디까지 지켜야 할지 모르겠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외국 기업들과 경쟁하려면 안전 못지않게 신속도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사고 예방'과 '경쟁력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방법은 없을까. 우리와 비슷했던 영국이 1970년대 이후 기울인 노력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영국도 연간 산재 사망 1000명이 줄어들지 않자 2년간 원인을 분석하고 183곳의 전문기관과 전문가 의견을 구해 대책을 내놓습니다. '로벤스 보고서'로 불리는, 독보적인 산업안전 정책 제안서입니다. 무엇보다 '현장의 자율성'을 강조합니다. 현장의 위험을 잘 아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나서야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처벌보다 '노사 협치'를 중시합니다. 처벌이 중심이 되면 숨기고 방어할 수밖에 없고 예방은 뒷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방에 써야 할 근로감독관의 시간과 노력도 빼앗깁니다. 무모하고 명백한 위법행위만 확실히 처벌해야 한다고 권합니다. 감독관의 전문적 조언과 지원도 제안합니다. 로벤스 보고서에 따라 1974년 노동보건안전법이 제정되고, 50년의 노력 끝에 사망자 1000명이 200명 아래로 줄어듭니다.
종래 산재는 '무관심과 부주의' 속에 많이 발생했습니다. 강한 처벌법 제정으로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성과입니다. 그러나 처벌을 면하기 위한 소극적 행동에 그치게 해서는 사고를 못 막습니다. 예방에 초점을 맞춘 법과 정책이 필요합니다. 예방을 위해 합당하게 노력한 경영자는 면책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력했는데도 발생한 예상치 못한 사고는 조사를 신속히 마무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고 후 개선 프로그램을 이행하면 책임을 감면해주는 제도도 필요합니다. 노사가 함께 안전한 현장을 만들도록 정부는 도와야 합니다. 사업장 위험을 짚어낼 수 있는 전문기관도 키워야 합니다. 처벌은 눈에 띄지만 예방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쉬운 지름길도 없고 한 방에 고치는 만병통치약도 없습니다. 꾸준하고 자발적인 관심과 노력만이 산업안전 선진국을 만듭니다.
[봉욱 전 대검 차장·변호사]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국민연금 3880만원 넣고 매년 年420만원 넘게 타는 법…뭐길래[언제까지 직장인] - 매일경제
- “가장 충격적인 소식”…12월 일본 가는 가수 김장훈, 무슨일이 - 매일경제
- 임시공휴일까지 지정했는데…국민 22%, 10월 황금연휴 부정적? - 매일경제
- [단독] ‘호반 2세와 결혼’ 김민형 전 아나운서, 호반그룹 ‘상무’ 됐다 - 매일경제
- 4m 비단뱀이 여성 칭칭 감았다…신고 받고 출동한 대원이 본 충격적 장면 - 매일경제
- “적당히 비쌌어야지”...2030 빠져나가자 찬바람 부는 골프웨어 - 매일경제
- “억장 무너진다” 이것 함부로 투자했다가 85%가 손실…당분간 회복도 어렵다는데 - 매일경제
- 의성에 100만평 규모 TK신공항 배후도시 조성 - 매일경제
- “넌 아직도 벤츠 타니”…성공하면 이젠 제네시스, 그 돈에 왜 샀을까 [세상만車] - 매일경제
- 추신수에게 도움받았던 화이트의 다짐 “나도 그처럼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겠다” [MK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