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재심 한다···대법, 검찰 재항고 기각

정대연 기자 2024. 9. 1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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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한수빈 기자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으로 옥살이를 했던 부녀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이 19일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이날 광주고법의 재심 결정에 대한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하고 백모씨(74)와 백씨의 딸(40)에 대한 재심 개시를 확정했다.

백씨 부녀는 2009년 7월6일 전남 순천시 자택에서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타서 백씨의 아내 최모씨 등 2명에게 마시게 해 살해하고 2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으나 항소심에서 유죄로 뒤집혀 아버지 백씨에게는 무기징역이, 딸에겐 징역 20년이 각각 선고됐다. 대법원은 2012년 원심을 확정했다. 검찰은 백씨 부녀가 서로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왔고 이를 숨기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핵심 증거인 청산가리가 사건 현장 등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청산가리를 넣을 때 사용했다는 플라스틱 숟가락에서도 청산가리 성분이 나오지 않는 등 사건 진상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아버지 백씨는 문맹이었고, 딸은 지적장애가 있었다.

부녀는 대법원 확정 판결 10년 만인 2022년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다. 광주고법은 지난 1월 부녀 측 주장을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고 부녀에 대한 형 집행을 정지시켰다. 부녀는 구속된 지 15년 만에 석방됐다.

광주고법은 당시 해당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방식에 대해 “검사의 의도대로 딸의 진술을 이끌어내기 위해 딸에게 검사의 생각을 주입하며 유도신문을 했다”며 “아버지 백씨에 대한 수사 방향을 단정적으로 제시하는 방법도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신문 방법은 진술의 임의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사회통념상 현저히 합리성을 잃은 것으로, 위법한 수사권의 남용에 해당한다”면서 검사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광주고검은 “부녀가 범행을 자백했고 수사 과정에서 강압은 없었다”며 판결에 불복했으나 대법원은 이날 광주고법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박준영 변호사는 이날 기자와 통화하면서 “수사권을 남용해 받아낸 자백은 증거로 쓸 수 없다”며 “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자백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신문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경우 직권남용이라는 형사책임을 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번 재심 확정이 검찰과 경찰의 위법한 신문 관행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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