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예감] 영재였던 사도세자는 왜 미칠 수밖에 없었나 - 이한 작가 (역사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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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라디오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인용 보도 시,
아래와 같이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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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조들도 어려워했던 자식 농사, 조선시대 교육법은?
- 사도세자에 '압박교육' 시켰던 영조, 결과는 부정적
-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 "내 자식은 내가 못 가르친다"
- 제자에게 너그럽던 퇴계 이황, 자식 교육은 전전긍긍
- 아들 조기교육 시켰던 정약용, 귀양 가서도 편지로 닦달
- 정약용 아들이 의사가 된 이유? 아버지 집착에 대한 반항
- 자식 교육에 집착하면 실패..'알묘(揠苗)' 싹을 뽑지 말라
■ 프로그램명 :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
■ 방송시간 : 9월 19일(목) 09:05-10:53 KBS1R FM 97.3MHz
■ 진행 : 이대호
■ 출연 : 이한 작가 (역사커뮤니케이터)
◇이대호>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 2부의 문을 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저희가 조선시대 사교육 이야기를 해 봤는데요. 임금님들이 얼마나 자식 교육에 열을 올리셨는지 그런 이야기를 했었죠. 사실 입신양명, 우리 자식들이 조금 더 나은 위치로 올라가길 바라는 거는 모든 부모들이 다 같은 마음이겠죠.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그래서 이제 자식 농사가 더 어렵다라는 표현도 나오기도 하는데요. 부모가 그런데 열을 올리면 올릴수록 원하지 않는 엉뚱한 결과가 나왔다고도 합니다. 역사를 통해서 한번 배워보시죠. 역사 커뮤니케이터 이한 작가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이한> 안녕하세요.
◇이대호> 진짜 자식 농사가 밭농사, 논농사보다 더 어렵다라는 얘기가 예부터 있었던 겁니까?
◆이한> 옛날에 이런 말이 있죠. 어렸을 때는 내가 공부 잘한 걸로 자랑을 할 수 있고 좀 더 나이가 들면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직업을 가진 걸로 자랑할 수 있는데 중년이 되면 내 자식이 공부를 잘하는 걸로 자랑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제는 결혼하신 분도 적어지고 아이도 덜 태어나니까 이 시대상이 바뀌겠지만 어쨌거나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은 자식을 제대로 키우는 것이겠고 또 이 며칠 추석 연휴였으니까 친척들끼리 만나면 또 자식 자랑. 그런데 어느 시대건 진짜 어느 나라건 부모는 계속 자식에게 잔소리를 합니다. 열심히 해라. 성실히 살아라. 공부 열심히 해라.
◇이대호> 그런데 이게 부모 마음은 다 똑같죠.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니까. 그런데 이걸 듣는 자식들 입장도 생각해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한> 그렇습니다. 자식에 대한 잔소리로 가장 유명한 걸 고르자면 역시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이 자기 아들 제갈첨에게 남긴 계자서. 즉, 훈계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에 따르면 ‘나이는 시간과 함께 달려가고 의지는 세월에 따라 약해지니 고목이 말라 시드는 것처럼 두루 세상에서 버림을 받을 것이다. 가난한 초가집에서 탄식하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농땡이 피우지 말고 열심히 해라. 아니면 너 가난해진다라는 건데.
◇이대호> 세상에서 버림받을 수 있다. 열심히 안 살면.
◆이한> 그런데 이게 잔소리의 정석인데 이 계자서는 조선시대 아버지들도 자주 인용해서 써먹었는데 아마 지금도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대호> 이게 제갈공명의 말씀이다. 잔소리의 정석이네요.
◆이한> 그런데 이걸 들었던 제갈첨은 당직이 8살이라서 8살 아이한테 열심히 해 봐라라고 해 봤자 글쎄 얼마나 잘 이해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대호> 8살 아들이었던 제갈첨에게 남긴 훈계하는 글 계자서. 이거를 이제 인용을 하는 것도.
◆이한> 저번에 중국에서 보니까 이 글을 그 돌벽에 새겨놨더라고요. 그래서 잔소리가 유명한 사람의 잔소리도 조각으로 역사적 유물로 남는구나, 제가 감탄했습니다.
◇이대호> 사람이 유명해지면 그 사람의 잔소리도 유물이 된다. 좋네요. 제갈공명의 계자서 이야기였고 세속적인 기준에서 공부를 잘하는 것도 사실은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 가장 대표적인 거잖아요. 공부 자체가.
◆이한> 그렇죠. 어느 시대나 조선시대에는 특히 이제 공부 열심히 해라. 지금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조선시대의 공부란 그냥 다 재미없게 그 한자를 읽고 외우고 쓰는 거였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이야 학원을 보내지만 조선시대 때는 그런 사교육이나 공교육이 제대로 없었기 때문에 보통 할아버지가 손자를, 아버지가 아들을, 좀 터울이 있지만 형이 동생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때 그 선비들 또는 아이들의 교육 환경도 꽤 힘들었는데요. 퇴계의 후손이 적은 사부일과라는 선비들의 일과표가 있는데 여기에 따르면 아이들의 공부 시간표가 굉장히 험악했습니다. 먼저 새벽 5시부터 7시에는 공부를 진도를 나갑니다.
◇이대호> 새벽 5시부터요?
◆이한> 예, 그다음에 7시부터 9시까지는 글을 쓰고 9시부터 11시까지는 독서를 하고 그다음에 중간에 점심 먹고 3시부터,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읽은 걸 외우고 7시부터 8시까지, 5시부터 7시까지는 질문을 받고 그다음에 7시부터 9시까지는 복습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대호> 이게 퇴계 이황의 후손이 쓴 일과표예요? 새벽 5시부터 밤 9시까지 점심시간 제외하고는 글 읽고 쓰고 외우고 질문하고 복습하고 이거예요?
◆이한> 그렇습니다.
◇이대호> 이거는 아니, 요즘 아이들도 이렇게 하기는 힘들 텐데요.
◆이한> 물론 이 사부일과라는 게 이상적인 일과를 적은 것이지 실제로 이렇게 한 거는 어려웠을 것 같고요. 실제로도. 그다음에 보통 이렇게 사부일과에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버지 본인도 공부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사람이 어떻게 매일매일 이렇게는 못하죠. 그리고 또 이제 생계 걱정이 없는 양반이나 가능한 것이지 심지어 양반들조차도 일이 있는 날이 있지 않습니까? 남의 집 일을 봐주러 간다거나 과거 시험 본다거나. 그렇기 때문에 이상적이지만 어쨌거나 선비의 가장 중요한 거는 아들들을 계속 쪼아서 공부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죠.
◇이대호> 일단 굉장히 타이트하게 새벽 5시부터 밤 9시까지 점심시간 제외하고는 계속 공부하는 시간으로 짜놨다. 이게 퇴계 이황 선생님의 집안.
◆이한> 네, 그렇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가르쳐서 다 과거에 급제하고 잘 나갔느냐 하면 그건 아니죠.
◇이대호>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데.
◆이한> 그렇습니다.
◇이대호> 특히 자식 농사는 더더욱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 사례들을 한번 살펴볼까요? 좀 잘 된 케이스도 이따 여쭤보겠는데 잘 안 된 케이스에 좀 낙제점이었던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대표적으로.
◆이한> 역사적으로 자식 농사가 가장 망친 경우에는 역시 사도세자가 아닐까 합니다.
◇이대호> 영조와 사도세자.
◆이한> 네, 사도세자인데 사실 아이가 그냥 못 나가거나 공부를 그만뒀거나 사고친 정도가 아니라 존속 살인까지 벌어졌지 않습니까?
◇이대호> 요즘 표현으로는 존속 살인이네요.
◆이한> 그렇죠. 그러니까 사도세자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로 많이 만들어져서 잘 알려졌지만 이제 그중에서 중요한 것은 조선시대 사교육의 끝판왕이 여기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사실 사도세자가 잘못을 저지른 건 사실입니다. 많은 실수도 저질렀고 범죄도 저질렀는데 그런데 아이가 이렇게 크기까지는 아버지 영조의 잘못이 무지하게 많았기 때문에 요약하자면 애는 절대로 이렇게만 키우지 말자, 그 예가 바로 사도세자라고 하겠습니다.
◇이대호> 이게 참 씁쓸한 사례이긴 한데. 그런데 사도세자가 왜 그렇게 뒤주에 갇혀서 죽었는지를 보려면 출생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된다면서요?
◆이한> 그 아버지의 출생에서부터 좀 많이 꼬여 있긴 합니다.
◇이대호> 영조의 출생부터요?
◆이한> 네, 영조는 이제 잘 알려진 대로 무수리. 궁녀 중에 가장 천한 사람인 무수리의 자식으로 태어났습니다. 물론 그게 영조에게 뭔가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조선 초기에는 어머니의 신분이 천하면 그거에 대해 안 좋게 보긴 했지만 이 시기에 오면 왕손이 너무 귀했기 때문에 왕의 아들이기만 하면 사실 오케이였거든요. 영조의 아버지인 숙종에게는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아들이 셋이었는데 셋이 다 어머니가 다릅니다. 첫 번째 아들인 경종은 잘 알려진 장희빈의 아들이었고, 둘째 아들인 영조는 무수리였던 최숙빈의 아들이었고, 셋째 아들인 연령군은 명빈 박 씨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렇긴 한데 이제 그 연령군은 나중에 또 일찍 죽어요. 상관이 없지만 경종하고 영조는 서로 지지하는 당파가 달랐고 그래서 영조는 나중에 그 세제로, 그러니까 세자가 아니라 동생으로 왕위 후에 후계자에 올랐지만 그 후계자에 있는 동안에 정치적인 파란이 일어나서 영조를 지지한 사람들이 우르르 죽어나갔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영조 자신도 죽느냐 마느냐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공부를 못했고 준비된 세자가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왕이 돼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제 사실 영조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아들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 아들이 효장세자입니다. 그런데 영조가 왕이 되고 나서 9살 때 죽어요. 그다음에 영조가 계속 딸만 가집니다. 자식을 주르륵. 그래서 딸이 12명이었거든요. 첫째 아들이 죽고 계속 딸만 태어나다가 드디어 41살 때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게 사도세자입니다. 그러니까.
◇이대호> 귀한 아들인데.
◆이한>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사랑스러웠겠어요. 그랬는데 이게 비극의 단초가 되죠.
◇이대호> 41살 때 얻은 귀한 아들 그게 사도 세자였고 영조 자체는 준비되지 않은 왕이어서 본인부터 공부를 많이 못해서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고생을 하다 보니까 어떻게 보면 그 귀한 아들한테 더 열심히 공부를 주입식으로 시킬 수밖에 없었던 거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한> 그렇죠. 아무래도 사도세자가 그래서 영조는 정말 사도세자가 태어난 지 100일 만에 엄마에게서 떼어서 그 세자궁인 저승전으로 보냅니다.
◇이대호> 100일 만에요?
◆이한> 네.
◇이대호> 조선시대 이게 자연스러웠던 거예요? 아니면 이례적이었던 거예요?
◆이한> 굉장히 약간 좀 이례적이기는 했고 다른 건 몰라도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그 정조의 어머니였던 혜경궁 홍 씨가 적은 한중록의 이야기가 나와 있는데 이러다 보니 이것이 사도세자가 자라는데 첫 번째 원인이 되었다라고 보고 있습니다. 엄마 곁에서 떨어져서 궁녀들 틈에서 자라니까 사랑도 잘 못 받고 그다음에 궁녀들이 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사도세자에게 나쁜 영향을 줬다라는 것이 혜경궁 홍 씨의 의견이고요. 실제로 이 일 때문인지 나중에 아들인 정조는 자기 자식이 태어나거든요. 문효세자라고 일찍 죽었지만 문효세자는 친어머니 곁에서 자라게 배려해 줍니다.
◇이대호> 사도세자의 사례를 보고. 안 좋은 경험을 많이 했던, 태어나자마자 100일 만에, 그런 사도세자네요.
◆이한> 그리고 사도세자가 태어난 게 그 친모가 영빈 이씨라고 해서 후궁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후궁이 그냥 후궁이 아니라, 양반집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궁녀였다가 영조가 총애해서 빈이 된 경우였거든요.
◇이대호> 영조 자신도 출신이 그러했고 사도세자마저도 그러한 거네요.
◆이한> 사도세자 신분에 그게 문제가 된 건 아니지만 궁녀들이 영빈을 되게 무시합니다. 그러니까 영조는 그것 때문에 더 화를 내요. 그러면서 사도세자만은 잘 키우겠다라고 하는 건데 그래서 어릴 때부터 정말 온 나라의 모든 걸 긁어모아서 사교육도 아주 선생님도 정말 훌륭한 선생님을 갖추고 의례도 아주 화려하게 치러주고 그렇게 정말 온갖 정성을 들였고 사도세자도 최소한 수재나 영재 정도 수준은 되었던 것 같은데 애가 굉장히 눈치가 빨랐습니다. 실록에 보면 세 살인 사도세자가 효경이라고 그 어려운 책을 읽고 한자를 붓글씨로 써서 신하들에게 나눠주는 내용이 나오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한중록 같은 데 나오는 거 보면 어릴 때서부터 한자 같은 거 좀 읽고 그다음에 애가 눈치가 되게 빨라요. 그래서 이제 그 과자, 옛날에 과자가 다식이었거든요. 찍어내는 그런 달콤한 과자. 과자를 주면 그 과자에 목숨 수 자나 행복할 복 자가 쓰여져 있는 그런 건 먹는데 태극이 새겨져 있으면 안 먹으면서 여기에 천하가 새겨져 있으니 나는 안 먹겠다.
◇이대호> 사도세자 어렸을 때?
◆이한> 네. 서너 살 때 그 아기가. 그리고 이제 그 사치스러운 건 싫다라고 얘기하면서 자기가 입고 있는 비단옷 가리키면서 이건 사치스러운 거야, 나는 이런 거 싫어해라고 얘기를 했는데 애가 뭔가를 알았다기보다는 아빠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그걸 캐치하고 그걸 따라하는 거죠. 그러니까 굉장히 눈치도 빠르고 아빠가 나한테 원하는 게 뭔지 아니까 거기에 맞춰서 부응하려고 했던 똑똑한 아이였습니다.
◇이대호> 사도세자가 세 살 때 효경을 읽었다. 똑똑한 아이였고 눈치도 제법 있었고. 그런데.
◆이한> 그게 오히려 문제가 되었을 수가 있겠죠.
◇이대호> 영조가 봤는데 야, 똑똑하다, 나를 이을 세자가 저렇게 똑똑해, 더 가르쳐. 이렇게 된 거예요?
◆이한> 그렇죠. 그래서 사교육의 그런 늪으로 밀어넣고 계속 계속 공부를 시키는데 문제는 힘들죠. 힘들다 보니까 영조가 바라는 것만큼 퍼포먼스가 안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되니까 한중록에 따르면 계속 그 여덟 살 때까지 굉장히 예쁘게 사랑하다가 아홉 살 때서부터 호되게 야단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성인이 됐을 경우에는 정말 너무나도 미움에 차서 앉아 있으면 앉아 있다고 꼴 보기 싫고 서 있으면 서 있다고 야단치고 무슨 뭐 영조의 의향에 맞는 대답을 하면 너 원하는 게 이게 아닌데 나한테 맞추려고 거짓말했지라고 야단치고. 그렇다고 자기 소신에 맞는 말을 하면 그 엉뚱한 말을 했다고 또 야단치고. 정말 계속 야단을 치는데 그게 한중록에도 나오고 실록에서도 나와요. 정말 사도세자가 뭐만 했다면 그 자리에서 너무 호되게 야단치니까 신하들이 말립니다. 제발 세자가 하는 대로 좀 둬주세요. 그냥 지켜만 봐주세요라고 신하들이 세자를 보호해주고 심지어 어느 날 그 사도세자를 만나고 나서 너 술 먹었지라고 막 야단을 호되게 치니까 그 당시 사도세자의 유모였던 최 씨라는 사람이 ‘술 안 마셨습니다, 전하. 냄새 맡아보세요. 안 마셨어요.’ 라고 일개 궁녀가 세자를 옹호하면서 왕한테 대드는데 오히려 사도세자가 아버지한테 그런 말 하지 마라라고 유모를 야단치니까 영조가 더 화를 내요. 감히 누구 앞에서 남을 야단치냐고 오히려 사도세자를.
◇이대호> 왜 그러는 거예요, 영조는? 진짜.
◆이한> 저도 이해가 안 가는데. 그러니까 너무나도 사랑하고 너무나도 많은 기대를 했는데 그만큼 안 되니까 그것 때문에 신경질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이대호> 이제 그 정도 되면 기대감이 과도했다라고 하기에는 이게 좀 히스테리로 넘어갔다라고 봐야 되는 거 아닐까 싶은데. 그런데 마지막에는 이제 영조가 사도세자 죽고 나서 후회했다는 거잖아요.
◆이한> 후회는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호> 너무 늦었고. 상** 님이 영조가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내린 시호가 사도. 생각할 사 슬퍼할 도였다 이렇게 글을 올려주셨는데. 이게 맞는 거죠?
◆이한> 그렇긴 한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애는 절대로 이렇게 키우지 말라는 대표적인 예고요. 그리고 죽은 다음에 후회해봤자 무슨 소용이에요. 살아있을 때 잘해줬어야지.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았어야 하는 게 바로 부모의 역할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대호> 그렇죠. 그러니까 이때 이 정도 당했으면 사도 세자가 아니라 그 누구였어도 정신적으로 온전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고.
◆이한> 실제로 사도세자는 굉장히 심하게 우울증을 앓았고 그것 때문에 많은 범죄를 저질렀는데요. 그 대표적인 이유는 바로 아버지의 압박.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히스테리. 그렇게까지 미워할 건 아니고 아들이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줬으면 이렇게까지 안 됐을 것 같거든요.
◇이대호> 하여튼 이게 자식 교육이나 자식 농사는 아무리 왕이어도, 임금이어도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라는 거죠.
◆이한> 그거를 받아들이고 그걸 어느 정도 묵혔어야지 계속 아이들을 쪼아봤자 서로 사이만 나빠지고 서로 마음만 상하고 사태의 호전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됐다는 것입니다.
◇이대호>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강** 님도 그렇고 많은 분들이 이제 사도세자 불쌍하다, 안쓰럽다라고 글을 올려주고 계시는데. 우리 자녀들에게 지금 우리가 교훈으로 좀 삼아야 될 테죠.
◆이한> 쉽지는 않지만 그래야 합니다. 적어도 이 사도세자처럼 되면 안 되잖아요.
◇이대호> 다른 경우도 또 있죠. 이규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이한> 이규보는 고려시대 때 유명한 문인입니다. 거의 고려시대를 대표한다고 해도 괜찮을 만큼 훌륭한 멋진 글을 많이 썼던 사람인데. 이 사람이 바로 그 고려시대 사교육의 총아였습니다.
◇이대호> 그래요?
◆이한> 그 고려시대 때는 유명한 사교육의 문헌공도라고 있었거든요. 이제 해동공자 최충이라는 사람이 세운 사교육 학교인데 지금 어딘가의 학원이랑 비슷하게 뛰어난 애들 모아다가 계속 합숙시켜서 공부시키고 여름에 합숙하고 시간 재놓고 글쓰기 연습시키고 그랬던.
◇이대호> 기숙학원 같은 거예요?
◆이한>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고려에서 제일가는 학원이었는데 이분은 바로 이 문헌공도에서 수석을 도맡아 했던 유명한 천재였습니다만 과거 시험에서 주르륵주르륵 떨어지다가 네 번째에 겨우 꼴찌로 합격하게 됩니다.
◇이대호> 문헌공도에서, 그러니까 최고의 학원에서 1등을 계속했는데 과거 시험에서 네 번째에 겨우 붙었다고요? 꼴찌로 그것도?
◆이한> 네. 그래서 본인은 되게 자존심 상해했는데. 그리고 또 이 사람이 어쨌거나 벼슬일은 시작했고 맨 나중에는 유명한 문인으로 이름을 남겼으니까 어쨌든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아니, 조금 더 얹어줄 수는 있겠지만 본인은 그것 때문에 굉장히 괴로워했어요. 아니, 내가 그 잘 나가는 학원에서 1등 했는데. 그랬었던 사람입니다. 심지어 과거 취소하겠다고 막 이렇게 펄펄 뛰다가 아버지한테 혼났습니다.
◇이대호> 내가 꼴찌로 합격하느니 차라리 떨어지고 말겠다 막 이랬던 거예요?
◆이한> 네. 그랬다가 아빠한테 혼나고 다시 수업 들어가고 그랬습니다.
◇이대호> 그런데 어찌 됐든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역사는 이제 기록되고 있는 거고. 그러면 이규보라는 사람은 자식 농사를 어떻게 지었을까요?
◆이한> 그게 또 잘 안 됐습니다. 아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에 특히 셋째 아들이 어른이 되었는데도 글을 못 읽을 정도로 굉장히 학문이 낮았기 때문에.
◇이대호> 아버지가 고려시대 최고의 문인인데 자식이 글을 못 읽어요?
◆이한> 그렇죠. 그렇게 되니까 아들 때문에 속을 끓이다가 여기에 나오는 또 역사적인 진실 중 하나. 내 자식은 내가 못 가르친다. 이게 한자로도 있어요. 한자로 바꾸면 역자이교(易子而敎)라고 해서 아이를 바꿔서 가르친다. 이게 고려시대와 그 전서부터 있었던 것이죠. 왜냐하면 내 자식한테는 화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이 글자도 제대로 못 읽는 자기 셋째 아들을 신 대장이라는 사람에게 보내서 공부를 시킵니다. 그런데 이 신대장이라는 사람은 나이가 80살이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하는 그 당시에 이게 사교육이었던 거예요. 그렇긴 한데 이 짧은 시에서 이 내용을 시로 적는데 이 짧은 시에 셋째 아들에 대한 얄미움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내 아들은 뭐 이 나이 되도록 글도 못 읽고 썩은 나무고 초파리고 밥주머니고. 그러니까 밥주머니라는 게 요즘 말로 하면 밥만 축내는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대호> 식충이.
◆이한> 네. 식충이입니다.
◇이대호> 근데 자기 자식을 그렇게 표현을 한 거예요? 그게 또 기록에 남아 있고?
◆이한> 그렇죠. 그걸 또 이제 그 훌륭한 글 솜씨로 시를 적었어요. 그래서 읽다 보면 재미있어요. 운율 딱딱 맞는데. 운율이 딱딱 맞게 자기 못난 아들을 야단치고 있어요.
◇이대호> 자기 자식에 대한 야단이 또 고려시대 때부터 기록으로 남아 있고. 문학이 되어 있고. 재미납니다.
◆이한> 그러면서 맨 마지막에 남긴 게 내 아들이 진짜 못났지만 잘 가르쳐서 어떻게 좀 해주세요. 그게 그 시의 마지막입니다. 그런데 결국 그의 아들은 과거에는 급제 못했거든요. 사실 이규보 자식들 대체로 공부를 못했습니다만 어쨌거나 사도세자처럼보다는 훨씬 나은 결말이죠.
◇이대호> 그래요. 그런데 요즘에도 이제 대부분 요즘 부모 세대는 또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전공한 거 자기 자식한테 좀 가르쳐 봐야지. 영어나 수학 기초 정도는 좀 내가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시도는 하시잖아요.
◆이한> 그러다 화냅니다. 왜냐하면 자식한테는 기대를 하기 때문에 기대에 어긋나면 내 자식인데 이것도 못한다고 하면서 화를 내게 돼요. 사실 처음 배운 사람은 당연히 미숙하고 많이 틀리고 그러는데. 남의 자식이면 뭐 틀릴 수도 있지가 되는데 내 자식인데 이것도 못한다고가 되는 것이 바로 부모, 자식 관계의 파탄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대호> 그러게. 그게 남의 자식 가르칠 때는 감정이 배제되는데 왜 내 자식 가르칠 때 막 감정이 올라오고. 그래서 그냥 돈 더 벌어올게 하고.
◆이한> 그게 역사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역사적으로 굉장히 유명한 사람들조차도 자기 자식을 못나면 그 체면 불구하고 굉장히 화를 냈습니다.
◇이대호> 그리고 조선시대에도 그러면 다른 사람한테 보내서 글 배우고 와라 이렇게 했던 경우도 있는 거고요.
◆이한> 네. 많습니다.
◇이대호> 부모가 잘 나가도 이게 문제인 게 자식이 그 벽을 넘기 힘들다는 게 사실 최근에도 나오고 있고 역사적으로도 그런가요?
◆이한> 당연히 역사적으로도 그런 게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퇴계 이황입니다. 퇴계 이황 선생님은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시대의 스승이자 훌륭한 분이셨죠. 도산서원도 만들어서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그리고 또 제자들에게는 이 당시 사화가 많아서 많이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굳이 벼슬에 나가지 말고 과거 시험 보지 말고 그 학문을 열심히 해라라고 권장했고요. 그리고 과거 제도의 잘못을 많이 비판했습니다. 시대의 영재들이 이 구덩이에 빠져서 괴로워하고 있으니 이걸 대체 어쩌면 좋으냐.
◇이대호> 똑똑한 친구들이 다 과거 시험에만 매달려 있다.
◆이한> 예,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제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던 김성일이 저는 학문을 공부하기 위해서 과거 시험을 그만두겠습니다라고 퇴계 선생에게 말하거든요. 그러니까 맨 처음에 퇴계 선생이 그렇게 중요한 일을 어떻게 너 혼자 결정하냐.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자가 이미 부모님에게 말씀 다 드리고 허락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그제서야 기뻐하면서 글을 써줍니다. 과거가 이렇게 문제가 많은데 네가 학문에 전념하겠다니 기쁘다라고 해줬는데 그런데 이분조차도 자기 아들에게는 좀 태도가 많이 달라지십니다.
◇이대호> 그런데 공부는 즉,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한 것. 이게 아니라 그러니까 순수 학문을 하겠다라고 하니까 퇴계 이황이 되게 기뻐했다라는 거네요. 과거시험 제도도 비판을 많이 했고. 그런데 정작 본인 아들에게는 과거 시험 나가라고, 갑자기 해야 된다고 했다는 거예요?
◆이한> 퇴계 이황 선생님 워낙 아들이 둘이 있었는데 하나는 일찍 죽고 외아들인 준이 살아남습니다. 이준이죠. 아들에게 보낸 편지들이 그 ‘가서’라고 해서 퇴계 선생 문집에 많이 남아 있는데요. 그 내용 하나 읽어보겠습니다. “네가 과거 시험을 치른다 해도 진실로 가망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서 시험 보는데 너만 혼자 시골에 있으면서 아무 느낌이 없어서 되겠냐. 네가 평소에 뜻이 없어서 그렇다. 다른 선비들은 열심히 하는데 너는 열심히 하지 않으니 대단히 실망하고 실망이 된다.” 실망을 두 번 썼다는 건 이건 정말로 정말로 실망했다는 뜻입니다.
◇이대호> 아니, 그런데 살짝 지금 감정이 좀 실리신 것 같은데요. 약간 아들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이한> 아무래도 저도 자식에게 키우다 보니까 자식에게는 항상 실망하는 게 일상이지 않겠습니까.
◇이대호> 살짝 이를 악무신 것 같기도 하고 6***님이 우리 공장 식구들 작업하다가 중단하고 너무 웃다가 울 지경입니다. 자식 키우시는 분들은 또 공감하실 거예요. 그런데 그 천하의 퇴계 이황 선생님도 비교를 하신 거네요. 다른 애들은 지금 시험 나가고 있는데 너 시골에 앉아서 뭐하고 있는 거냐, 이렇게.
◆이한> 그렇죠.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게 이황 선생님은 정말 대단한 인격자였습니다. 자기보다 어린 제자나 그 사람들에게도 너무나도 상냥하고 편지 쓴 거 굉장히 공손해서 그 한문으로 써 있는 걸 읽으면서 이게 친구한테 보낸 건가, 아니면 저 윗사람한테 보낸 건가 해서 확인해 보면 자기보다 까마득한 30살 아래 연하 제자들한테 보낸 편지인데도 정말 공손하게. 그래서 자기보다 23살 연하인 기대승과 4단 7정 토론을 할 때 이미 이황 선생은 유명한 유학자인데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새까만 후배인 기대승이 당신 의견이 잘못된 것 같아요라고 편지 보냈을 때도 열과 성을 다해서 답변을 해주고, 마찬가지로 35세 연하인 율곡 이이에게도 편지 보낸 걸 보내면 정말 이게 친구한테 보낸 건가 싶을 정도로 굉장히 정중해요. 그런데 이런 분조차도 자식에게는 이렇게 닭 모이를 줘도 콕콕콕 쪼듯이, 쪼면서 편지를 보낸 거죠.
◇이대호> 다른 사람한테는 30살 이상 차이 나는 후배들에게도 깍듯하게 공손하게 편지를 남겼는데 자식한테 쓴 거는 매섭고.
◆이한> 하나 더 읽어보겠습니다.
◇이대호> 또 있어요?
◆이한> “이번에 네 7촌이 과거에 합격했고 내 제자인 이숙량도 합격했으니 기쁘고 기쁘다. 네가 공부 열심히 하지 않은 게 안타깝다. 너만이 힘써 분발해서 스스로 공부하려는 마음이 없느냐.” 이 편지를 보면은 제가 받는 게 아닌데도 마음이 솔직히 좀 아파요.
◇이대호> 내 주변 다 잘 됐는데, 아들아 너만 잘하면 된다.
◆이한> 그런데 너는 왜 열심히 안 하니?
◇이대호> 비교.
◆이한> 그게 포인트예요. 그래서 그다음에 계속 편지를 보내요. 이번에 과거 시험 언제 본대, 어떤 시험 문제가 나온대, 누가 장원급제 했대, 이렇게 편지를 보내면서 계속 너는 왜 열심히 안 하니라는 이야기를 붙이죠.
◇이대호> 그러면은 퇴계 이황 선생님의 사실상 외아들이었던 이준은 그러면 과거 급제에 성공했습니까?
◆이한> 실패했습니다.
◇이대호> 이렇게 잔소리를 듣고. 아버지가 퇴계 이황인데.
◆이한> 그래서 퇴계 이황이 아들이 안 되겠다 싶으니까 다음 타깃으로 넘어간 게 손자인 이안도입니다. 그러면서 잔소리가 손자에게 향합니다. 무슨 책 읽었니? 과거 시험 준비 어떻게 하니? 이렇게 계속 그렇게 또 편지를 보낸 게 남아 있는데요. 그래서 다행히 손자는 퇴계 이황 선생이 살아계셨을 때 초시에는 합격합니다. 그런데 결국 높은 시험에 문과에는 합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들과 그런데 아들과 손자한테도 할 말은 있습니다. 이황 선생이 명성이 너무 높으니까 어디 가든지 이게 비교 듣고, 안 좋은 말 듣고. 너희 할아버지가, 너희 아버지가 이황인데 너는 왜 이 정도냐. 그런 얘기도 실제로 듣고 그렇게 짓눌려 살았던 거죠.
◇이대호> 천하의 퇴계 이황 선생님도, 도산서원을 세우신 이황 선생님도 자식과 손자 공부는 마음대로 안 됐던 거네요.
◆이한> 그렇죠.
◇이대호> 박** 님 저도 자식 셋 키워봐서 알지만 자기 자식 가르치다 보면 수명이 단축돼요. 최** 님은 자식이 내 마음대로 되면 세계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불가능하다는 얘기죠. 불가능하다는 얘기. 아까 어떤 분이 글을 올려주셨었는데. 다산 정약용 선생님 이야기. 장승은 님이 올려주셨었구나. 다산 정약용 선생님도 거의 스카이캐슬급으로 자녀 교육에 열정적이셨다고요.
◆이한> 다산 정약용은 18년 동안 귀양을 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동안 자식들에게 아빠 노릇을 하지 못했죠. 그런데 귀양 가기 전서부터 정약용은 아주 굉장한 극성 아빠였습니다. 그래서 이 아들을 위해서 아들의 장래를 축복하면서 지은 시가 있습니다. 신중하고 온화하며 가진 뜻을 굳게 지켜 때가 되면 출세하여 임금을 보좌하고. 그런데 이 시를 지었을 때 이 시에 지은 대상의 큰아들인 정학연이 태어난 지 100일 되었습니다.
◇이대호> 태어난 지 100일 된 아이한테 임금을 보조하라.
◆이한> 빨리 출세해서 임금님을 보좌해라. 그런데 이해는 해요. 초보 아빠고 아들이고 하니까 얼마나 기대가 됐겠어요.
◇이대호> 다산 정약용도 아빠는 처음이라.
◆이한> 예, 그렇긴 하더라도 이 정약용이 보기에는 좀 공부 머리가, 공부를 좀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린 아들을 일찍부터 과문. 즉, 과거 입시 시험을 시작 공부를 시작시킵니다. 그래서 큰아들을 달달달달 볶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자신이 얘기한 거에 따르면 그때 주변 사람들이 전부 뭐라고 했대요. 아니, 저렇게 어린애한테 무슨 입시 공부를 시키냐라고 구박을 했고 정약용 자신도 조금 좀 그런가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대호> 지금 말로는 조기 교육이었던 거네요.
◆이한> 조기교육, 영재교육, 선행학습 전부 다 했는데 문제는 정약용이 아들이 한 열몇 살 되었을 때 귀양을 가서 십몇 년 동안 못 돌아오게 됐죠. 그렇게 되니까 당연히 자식 교육도 손 놓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우선 돈 버는 아빠가 없으니까 이 부인과 아이들은 밤 따고 마늘 농사짓고 하면서 이렇게 생계를 유지하니까 당연히 공부할 상황은 안 되죠.
◇이대호> 그렇게 조기 교육, 선행 학습까지 하셨는데 귀양살이를 무려 18년 동안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자녀들한테 이렇게 공부하라고 닦달하기도 어려웠을 거 아니에요?
◆이한> 편지로 닦달을 합니다. 우선 큰아들이 계속 농사를 지어서 돈이 어느 정도 모이자 그 돈을 가지고 귀양지의 아버지를 찾아가거든요. 그 이야기가 정약용이 또 서서 남겼어요. 웬 낯선 사람이 딱 문가에 서 있어서 봤는데 자세히 보니까 자기 아들이에요. 어릴 때 헤어져서 몰랐는데 그 사이에 아들이 훅 자라서 어른이 돼 있고 오니까 너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인데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서먹서먹한 거예요.
◇이대호> 어색하죠.
◆이한> 어색하고 그런데 그래서 어색하다가 그다음에 정약용이 한 게 이리 와서 여기 앉아서 이 책 좀 읽어봐라, 여기 읽어봐라. 그리고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 보자마자 아버지가 이거 읽어보라고 하니까 그동안 공부 손 놨으니까 당연히 못 읽어요. 그러니까 정약용이 화가 나서 펄펄 뜁니다. 내 아들인데 이것도 못 읽어? 그래서 고향에 있는 고향 집에 있는 둘째 아들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네 형이 와서 반갑기는 한데 옛날에 가르쳐준 거 보니까 물어보니까 하나도 기억 못하고 그냥 모르니까 이렇게 좌우만 돌아보고 있다. 그나마 네 형은 내가 공부도 가르치고 공부도 좋아하긴 했는데 이 정도니까 하나도 안 봐준 너는 안 봐도 실력이 뻔하다. 그래서 제가 이 둘째 아들은 무슨 죄냐라고 싶더라고요.
◇이대호> 오랜만에 봤는데 첫째 아들이 본인이 가르쳐준 걸 다 까먹었고.
◆이한> 당연하죠.
◇이대호> 글도 제대로 못 읽고 있고 실망을 한 걸 또 둘째한테까지 불똥이 튄 거네요.
◆이한> 네, 편지를 보내서 그거를 또 닦달을 했다고 합니다.
◇이대호> 그 이후에도 그럼 계속 됐을까요?
◆이한> 편지가 다산 정약용의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가 책으로도 나와 있는데요. 대체로 다 공부해라, 우리가 비록 죄인의 가문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학자는 될 수 있다. 그리고 편지를 계속 보니까 무슨 책 읽었니? 어떤 책 읽었니? 어떤 책도 읽어보고 읽어본 책은 정리해서 이제 묶어 놓고 이렇게 저렇게 공부를 해라. 그리고 중요한 건 내가 보낸 편지 대충 읽고 던져버리는 건 아니지? 꼭 다시 읽어보면서 공부 열심히 해라.
◇이대호> 제대로 읽어 봤느냐까지.
◆이한> 예, 그리고 나중에 꼭 서울에 집 구해서 사러 들어가라 그 얘기까지도 있습니다.
◇이대호> 서울에 집 구해서 들어가라까지. 꼼꼼했던 거네요. 역시 실학자.
◆이한> 그렇긴 한데 자식은 뜻대로 안 되는 게 확실한 게 그렇게 열심히 쪼아댔지만 자식들이 그게 공부를 한 건 아니고 특히 큰아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반항을 합니다.
◇이대호> 어떻게 해요?
◆이한> 바로 의사가 돼버립니다.
◇이대호> 의사가 되는 게 반항이에요?
◆이한> 왜냐하면 지금은 의사가 좋은 직업이지만 조선시대 때만 하더라도 중인 기술직이었습니다. 양반들이 할 일이 아니게 여겨지고 중인들이 맡아서 하고 그리고 좀 피 보고 그런 일이니까 천하게 여겨졌죠. 그렇기 때문에 그 의술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고 중요하게 여겼던 거와 별개로 양반들이 할 일이 아니게 여겨졌기 때문에 그래서 정약용이 아들이 의원이 됐다는 얘기를 알고 나서 불같이 화를 내서 편지를 보냅니다. 내가 너 다시는 안 보겠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당장 그만둬라.
◇이대호> 아니, 실학 측면에서는 사람을 낫게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거였을 텐데 아들이 의사가 됐다고 다신 너 안 보겠다. 조선시대니까.
◆이한> 그렇죠. 그리고 정약용도 사실 의술에 대한 책을 내긴 했지만 그와 이건 또 별개라는 거죠. 학자로 공부하는 거랑 네가 직접 의사로 하는 거랑. 그런데 어차피 귀양 가 있는 처지고 아빠도 늙어서 이빨 다 빠진 호랑이니까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었고. 그래서 결국 그냥저냥 잘 살고요. 오히려 계속 구박했던 공부 못한다고 구박했던 둘째 아들인 정학유가 학자가 돼서 해동 월령가라든가 그런 글을 남깁니다.
◇이대호> 그런데 반대로 부모 입장에서 우리가 얘기를 해봤는데 자식 입장에서 자식의 마음을 아이의 마음을 들어주는 사람이 좀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이한> 그렇죠. 그 자식을 굉장히 사랑하고 동생이나 제자, 아이들을 가리키면서 아이들이 힘들어하거나 그런 거 보면 기특한데. 이경석이라고 조선 후기에 영의정이 됐던 사람이 있거든요. 그 사람의 형님 같은 경우에는. 막내 동생이에요. 막내 동생 가르치다가 구술 좀 잘못했다고 회초리를 들고 때리려다가 갑자기 내려놓고. 아니, 이렇게 어린 아이가 열심히 읽는데 칭찬은 못했지만 내가 왜 때리냐, 그러면서 되게 오히려 후회하고 내려놨는데 그 동생이 나중에 영의정까지 됩니다.
◇이대호> 그 동생이요. 그러니까 동생을 가르치던 가르침을 받던 동생이.
◆이한> 가르침은 받던, 그러니까 오히려 때리거나 호되게 가르치지 않고 그렇게 사랑으로 아꼈더니 그런 경우도 있고.
◇이대호> 참고 지켜봐주고.
◆이한> 네, 박세채라고 세조 때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도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공부 못한다고 때리려고 하다가 어머니도 잃었는데 내가 널 이렇게 가르치는 건 네가 잘 살기 위해서인데 때려봐야 뭐하니 그러면서 다른 데 공부로 보내거나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오히려 나중에 잘된 경우도 많이 있었고요. 사실 이 자식 교육이라는 것은 조선시대 때도 있어요. 조급하면 안 된다는 거. 이래서 안달복달하다가 자식을 망치는 부모에 대한 얘기가 그 무명자집을 쓴 윤기가 쓴 말이 있는데 알묘(揠苗)라고 씁니다.
◇이대호> 알묘?
◆이한> 뽑을 알자에 싹 묘. 싹을 뽑는 사람. 싹이 자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쭉 잡아당기다가 오히려 망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얘기 나온 거에 따르면 다른 얘기가 있어요. 이 조급한 부모의 대표적인 케이스. 어제 가르쳐준 하나를 왜 기억하지 못하냐고 화내고, 오늘 왜 하나 가르쳐줬는데 왜 열을 깨우치지 못하냐고 또 화내고.
◇이대호> 넌 누구 닮아서 그러냐고.
◆이한> 그다음에 역사 속에 나온 유명한 천재가 못 된다고 또 화내고, 그리고 또 남과 비교하면서 화내고. 그렇게 하면 결국 자식은 공부에 대한 뜻을 잃고 밖으로 나돌아다니게 된다. 기다리면서 아이가 하나하나 알아가는 기쁨을 누리게 해주면 조급해 할 거 하나 없고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또 쉽지 않죠.
◇이대호> 이한 작가님 표정에서도 만감이 교차하는 게 느껴집니다.
◆이한>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이가 나를 실망시킨다 하더라도 그걸 화내고 짜증을 내봤자 서로 사이만 나빠지고 아이가 절대로 그런 거를 잔소리를 해서 고쳐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이대호> 공부해라 해라가 아니라 공부를 하고 싶게끔 만들어야 한다라는 거. 이게 참 어렵기는 한데요.
◆이한> 어렵기는 하지만 부모가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어른으로서 자식들에게, 자식 세대들에게 마련해 줘야 하고 그걸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대호> 그래서 알묘 싹을 뽑아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 싹을 잘 키워줄 수 있는 그런 부모가 돼야겠죠. 저 스스로도 다시 한 번 더 생각을 고쳐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한>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이대호> 이한 작가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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