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조원’ 광주시 금고 쟁탈전…‘터줏대감 광주은행 vs 자본력 시중은행’ 혈투 예고
55년 금고지기 광주銀 ‘긴장’…국민·농협·하나·신한 등 ‘도전’
1·2금고 분리 공모에 ‘눈치싸움’ 치열…협력사업비 액수 관건될 듯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8조 원 자금 관리할 광주시 금고를 잡아라."
연간 8조 원대 규모인 광주시 예산과 기금을 관리할 금고 쟁탈전이 시작됐다. 향토은행 광주은행은 지난 55년 간 광주시금고의 1금고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광주은행의 수성이 여간 녹록치 않아 보인다. 다음 달로 예정된 시 금고 선정을 두고 광주은행과 시중은행 간 '진검승부'가 벌어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금고 선정을 둘러싸고 새로 등장한 변수가 많아 '수성'에 나선 광주은행이나 '눈독'을 들이는 시중은행 어느 쪽도 낙승을 장담하기 힘든 형국이다. 광주시와 시의회가 올해부터 기존의 통합공모 방식 대신 1·2금고를 별도 공모하고, 시 금고 평가항목을 조정해 시중은행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면서 광주은행으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업계 일각에선 여타 평가기준에선 광주은행과 시중은행 간에 큰 차이가 없어 지자체 출연금인 협력사업비 규모가 금고 선정을 좌우할 것이란 조심스러운 전망까지 나온다. 이와 관련, 광주은행은 1금고 사수를 위해 협력사업비 증액도 불사하겠다며 배수진을 치고 있다.
시중은행 '눈독'…수성 광주은행 '발등의 불'
광주시 금고 공모에는 여느 때보다 자본력을 갖춘 시중은행들이 대거 시 금고 입찰에 도전장을 내미는 모습이다. 은행들이 지자체 금고 공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막대한 저원가성 예금 확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금고에 선정될 경우 광주시 전체 예산의 70%를 관리 할 수 있다. 2금고의 경우 30%를 담당한다. 또한 공무원과 산하 기관의 급여 계좌도 담당해 고객 확보에도 유리하는 장점도 있다.
차기 금고로 지정되면 2025년부터 2028년까지 4년 동안 1금고는 일반회계·특별회계(10개)·기금(1개)을, 2금고는 특별회계(4개)와 기금(18개)의 자금을 관리하게 된다. 올해 광주시 예산은 일반회계 6조3975억 원, 특별회계 1조3793억 원, 기금 4332억 원 등 총 8조2100억 원 규모다.
수성에 나선 터줏대감 광주은행과 시중은행들의 입찰 참여로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광주시가 차기 금고지기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특정 은행을 고집하기보다 자신들에게 더욱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도록 은행 간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입찰 과정을 바꿨기 때문이다.
광주시는 올해 12월 31일자로 금고약정 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차기(2025∼2028년) 시금고 지정을 위한 공모절차에 돌입한다고 지난달 26일 밝혔다. 차기 금고는 광주지역에 본점 또는 지점을 둔 금융기관이 추석 연휴가 끝나는 23∼24일 신청서와 제안서를 접수하면 10월 중 금고지정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1·2금고를 분리 공모방식으로 지정한다.
금고심의는 금융기관의 대내외적 신용도와 재무구조의 안정성(27점), 광주시 대출 및 예금 금리(20점), 시민이용 편의성(24점), 금고관리 능력(22점), 지역사회 기여 및 광주시와 협력사업(7점) 5개 분야를 평가한다. 광주시는 지난 7월 시금고지정조례 개정을 통해 금융기관의 지역 자금공급, 중소기업·소상공인 및 서민 대출 지원 등 '지역재투자'와 금융기관의 '안전성 지표'를 금고 평가 항목에 반영했다.
광주시에 영업점과 대출 실적이 많은 광주은행에 유리할 수 있는 평가 항목의 비중이 축소된 것이다. 시중은행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항목에서 점수 차이를 벌리며 그간 광주시 1금고를 운영해 왔지만 이제는 시중은행과 힘겨운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1·2금고 분리 공모 변수…'협력사업비' 최대 관건
우선 1·2금고의 분리 공모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번 시 금고 선정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1금고와 2금고를 분리해 공모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광주시 1금고는 광주은행, 2금고는 국민은행이 맡고 있다. 그간 광주시 금고는 통합 공모로 1금고는 광주은행이, 2금고는 시중은행인 국민은행이 주로 맡아왔다. 광주은행은 지난 1969년 이후 55년간 광주시금고의 1금고 자리를 수성하고 있다.
그러나 분리해서 공모하게 될 경우 각각 공모해야 한다. 또 어느 금고에 제안서를 내느냐를 두고서도 눈치싸움이 치열할 전망이다. 이처럼 광주시가 별도 공모 방식으로 바꾸면서 농협,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이 광주시 1금고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도 1금고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이번 시 금고 선정에서 최대 변수는 '협력사업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광주시가 제시한 평가기준 중 금융기관의 대내외적 신용도와 재무구조 안정성, 시민이용 편의성, 금고관리 능력 등은 광주은행과 시중은행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 결국 지역사회 기여 및 협력사업에서 순위가 갈릴 것으로 관측된다.
협력사업비는 금고에 선정된 은행이 지자체에 지급하는 출연금이다. 광주시는 2021년 금고를 지정하면서 1금고(광주은행) 40억원, 2금고(국민은행) 20억원의 협력사업비를 약정했다. 하지만 지난해 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1금고 광주은행의 협력사업비가 전국 특·광역시 중 최하위 수준에 그쳐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와 시중은행이 광주은행보다 많은 금액을 제시할 경우 시금고지기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 이번 시 금고 선정에서 '협력사업비'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광주시 또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어 경쟁을 유도해 협력사업비를 크게 받아내려는 분위기가 읽힌다. 이전보다 크게 써낼 수밖에 없는 광주은행을 제치기 위해 도전자인 시중은행들이 과감한 베팅에 나설 경우 광주은행 수성에 빨간불이 켜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역 금융학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지역민의 정서와 지방의 특수성을 고려해 지역 시금고 유치전에서도 지방은행을 우대하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명분보다 실리를 더욱 중시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은행 특성 반영해 평가해야"
다만, 지역 노동계와 시민단체 등은 향토은행 고사와 함께 지역자금의 역외 유출 등 수도권 집중이 가속화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방금융 업계에서는 시중은행들이 체급을 앞세워 지방금융의 지위를 위협한다고 지적한다. 자본력으로 무장한 대형 은행들이 수도권에 이어 지방까지 영업 구역을 넓혀갈 경우 지방은행들은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광주은행을 비롯 부산·경남·대구·전북·제주은행 노동조합이 소속된 지방은행노동조합협의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지역 소멸을 부추기는 행위를 자행하는 지역 시금고 유치 과당 경쟁을 즉시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협의회는 "지역 은행은 해당 지역에 본점을 둔 은행으로써 지역 자금 공급, 지역 일자리 창출, 지역 문화 발전 지원 등 지역 재투자를 통해 수십년간 그 지역과 함께 성장해왔다"며 "시중은행은 서울·경기 지역 시금고가 경쟁으로 포화 상태에 이르자 지역 시금고 마저 빼앗으려 하고 있어 지역 은행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본력에서 밀리는 광주은행도 입찰 과정에서 지역사회 공헌도를 더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1금고 재선정의 당위성을 호소하고 있다. 광주은행은 체계적인 지역밀착경영을 실천하며 다양한 역내 사회공헌 활동, 지역 밀착형 점포 운영 등으로 지역과의 신뢰와 상생의 이념을 단단히 굳혀나가고 있다는 게 지역사회의 대체적인 평가다.
광주은행은 수익성 악화로 시중은행이 빠져나간 곳에서 적자를 감수하며 전체 점포 123개 중 절반이 넘는 70곳을 광주에서 운영 중이다. 또 '광주형 일자리' 모델로 탄생한 자동차 합작회사 광주글로벌모터스(GGM)의 추진 초기에 일부 시중은행과 기업의 미온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광주시, 현대자동차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260억원을 출자한 광주은행은 3대 주주로 사업 안착에 힘을 보탰다.
고병일 광주은행장은 "광주형 일자리에 260억원을 출연하고, 금융회사 지역 재투자 평가에서 지난해 최우수등급을 받는 등 지역 경제 활성화에 앞장서왔다"며 "협력사업비 증액도 불사하는 등 1금고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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