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 품속에서 삐삐·무전기 '원격 폭발'…5개월 전부터 준비했나
헤즈볼라 역사상 최대 보안 침해 "이스라엘 소행, 전자기기 사용 말라"…
헤즈볼라 해당 기기 모두 5개월 전에 구입, 폭발물 탑재 과정 미스터리
"진찰한 사람 중 최소 60%가 적어도 한쪽 눈을 잃었고, 많은 사람이 손가락이나 손 전체를 잃었다. 사상자 수와 발생한 피해 유형이 엄청나다. 일부는 얼굴 손상 외에도 뇌에 손상을 입었다."(엘리아스 워락 박사, BBC 인터뷰)
레바논에서 17일(이하 현지시간)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타깃으로 한 무선호출기(삐삐) 폭탄 공격에 이어 다음 날인 18일에는 워키토키(무전기)가 폭발하면서 대형 참사가 잇달아 발생했다. 이틀간 사망자만 32명, 사상자는 3450여명에 달한다. 베이루트 남부 헤즈볼라 거점인 다히예에서는 사망자를 애도하는 장례식이 시작되기 직전 두 번째 폭발이 발생했다.
BBC와 로이터통신,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이틀에 걸친 폭발은 호출기에 폭발물이 장착된 후 원격으로 폭발됐을 가능성이 높다. 헤즈볼라는 구성원 추적이 이스라엘에 스마트폰으로 추적당할 것을 우려해 호출기를 배포해왔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주범으로 지목하며 보복을 다짐했고 이스라엘은 침묵하고 있다. 가자지구의 휴전은 그만큼 멀어졌다.
폭발 사건 몇 시간 후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 요아브 갈란트는 이스라엘군 98사단을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북쪽으로 이전시키면서 "전쟁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병력, 자원, 에너지를 북부에 재배치하고 있다는 뜻으로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레바논은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확전을 꺼려왔다. 그러나 이번 전자기기 폭발 참사로 헤즈볼라의 강력한 대응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스라엘에 보복을 맹세한 헤즈볼라는 18일 로켓으로 이스라엘 포병대를 공격했다. 이는 전자 기기 폭발 사고 이후 이스라엘을 향한 첫 공격이다. 이스라엘 군은 피해나 사상자가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카네기 중동센터의 모하나드 하게 알리 부소장은 "헤즈볼라는 전면전을 피하고 싶어한다"며 "하지만 보다 강력한 대응에 대한 압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8일 폭발한 워키토키는 일본 아이콤(ICOM)사의 라벨이 붙은 IC-V82 모델이다. 그러나 해당 모델의 생산은 이미 2014년에 중단됐다. 보안 소식통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휴대용 무전기를 전날 폭발한 호출기와 거의 같은 시기인 5개월 전에 구입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17일 폭발 사고의 경우 헤즈볼라가 주문한 5000개의 호출기에 폭발물을 심어놓고, 이스라엘 스파이가 이스라엘로 입국하기 전 원격으로 폭발시켰다. 18일 워키토키 폭발도 비슷한 방법으로 감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17일 폭발한 AR924 호출기는 대만의 골드아폴로 상표가 부착돼있었다. 그러나 골드아폴로 측은 자사 브랜드를 사용하도록 허가받은 다른 회사가 만든 것이라며 회사와 라이센스 계약을 맺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BAC컨설팅을 지목했다. 대만 검찰청은 국가안보 사건 처리 부서가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BAC컨설팅은 49세의 여성과학자 크리스티아나 바르소니-아르시디아코노가 2022년 설립한 회사로 지난해 약 80만달러의 수익을 냈다. 입자물리학 박사가 갑자기 대만산 호출기를 레바논에 판매한 이유와 구체적인 방식은 불분명하다. 회사의 유일한 등기 이사인 그녀는 NBC뉴스에 "저는 호출기를 만들지 않는다. 그저 중개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아랍 국가들의 요청에 따라 호출기 폭발에 대응하기 위해 20일 회의를 갖기로 했다. 이란 통신사 파스에 따르면 이란 테헤란 주재 레바논 대사가 17일 폭발로 한쪽 눈을 잃었고 다른 쪽 눈은 중상을 입었다. 이란의 유엔 특사는 18일 서한에서 "이란은 이번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필요한 조처를 할 국제법상의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레바논 국영통신사 NNA는 하마스 대표단이 이날 레바논 병원에서 폭발로 부상당한 사람들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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