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농로 내비 대란’…”AI 맹신이 몰고 올 위기 보여줬다”
추석 당일이었던 지난 17일 유명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 안내에 따라 길을 이동하던 차량 수십대가 충남 아산 일대의 농로에서 발을 묶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고속도로가 정체하자 이용자들이 모두 ‘다른 길’을 주문했고, 이에 내비게이션이 인근 농로를 안내했으나 정작 해당 도로의 정체 상황은 연산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 사태는 AI가 일상화한 시대에서 인간 고유의 사고(思考)를 포기하고 AI를 맹신할 경우 생길 수 있는 어두운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작은 소동극에 불과할 수 있지만 갈수록 AI에 의존하는 인류 문명이 처할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 면모를 구조적으로 보여줬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소셜미디어 ‘스레드’에는 내비게이션 안내로 귀경길에 오른 차들이 충남 아산의 한 농로에 묶였다는 글과 사진이 계속 올라왔다. 한 네티즌은 “(내비게이션이) 논길로 가면 빠르다고 해서 왔는데, 모두 논길로 와서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며 “합류 구간이 4군데나 있어 차량들을 끼워주다 보니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빨리 가려다가 감옥에 갇혀 버렸다”고 했다. 그는 농로 5㎞가량을 빠져나오는데 3시간 이상 걸렸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사진을 올리며 “(내비게이션에) 속은 차들” “이상한 농로로 보내서 1시간째 갇혀 있는 차들이 수백 대 늘어서 있다”고 했다.
실제로 고작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농로에 수백대의 차량이 줄지어 있고 그 양옆으로는 논밭이 펼쳐져 있는 모습은 기괴할 지경이었다. 이 장면은 충남 아산시 인주면에서 평택호 방향으로 가는 농로에서 나타난 사태였다.
일각에서는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AI 맹신이 가져올 단면을 보여주는 사태였단 지적도 나온다. 특히 가장 빠른 경로를 분석해 알려주는 내비게이션·길찾기 기능을 탑재한 애플리케이션이 상용화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길을 외우고 다니는 일이 줄어들었다. 차를 몰 때도 내비게이션 안내대로만 가지만 내비게이션이 잘못된 길을 안내해도 이를 시정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그냥 안내대로만 가는 식이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박모(22)씨는 “내비게이션 안내를 따르다 보면 종종 직감적으로 아는 경로와 다른 경로를 제공해 돌아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면서도 “새 경로를 검색하기도 귀찮고 어찌 됐든 도착지까지는 안내할 테니 그냥 끝까지 안내를 따르는 것 같다”고 했다. 대중교통을 통한 길찾기를 할 때도 본인이 아는 환승 노선보다 이상한 조합으로 안내를 해주는 때가 있더라도 이를 맹신하는 경우들이 있다.
AI 맹신은 단순히 길찾기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특히 네이버 파파고, deepL 같은 번역 서비스가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이 단순한 번역도 직접 하지 않고 번역기를 사용하고는 그 결과물을 원본과 대조조차 안 하고 실무나 대학 과제 등에 사용할 때가 많은데 생각보다 잘못된 번역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강의 녹취 또한 마찬가지다. 보통 대학이나 직장에서 강의를 듣거나 장시간 업무 대화를 나눌 때 잊지 않기 위해 녹취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과거엔 이를 직접 들어봐야 했기에 처음 강의나 대화 때 더 집중해서 들었다면 이제는 AI가 자동으로 녹취를 풀어주는 시대가 돼 강의나 대화 때 집중을 안 하고도 녹취만 듣고 취사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서울의 한 대학 교수는 “시험을 잘 치러 학업 이해도가 뛰어나다고 생각한 학생이 실제로 대화를 나눠보면 수업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한 경우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며 “AI를 수업 이해에 활용하는 것은 좋지만 이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부정적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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