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술은 ‘월드클래스’지만… 의료개혁 실패땐 경쟁력 흔들

권도경 기자 2024. 9. 1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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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집단사직에 따른 의료파행 와중에 맞은 올해 추석 연휴에 우려했던 '응급실 대란'은 벌어지진 않았다.

연휴 기간 응급실을 지킨 의사들은 정상적인 환자 수용 능력 확인 과정마저 '응급실 뺑뺑이'로 둔갑했다면서 이 같은 현상이 응급진료에 차질을 줄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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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선 체질개선 필요 목소리
경증환자 본인부담금 인상으로
우려하던 추석응급대란은 없어
“사법리스크 완화·경증환자 분산
정책 지원 있어야 정상화 가능”
K-의료 시스템 정비가 최우선
붕대감은 의료진… 추석 연휴가 끝난 1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손목과 손에 붕대를 한 의료진이 통화를 하며 응급실로 들어서고 있다. 백동현 기자

전공의 집단사직에 따른 의료파행 와중에 맞은 올해 추석 연휴에 우려했던 ‘응급실 대란’은 벌어지진 않았다. 연휴 기간 응급실을 지킨 의사들은 정상적인 환자 수용 능력 확인 과정마저 ‘응급실 뺑뺑이’로 둔갑했다면서 이 같은 현상이 응급진료에 차질을 줄 수 있다고 봤다. 본인부담금 인상 등으로 응급실 과밀화가 예년보다 덜했다면서 향후 사법리스크 완화 등 정책지원이 있어야 응급의료 기능이 안정화할 것이라는 제언도 나왔다. 한국 의료가 전 세계적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지만 수도권 쏠림현상, 필수의료 붕괴 등이 장기화하면 국내 의료체계 근간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경원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19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추석 연휴에도 119구급대의 사전 환자수용능력 확인절차와 환자 전원, 통상적 진료 대기 등이 응급실 뺑뺑이가 돼 버렸다”며 “언론에 보도된 안과 응급수술은 평소에도 15시간 만에 수술받기 쉽지 않은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번 추석 연휴 기간 중 3일 동안 응급실 당직진료를 맡았다. 그는 “중증환자 치료에 집중하기 위해 2차 병원에 가도 될 만한 환자를 우선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보호자가 환자 거부라고 곧장 항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응급실에서 잠도 자지 못하고 식사도 못 한 채 환자만 봤다”며 “응급실 의사들은 다들 자신이 응급실 뺑뺑이 사건에 연루되지 않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버텼다”고 덧붙였다.

앞서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도 SNS에 “응급실의 모든 수용 불가가 곧 ‘응급실 뺑뺑이’는 아니다”라면서 비판적 견해를 표했다.

응급실 위기의 구조적 원인으로는 사법리스크에 따른 응급의학과 기피현상, 응급실 과밀화 등이 꼽혔다. 김원 제주 응급의료지원단장(제주한라병원 진료행정부원장)도 “(응급실 의사가 부족한 주된 원인은) 의사들이 과실 여부를 떠나 사법 조치되는 것”이라며 “소아과처럼 응급의학과도 치료과정에서 사법처리되는 사례가 나오다 보니 전공의들이 응급의학과를 기피하는 현상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도 “응급실은 사법리스크가 다른 진료과보다 과도하다”며 “인건비·수가 등 정책적 뒷받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응급실 과밀화 해소에 대한 추가대책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 13일부터 경증환자가 대형병원 응급실을 방문할 때 본인부담금을 90%로 올렸다. 김 단장은 “전국적으로 평소보다 150% 이상 환자가 늘어나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 연휴엔 3분의 1가량 줄었다”며 “가장 큰 원인은 경증환자 부담률 인상”이라고 말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제주에선 연휴 기간 내 중증 환자가 치료받지 못한 사례는 발생하지 않았다. 김 단장은 “이제 국민도 감기 같은 가벼운 질환으로 응급실에 오는 건 삼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도 “본인부담금 인상은 정부가 국민에게 명확하게 메시지를 준 것”이라며 “응급실은 중증환자에게 양보하는 등 국민 의식도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응급실 부역자’ 블랙리스트 등 불법 행위에 대해선 응급실 의사들의 사명감을 존중해야 한다고 봤다. 옥민수 울산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울산대 예방의학과 부교수)은 “파업할 때도 중환자실·응급실은 계속 유지하는 게 원칙인 만큼 단체 행동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응급실 근무자들을 비판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응급실 근무자들의 소명의식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권도경·유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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