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딜레마]⑤ 美 연준 ‘빅컷’ 단행… “10월 금통위, 금리 인하 가능성 더 커졌다”
한미금리차 부담 던 한은… ‘인하 압박’ 거세질듯
집값·가계부채가 발목… “대출규제 효과 주목”
“10월까지 주담대 증가속도 지켜봐야” 주장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8일(현지시각) 종전 연 5.25~5.50%이던 기준금리를 4.75~5.00%로 낮췄다. 4년 반 만의 금리 인하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은 점도표(dot plot)를 통해 연말 기준금리를 4.4%로 제시하면서 향후 금리를 0.5%포인트(p) 더 인하할 것임을 시사했다.
미 연준이 통화정책 전환(pivot)에 나서면서 다음 달 11일 예정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에 시선이 쏠린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에 안착한 가운데,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가 2%p(상단 기준)에서 1.5%p로 줄어들며 금리 인하에 대한 부담이 줄었기 때문이다. 한은에선 여전히 부동산 가격 상승세와 가계부채 증가 흐름을 불안한 시각으로 보고 있지만, 부진한 내수 경기를 봤을 때 통화정책 전환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는 지적이 더 힘을 받고 있다.
◇ 4년 반 만에 금리 내린 美… “내년까지 1.5%p 추가인하”
미 연준은 지난 17~18일(현지 시각) 열린 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5.25~5.50%에서 4.75~5.00%로 0.5%p 낮췄다. 연준이 금리를 내린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기였던 2020년 3월 이후 처음이다.
연준은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날 공개된 점도표를 보면 FOMC 투표권자와 비(非)투표권자를 포함한 19명의 연준 위원은 올해 말까지 기준금리가 4.4%(중간값)로 하향 조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기준금리 목표 범위가 4.25~4.50%까지 하락할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연준 위원들은 2025년까지 기준금리가 3.4%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하면서 내년에도 1%p 추가 인하 가능성을 제시했다.
연준의 빅컷(기준금리 0.5%p 인하) 결정에는 불안한 고용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 8월 미국의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은 전월보다 14만2000명 늘어나면서 시장 예상치(16만4000명)를 밑돌았다. 기존 수치도 대폭 하향 조정됐다. 7월의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은 11만4000명 증가에서 8만9000명 증가로, 6월 수치는 17만9000명 증가에서 11만8000명 증가로 작아졌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FOMC 기자회견에서 “고용에 대한 하방 위험이 커졌다”면서 “임금상승률은 ‘눈에 띄게 하락(notable step down)’했다”고 말했다. 그는 “통화정책의 적절한 재조정은 고용시장 강세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경기침체 가능성에 관한 질문에는 선을 그었다. 파월 의장은 “경기침체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고 보여주는 경기 지표는 없다”면서 “경제 성장률은 견조하고 노동시장도 굉장히 견고하다”고 강조했다.
◇ 거세진 금리인하 기대감… 가계부채 증가세가 ‘마지막 퍼즐’
미 연준의 통화정책 전환을 두고선 ‘선제적인 대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고용 지표가 다소 둔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파월 의장의 발언대로 경기침체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는 보여주는 경기 지표는 아직까진 없는 상황이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미 연준이 빅컷을 단행한 것은 미국 경기가 당장 좋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향후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대비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금통위에서 금융안정을 이유로 금리 동결 결정을 내린 한은으로선 미 연준의 빅컷 결정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빅컷에 나서면서 국내에서도 금리 인하 기대감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도 19일 오전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미 연준의 금리 인하 결정을 ‘글로벌 복합위기 종료’ 신호로 평가하며, 향후 정책의 무게 중심을 ‘내수 활성화’에 둬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참석하는 회의에서 통화정책 전환의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 연준의 통화정책 전환(Pivot)을 계기로 팬데믹 대응 과정의 유동성 과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공급망 충격이 중첩되며 촉발됐던 글로벌 복합위기로부터 벗어나는 모습”이라면서 “주요국 통화정책 전환을 계기로 내수 활성화와 민생안정에도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지난달 금통위에서 문제로 지목된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 문제에 대해선 “가계대출은 주택거래 증가가 시차를 두고 반영되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증가했으나 9월부터 시행된 정책 효과 등이 가시화되면서 상승 폭이 둔화될 것”이라며 “주택시장이 과열되거나 가계부채가 빠르게 증가할 경우, 추가적 관리수단을 적기에 과감하게 시행하겠다”고 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가계 부채 등 금융불안은 미시적인 금융정책으로 제어를 하겠다는 것이다.
◇ “금융 안정세, 경기 둔화 대응 필요”… 10월 금리 인하에 힘 쏠려
전문가들은 미국의 빅컷으로 국내도 통화정책을 전환할 여력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달 들어 주담대 증가세가 약화하면서 한은의 부담도 줄었다는 관측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12일까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담대 잔액은 지난달 말보다 2조2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8월 한 달간 5대은행의 주담대가 8조9000억원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증가 폭이 상당히 줄었다.
이에 대해 문홍철 DB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의 대출부양책이 올해 7월부로 끝났고 8~9월에는 시중은행 대출을 강하게 조이고 있어 10월에는 규제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면서 “한은과 정부가 동시에 긴축을 하면 내수가 타격을 입을 수 있으므로, 한은이라도 금리를 낮춰 경제 부담을 줄여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한은이 금리를 인하하려면 주담대 중심의 가계부채 증가세가 꺾여야 하는데, 9월 들어 시중은행의 주담대 증가 폭이 조금 작아졌다”면서 “증가세 둔화 속도가 10월에 더 확연해지면서 인하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경기 둔화를 대비해 통화정책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채권전략팀장은 “이번 FOMC의 핵심은 연준이 글로벌 경기 하방리스크에 대한 언급을 했다는 점”이라면서 “우리나라가 수출중심 제조업 국가인 만큼 한은도 글로벌 경기에 민감하게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강 팀장은 “최근 반도체 수출 부진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규철 실장은 “통화정책을 꼭 미국을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국내 내수 경기가 상당히 둔화한 상황이다. 미국은 경기 상황이 나쁜 게 아닌데도 악화를 우려해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는 점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한은이 10월까지는 국내 금융 안정상황을 보겠다며 통화정책 전환을 미룰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연준의 빅컷으로 한은의 통화정책 여력도 숨통이 트이겠지만, 여전히 11월 인하 가능성이 높다”면서 “7~8월에 주택구입이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잔금을 치르는 시점인 10월까지도 주택담보대출이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주요국의 정책운용방향을 지켜보면서 통화정책에 나설 방침이다. 유상대 한은 부총재는 19일 오전 ‘시장상황 점검회의’에서 “향후 국내 경기·물가 및 금융안정 여건에 집중해 통화정책을 운용할 수 있는 여력이 커졌다”면서 “향후 주요국의 통화정책이 차별화될 수 있는 데다 미국 대선, 중동사태 등 지정학적 리스크 전개양상에 따라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는 만큼 모니터링을 보다 강화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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