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사이클→먹구름?...반도체, 진짜 한치 앞도 모르겠다

2024. 9. 1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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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동성 최고조...한달새 D램 시장 급제동
삼성·SK 3분기 실적 전망 줄지어 하향
완판 HBM, 공급과잉 전망 설득력 떨어져
반도체 제조 라인 모습 [헤럴드DB]

반도체 시장의 예측 불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는 모양새입니다. 업계 관계자들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며 혼란스러워할 정도입니다. AI 시대 도래로 기술 혁신 속도가 굉장히 빨라지며 메모리 성장 가능성이 커진 반면, 글로벌 불경기 등으로 거시 경제가 혼조세를 보이고 있는 탓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3분기 실적에 대한 기대감도 한두달 전과 비교해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살아나던 D램 시장에 급제동이 걸렸고, 실적을 견인하던 AI 붐마저 다소 시들해진 모습입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마저 약 3개월 전 제시한 목표주가와 투자의견의 정반대에 해당하는 보고서를 내놔 시장에 혼란을 더할 정도입니다. 2024년도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오늘 칩만사에서는 하반기 반도체 업황 전망과 높아진 변동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최근 금융투자업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3분기 실적 가이던스를 줄지어 하향했습니다. 8월 초만해도 2분기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하며 빠른 회복세를 보였고, 하반기와 내년에도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많은 증권사가 목표 주가를 올렸지요. 하지만 불과 한달 만에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은 기존 13조원에서 10조원 안팎으로, SK하이닉스는 7조원대에서 6조원 수준으로 하향 조정되고 있습니다.

모건스탠리 역시 갑자기 태도를 바꿨습니다. 지난 15일 ‘겨울이 다가온다(Winter Looms)’ 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기존 26만원에서 12만원으로, 삼성전자 목표주가는 10만5000원에서 7만6000원으로 대폭 낮췄습니다.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비중 확대’라고 했던 투자의견도 ‘축소’로 바꿨습니다. 모건스탠리는 하향 조정 이유로 스마트폰·PC 수요 감소로 인한 일반 D램 가격 하락과 고대역폭메모리(HBM)의 공급 과잉 우려를 댔습니다.

당장 불경기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범용 D램을 포함한 메모리 반도체의 주요 고객사인 PC, 스마트폰 등 IT 기기 회사들의 재고 누적이 여전합니다. 기대를 모았던 아이폰16 시리즈도 혹평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발(發) 경기 침체 우려와 AI 투자 붐의 열기가 한풀 꺾였다는 회의론이 나오면서 업황 개선에 급제동이 걸린 겁니다.

금융투자업계 뿐 아니라 반도체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가들조차, 시장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는 시기라고 입을 모읍니다. 변수가 너무 많아 예측 불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한 반도체 업계 전문가는 “물론 장기적으로 AI가 대세가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반도체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이 맞다”면서도 “하지만 당장 다음 6개월, 다음 1년 동안 시장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가 어려워졌다”고 진단했습니다.

반대로 삼성전자의 개선 과제였던 파운드리 사업에는 긍정적 전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TSMC 의존도를 낮추고 다른 파운드리 업체를 이용할 수도 있다는 제스처를 내비쳤습니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를 만들 수 있는 업체는 전세계에 TSMC와 삼성전자 뿐입니다. 파운드리 수주 물량이 부족해 설비투자 속도 조절까지 나서던 삼성에게 한줄기 희망이 생긴 셈입니다.

요즘 반도체 업계에서는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많이 회자됩니다. ‘모든 일의 성패는 노력이 30%, 운이 70%다’라는 의미입니다. 노력도 중요하지만 성공에는 운과 타이밍도 중요하다는 것이죠.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2022년 말부터 시작된 메모리 다운턴이 그렇게 오래, 깊게 이어질지 아무도 몰랐고, 또 지난해 4분기부터 불과 3분기 만에 이렇게 급격하게 회복할 수 있을지는 더더욱 예측못했다”며 “요즘의 반도체 시장은 한두달 사이 분위기가 휙휙 바뀐다”고 전했습니다.

반도체 업계 ‘운칠기삼’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고대역폭메모리(HBM)입니다. SK하이닉스는 10년 동안 소위 ‘밑 빠진 독에 물붓기’하는 심정으로 HBM을 개발해왔죠. 아직 시장이 형성되기도 전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투자한 결과 지금 AI 메모리의 선두를 꿰차게 됐습니다. 애초부터 엔비디아와 함께 개발하기 시작한 것도 신의 한수였죠. 지난 다운턴의 적자를 HBM 한방으로 메꿀 수 있었을 정도로 SK하이닉스의 성공 스토리는 업계에 길이길이 남을 히스토리입니다.

특히, HBM은 기존 범용 D램과 달리 수주형 사업입니다. 앞서 모건스탠리는 보고서에서 HBM의 공급과잉을 우려했지만, HBM은 ‘선(先) 주문-후(後)제작’ 방식이기 때문에 기존 메모리처럼 가격 변동성이 크지 않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내년 HBM 물량이 완판됐다고 자신감을 보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내후년 HBM 판매량이 줄어들 수는 있어도 공급과잉이 우려된다는 얘기는 다소 맞지 않는 이야기 입니다.

업계에서는 ‘넥스트 HBM’ 찾기에 더욱 몰두하고 있습니다. HBM4 제품부터는 12단뿐 아니라 16단 제품까지 나올 것으로 예상되면서 적층 경쟁이 심화될 전망입니다. 이밖에도 AI 데이터서버의 저전력·고효율을 구현해줄 CXL(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 PIM(프로세스인메모리) 등 차세대 기술에 대한 투자도 활발합니다. 또한 PC, 스마트폰, 자동차 등 온디바이스 영역으로 경량화된 HBM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AI용 메모리 포트폴리오는 더욱 다양해질 전망입니다. 김민지 기자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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