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가 ‘백종원’으로 변했어요~

김은형 기자 2024. 9. 1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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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호박전. 한겨레 자료사진

“엄마 손맛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엄마의 손맛을 보고 싶다고~”

작은 언니가 추석 음식을 먹다가 말했다. 환갑 된 딸이 팔순을 넘어 구순으로 치닫고 있는 엄마의 음식 타박이라니, 웬 ‘후레자식’인가, 싶지만 엄마의 손맛은 확실히 변했다. 장금이에서 백종원으로.

사실 장금이는 뻥이다. 어릴 적 우리 엄마는 요리 실력은 어린 내가 봐도 그냥 보통이었다. 특별히 게으르거나 요리에 무관심한 엄마도 아니었지만 요리를 전업주부의 괴로운 숙명으로 받아들였음은 틀림없다. 성의 없어 보이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 담긴 내 도시락을 볼 때마다 느꼈다. 이해한다. 이번 연휴에 가정 경제와 건강 관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외식과 배달식과 집밥의 아슬아슬한 균형을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주부로서 충분히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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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이 들어 기력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요리에서 점점 손을 뗐다. 가끔 엄마가 어린 시절 해줬던 음식이 그립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메뉴도 안떠오르는 거 보니 엄마의 필살 요리들은 맛본 지 오래된 것 같다. 다만, 엄마가 지금까지도 열의를 불태우는 음식이 있으니 김치다.

불면 날아갈 듯 깡 마른 데다 양쪽 고관절에 철심을 박은 엄마는 보행보조기가 필요한 처지가 됐음에도 지금도 동네 슈퍼에서 배추나 무를 할인 판매하면 갑자기 천하장사로 변신한다. 보행보조기의 장바구니 같은 데 배추 두세 포기를 담아서 끙끙대며 집으로 돌아와 맹렬해진다.

또 다치면 어떡하냐고 딸들이 걱정을 하고 화를 내도 소용 없다. 배추김치, 열무김치, 깍두기, 물김치, 오이소박이, 동치미 등등 철마다 나오는 재료로 김치를 하고 어김없이 그 다음 날은 몸살이 난다. 그리고 며칠 뒤 김치를 가져간 나에게 전화를 걸어 “어때? 맛없지? 이번에는 망친 거 같아”라고 던지면 “아냐. 엄마 엄청 맛있어, 00이가 맛있다고 난리야”라는 답변을 끝으로 엄마의 김치 제작 전 공정이 마무리된다.

문제는 상큼하고 깔끔했던 엄마의 김치 맛이 사 먹는 김치와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 들면 둔해진다는 미각 탓이 아니었다. 엄마와 함께 사는 큰언니가 진단하는 문제의 원인은 유튜브였다. ‘그놈의 스마트폰’이 문제인 건 애나 노인이나 다 똑같은 것이다.

아빠와 달리 신문물 따위 멀리하고 살던 엄마는 동년배 중에서도 거의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쓰기 시작한 동시에 24시간 활용 체제가 됐다. 외롭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거동도 불편한 노인들에게야 말로 스마트폰은 삶의 동반자라는 걸 엄마를 보고 알게 됐다.

입문은 예의 유튜브 가짜뉴스였다. 동년배 친구들이나 이모가 보내준 가짜뉴스의 신세계를 발견한 엄마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랍 통치자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더라” 따위의 충격 뉴스들을 딸들에게 전하다가 미동도 안 하는 딸들을 보며 이내 시들해지더니 트로트에 심취했다. 손주와 누가 더 좋냐고 하면 분명 고민에 빠졌을 정동원 칭찬에 입 마를 날이 없던 트로트 사랑도 식을 무렵 엄마가 옮겨간 게 요리 유튜브였다. 특정 유튜브를 구독하거나 즐겨보는 게 아니라 김치와 갈비 같은 명절 음식을 검색해 각종 레시피 유튜브들을 섭렵하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엄마들이 그렇듯 엄마는 나이 들면서 요리하기를 귀찮아하기도 했지만 점점 자신감을 잃었다. 뇌리에 새겨져 있던 레시피가 희미해졌고, 둔해지는 미각에 대해서도 불안감이 생겼기 때문일 터이다. 언니의 증언에 따르면 엄마는 김치를 하거나, 자식들 손에만 맡겨두고 싶지 않은 음식을 해야 할 때면 하루 종일 관련 레시피 유튜브를 수십 개씩 찾아본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 음식의 평균치에 해당하는 레시피를 습득하게 되고, 요즘 선호되는 단 맛, 우리 식구들 기준으로는 이전의 엄마 음식에 없던 들쩍지근한 맛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백종원 프랜차이즈 식당의 음식과 비슷해지는 ‘고향의 맛’은 서운하다. 김장을 할 때마다 엄마가 더 늙기 전에 엄마의 김치 담그는 법을 전수받야겠다고 생각하며 마냥 미루고 있었는데 이제 전수받았다가는 백종원 식당에 납품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고 허약해진 엄마가 자식들 걱정을 무릅쓰고 해주는 김치를 아직 먹을 수 있다니, 복 받은 딸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유튜브로 가짜뉴스도, 트로트도 아닌 요리 레시피를 뒤지는 80대 중반의 엄마는 너무나 사랑스럽다. 써놓고 보니 지상 최고의 엄마인데 왜 나는 전화를 안 해서 늘 엄마를 열 받게 하는가.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를 쓴 우에노 치즈코는 부모가 죽을 때 옆에서 사랑한다고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 말고 부모 생전에 사랑과 감사를 충분히 전하라고 강조한다. 늙은 엄마한테 자주 전화합시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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