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 같이 당당했던 남편… 유언도 없이 가시다니요[그립습니다]

2024. 9. 1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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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머리털에 밴 야생의 모습은 작은 생명체가 되어 몸을 둥글게 접고 내 안의 표범이 되었어요.

표범이 아프다고 했지만 내 몸에 상처와 함께 그 치유를 갈망하는 시선은 외부를 향하기보다 스스로의 내부로 집중해야만 했어요.

왠지 누군가 재미있게 조잘대 줄 것 같아서 마음 깊은 곳에 여러 가지 생각을 꺼내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투명해진 햇살이 다가와선 지난 멋스럽던 일들이 순간순간 기억날 것이라고 따뜻한 선물처럼 제 등을 도닥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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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배경옥(1948∼2024)
1981년 가을에 아들 성국을 가진 기념으로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 성국은 현재 포엠포엠book 대표로 일하고 있다. 남편이 저세상에서도 무척 대견스러워할 것으로 믿는다.

어느 순간 머리털에 밴 야생의 모습은 작은 생명체가 되어 몸을 둥글게 접고 내 안의 표범이 되었어요. 표범이 아프다고 했지만 내 몸에 상처와 함께 그 치유를 갈망하는 시선은 외부를 향하기보다 스스로의 내부로 집중해야만 했어요.

2024년 8월 3일 빈소를 차리고 울컥 휘어버린 마음을 애써 펴보는데 무수한 생각들이 그대의 빈자리로 들어왔어요. 남들은 국어 교사인 당신을 강력계 형사나 운동선수로 보았듯이 그토록 당당한 사람이 유언도 없이 떠나다니요, 그날 함께 있어야 할 사람냄새 진동하던 진주고 죽마고우들은 먼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저 높은 천상에서 해후하여 그 시절로 돌아가세요.

얼음 수북한 팥빙수 좋아하고 아침에 눈 뜨면 정수기에 물을 꿀꺽꿀꺽 마셔대며 몹시도 더위를 타더니 삼복을 견디지 못하고 갔는지요.

당신과 나의 시세계를 향한 출발점과 통증 같은 내 몸은 운명적으로 이어졌어요. 같이 아파하는 심장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줄도 몰랐죠. 1989년 나의 젊음은 항암치료로 풍성한 머리카락과 보송보송한 얼굴이 소복한 눈이 녹으면서 푸석대는 모양이 되어갔지만 자존심에 당신에게는 투정도 부려보지 못하고 혼자 참고 견뎌낸 것이 후회도 됩니다.

강한 척, 머리에 보이시한 비니를 쓰고 군복 같은 옷을 입고 부츠를 신고 다니던 나를 선머슴 같다고 했지만 피가 도는 아내를 향한 은근한 사랑인 것을 알고 있었어요. 나의 위태로웠던 생명의 행간마다 시를 품어온 긴 시간들을 관심 없는 듯이 자유롭게 해준 것도 알아요.

낙엽 툭툭, 떨어지는 늦가을이면 창가 카페에서 그 시대의 트렌드를 좋아하고 낭만에 젖어 로맨틱해지는 나와는 감성의 스타일이 전혀 달랐지요. 천진스럽고 술친구 좋아하는 동적인 남자이지만 다른 세계의 사이에서도 아날로그 감성은 똑 닮아서 지난 일을 되돌아보며 얘기를 나누다가 밤을 새운 적도 많았는데 이제는 혼자 추상에 잠겨야 합니다.

대문만 열면 보초처럼 서 있던 불볕더위도 떠나고 한가위를 맞은 사람들의 뒷모습이 평안해 보입니다. 저들 속에 한 사람이 되어봅니다.

별것 아닌 소소한 것에도 잠시 멈춰 서서, 한 마디만 했어도 아쉬움이 덜할 텐데 스산한 바람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겠다고 마음 드러내는 쓸쓸한 날,

왠지 누군가 재미있게 조잘대 줄 것 같아서 마음 깊은 곳에 여러 가지 생각을 꺼내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투명해진 햇살이 다가와선 지난 멋스럽던 일들이 순간순간 기억날 것이라고 따뜻한 선물처럼 제 등을 도닥여 줍니다.

한창옥(시인, 포엠포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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