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의 시 11편 모아… “독재와 박해에 대한 저항”[이 남자의 클래식]

2024. 9. 1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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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남자의 클래식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4번 ‘죽은 자의 노래’
소프라노·베이스의 두 성악가
교차 노래 장대한 연가곡 느낌
1969년 3개월만에 작곡·초연
마비·골절 등 병마 딛고 완성

죽음이라는 소재는 시대를 초월해 수많은 작곡가에게 음악적 영감을 가져다줬다. ‘인민의 베토벤’이라 불렸던 러시아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에게도 그랬다. 그는 ‘죽음’을 소재로 한 시 11편을 모아 교향곡을 작곡했다. 바로 ‘죽은 자의 노래’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교향곡 제14번(Shostakovich, Symphony No.14 Op. 135)이다.

이 작품은 기악음악의 대표 장르인 교향곡이지만 소프라노와 베이스 두 성악가가 함께 무대에 등장하는 작품으로, 성악이 등장한다는 면에서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와 그 형식이 유사하다. 오케스트라의 편성은 대규모가 아닌 실내악 규모로 편성돼 있고, 전곡에 걸쳐 두 성악가가 무대에 머물러 교차하며 노래하고 있어 교향곡이라기보단 마치 한 편의 장대한 연가곡(내용이나 특성 면에서 서로 관련 있는 곡들로 묶인 가곡집)을 연상케 한다.

전체 11악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11개의 각 악장에는 죽음의 이미지의 시 제목이 붙어 있다. 사용한 시들은 한 작가에 의한 것이 아닌 복수의 작가들로부터 차용한 것으로 러시아 작가의 것도 있고 스페인이나 독일, 프랑스 작가들 것도 있다. 하지만 노래는 원어가 아닌 모두 러시아어로 번역돼 불린다. 각 악장의 제목들은 아래와 같다. 4명의 시인은 각기 다른 민족적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지만, 모두 정치적 격동기를 살아냈던 인물들이다.

1악장 “심연에서(De profundis)”, 2악장 “말라게냐(Malaguena)”, 3악장 “로렐라이(Loreley)”, 4악장 “자살(Le Suicide)”, 5악장 “조심스럽게 1(Les Attentives 1 on watch)”, 6악장 “조심스럽게 2(Les Attentives 2, Madam, look)”, 7악장 “상테(파리의 교도소 이름)에서(A la Sante)”, 8악장 “콘스탄티노플의 술탄에게 보내는 자포로제 카자크들의 답장(Reponse des Cosaques Zaporogues au Sultan de Constantinople)”, 9악장 “오 델비크, 델비크(O, Del’vig, Del’vig!)”, 10악장 “시인의 죽음(Der Tod des Dichters)”, 11악장 “결말(Schlußstuck)”.

작품은 1969년 봄, 불과 3개월 만에 작곡돼 같은 해 러시아의 레닌그라드에서 초연됐다. 작품의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걸출한 독창성과 완성도를 갖고 있어 그의 만년을 대표하는 걸작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작곡하기 몇 해 전인 1960년대 초 쇼스타코비치는 심근경색으로 인한 오른손의 마비로 펜을 들어 작곡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왼쪽 다리마저 골절돼 여러모로 고통을 겪었다.

작곡 당시 쇼스타코비치의 나이 63세로 이런 건강상의 문제들은 죽음에 대한 더 깊은 사색을 하게 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는 이 작품에 대해 스스로 밝히길 “이 작품은 죽음에 대한 저항이자, 더 나아가 모든 형태의 독재와 박해에 대한 저항”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사색의 결과를 평화와 안식이 아닌 영원한 소멸, 서글픈 스러짐으로 표현하고 있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 오늘의 추천곡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 14번 중 1악장

1악장의 제목은 라틴어로 ‘데 프로푼디스(De profundis. 깊은 곳에서)’로 베이스에 의한 독창이다. 스페인 내전 때 살해당한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에 붙인 노래로 바이올린이 이끄는 느린 템포의 서주로 시작한다. 그러나 베이스의 노래는 진지한 것에서 익살스럽게 전개되며 죽음의 공포나 두려움 대신 마치 조롱하듯 냉소적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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