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사고 날지 몰라"…복잡한 증권사 상품, 책무구조도 작성도 어렵다

홍재영 기자, 김진석 기자 2024. 9. 1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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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밸류업의 출발, 자본시장 내부통제 (下)
[편집자주] 자본시장 가치 제고 노력이 한창인 가운데 시장 발목을 잡는 금융투자업계의 부실한 내부통제 문화부터 다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시장에서 투자자의 신뢰를 낮추는 금융사고가 얼마나 발생하고 있는지, 무수한 지적에도 부실한 통제가 이어지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복잡·다양한 증권사 금융사고…책무구조도 작성 까다로워"
임성재 삼일회계법인 파트너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금융당국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금융사 책무구조도 도입을 시행하면서 기업 지배구조와 내부통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증권업계는 타 금융업권에 비해 다양한 상품을 다루고 그만큼 부서도 많아 내부통제나 책무구조도 작성에 어려움이 있다는 평가다. 회계업계는 데이터화, 시스템화를 통해 금융사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책무구조도 작성도 지원하고 있다.

임성재 삼일PwC RA(Risk Assurance) 그룹 총괄 파트너는 본지와 만나 "금융투자업계의 책무구조도 작성이 다른 업권에 비해 유독 어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업 자체가 자금 흐름을 다루는 고위험 업종이어서 다른 산업에 비해 내부통제의 수준이 높은 편이지만, 증권업은 다양한 상품을 다루는 만큼 통제의 부실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임 파트너는 "은행의 경우 예금과 대출이 대부분으로 상품구조가 그리 복잡하지 않다"며 "증권사의 경우는 상품이 매우 복잡하고 파생상품이 결합된 경우도 많다 보니 어디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현업에서 일어나는 거래들을 모두 추적해 내부통제 시스템이나 절차를 만들어 둬야 하는데, 이러한 특성상 적시성 있는 대응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다양한 상품을 바탕으로 내는 성과에 민감한 증권사의 업무 문화를 고려하면 내부통제를 자칫 놓칠 위험이 높다.

그는 "증권사의 경우 일반 은행에 비해 KPI(핵심성과지표)가 성과에 더 연동돼 있는 경향이 있다"며 "그것도 장기보다는 단기 성과의 비중이 높은 편"이라고 했다.

상품의 다양성은 책무구조도 작성을 어렵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임 파트너는 책무구조도 작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중복과 누락, 공백이 없어야 하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증권사는 부문 대표제를 가진 경우가 많은데 각자가 어느 업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공백 없이 일일이 지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증권사의 경우 상품이 다양한 만큼 조직이 복잡하고 이에 따라 책무구조도를 작성하기가 유난히 까다롭다는 평가다. 임 파트너는 세밀한 인터뷰를 통해 명확히 업무를 배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자산총액 5조원·운용재산 20조원 이상인 금융투자업자는 2025년 7월까지 책무구조도를 제출해야 한다. 증권사의 경우는 대형사가 2025년 7월, 중소형사는 2026년 7월까지 책무구조도를 완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임성재 삼일회계법인 파트너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책무구조도가 도입되면서 내부통제는 통합의 관점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임 파트너는 강조한다. 그간 회사가 재무나 준법 등의 내부통제 요소를 따로 관리했다면 앞으로는 책무구조도 상 책임자가 이를 전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 분석과 포렌식 등 여러 요소를 적용해 경영진들이 통합적으로 정보를 보고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임 파트너는 "이제 내부통제의 고도화가 필요한 시점으로 경영진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삼일PwC는 올해 상장사의 리스크 예방 업무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기존의 여러 조직을 통합해 RA그룹을 출범시켰다. 내부통제, 포렌식, 전산, 외부감사 등의 단절됐던 부서들을 통합해 기업의 다양한 불확실성에 대한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내부통제 강화하는 증권사…초대형IB 가늠자 될까
여의도 증권가 /사진=머니위크

지난해부터 증권업계 내 각종 금융사고가 잇따르면서 리스크 관리 역량이 도마 위로 떠올랐다. 금융당국도 증권사의 자발적 책무를 강조한 가운데 각 기업은 내부감사 강화, 조직개편 등을 통해 역량 확보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내년에는 공매도 재개가 예상되고, 초대형 IB(투자은행) 인가를 노리는 증권사들도 다수 있어 리스크 관리 시스템의 확립이 주요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최근 내부통제 관련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CFD(차액결제거래), 영풍제지 미수금 사태 등에 시달렸던 키움증권은 올 초 조직 개편을 통해 위기관리 능력 강화에 나섰다. 리스크관리 TF(태스크포스)를 팀으로 승격시켜 리테일Biz분석팀을 신설했다. 아울러 감사기획팀을 신설해 현업·리스크·감사부문 3중 통제 체계를 구축했다.

PF(프로젝트파이낸싱) 꺾기 등의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던 iM증권(옛 하이투자증권)은 최근 임시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이사회 내 위원회로 내부통제위원회를 신설했다. 이는 내부통제 강화의 기반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앞서 iM증권은 채권 운용 등 영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로 수익 편중을 완화하겠다는 계획도 내세운 바 있다.

메리츠증권의 경우 꾸준히 내부통제 이슈로 지적받아 왔다. 지난해 5월 이화전기 거래 정지 전 주식을 매도할 당시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아울러 IB 부서 전직 직원이 미공개 정보로 부동산 투자를 한 것이 적발된 사례도 있다. 메리츠증권은 올해 상반기 초대형 IB 진출 의사를 밝힌 뒤 이사회 내 내부통제위원회를 설치하고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개정했다.

내부통제 강화하는 증권업계/그래픽=이지혜 기자

메리츠증권 뿐 아니라 초대형 IB 인가를 노리는 증권사들에는 내부통제 시스템 마련이 주요 과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초대형 IB 신청 우선 자격 요건은 자기자본 4조원 이상으로, 금융당국에 신청해 심사받을 수 있다. 재무 요건뿐만 아니라 내부통제 시스템, 재무 건전성, 대주주 적격성 등 여러 세부 조건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진행된다.

초대형 IB는 자기자본의 2배를 조달할 수 있는 발행어음업에 진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는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이 초대형 IB로 지정돼 있다. 지난 2017년 삼성증권이 초대형 IB로 지정된 이후 6번째 초대형 IB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 재무조건을 충족한 증권사는 △키움증권 △메리츠증권 △신한투자증권 △하나증권 4개사다.

앞서 도전했던 신한투자증권과 하나증권이 내부통제 이슈로 좌초한 사례가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2019년 초대형 IB 추진 계획을 밝혔다가 라임펀드 사태로 무산된 바 있다. 하나증권 역시 2020년 초대형 IB 진입 시도 당시 임직원 선행매매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현재 초대형 IB 진출 의사를 밝힌 메리츠증권과 키움증권이 내부통제 이슈 해소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다.

금융투자협회도 증권사 내부통제 문제에 팔을 걷어붙였다. 금융투자협회는 지난 7월 내부통제 업무 담당자를 위한 '증권사 내부통제' 집합 교육 수강생을 모집하고, 지난달 20일부터 진행했다. 금융투자협회 담당자는 "금융감독원 혹은 경력 있는 실무자들이 세부 사례를 바탕으로 진행한 만큼 수강자들의 만족도가 높았다"며 "내부통제 담당자들의 전문성을 함양할 수 있는 과정을 지속 개설할 예정"이라고 했다.

홍재영 기자 hjae0@mt.co.kr 김진석 기자 wls74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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