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회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는 물러나실 때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인사말을 건네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요즘 심적으로 매우 힘드시리라 생각합니다. 최근 자서전에서 밝힌 것처럼 한국 축구에 큰 애정을 갖고 열심히 일했는데 온통 비난 일색이라 더 서운하고 더 답답하실 것 같습니다. 회장님을 곁에서 본 많은 사람들은 회장께서 소탈하고 선하며 성실한 분임을 알고 있습니다. 회장이라는 자리를 얻어 큰 이득을 얻거나 감투에 욕심이 있어 직에 연연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도요.
2013년 회장 취임 이후 3선을 하셨고 12년이 지났습니다. 재임 기간 한국 축구 발전에 크게 공헌하셨습니다. 초기 한국축구 발전 방향과 과제를 담은 ‘비전 해트트릭 2033’을 발표해 청사진을 제시하셨습니다. 프로축구연맹 총재 시절부터 협회와 함께 K리그 디비전과 승강제를 추진했고, 회장이 된 뒤 승강제가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는 데 앞장섰습니다. K3, K4리그를 정리해 아마추어 승강제 기틀을 만드는 등 1부부터 7부까지 성인 디비전 체계를 정비한 것은 다른 종목 단체는 쉽게 할 수 없는 대업입니다. 골든에이지 프로그램, 초등부 8인제, U리그 승강제도 한국 축구 발전에 큰 도움이 됐음은 물론입니다.
대표팀 성적도 준수했습니다. 2017년 U-20 월드컵 국내 유치에 이어, 2019 U-20 월드컵 준우승, 2023 U-20 월드컵 4강을 거뒀고 아시안게임도 3연패했죠.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앞서 두 차례 조별리그 탈락의 아픔을 딛고 16강에도 진출했고요. 여자 축구도 3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나섰습니다. 물론 파리올림픽 출전에 실패한 것은 매우 아쉽지만요.
노후한 파주센터를 대신해 천안에 종합센터를 건립하기로 한 것도 큰 성과입니다. 또 정몽규 회장 체제에서는 과거 빈번히 발생한 친협회파와 반협회파간 반목도 거의 없었습니다. 비록 국제 외교 측면에서 후퇴한 것은 사실이지만, 외교 분야는 역학·이해 관계가 복잡하고 국가 행정력·경제력과도 직결되는 부분이라 모두 회장 탓이라고 무작정 비난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최근 2년은 협회 암흑기라고 할 만큼 상황이 최악이었습니다. 과거 집행부도 여러 차례 비난받았던 적이 있지만 한두 달 정도면 어느 정도 수습이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긴 분노와 불만은 가라앉을 기미가 안 보입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입니다. 선의를 갖고 시작해도 한사람이, 특정 집단이 오래 집권하면 나태함, 독선, 오만, 부패가 생겨납니다. 지금 협회는 생기, 의욕, 추진력, 공감 능력을 잃었습니다. 회장께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모든 사태의 중심에는 결국 리더가 있습니다. 승부조작 연루자 사면 결정부터 의문투성이인 클린스만 감독 선임, 이후 그의 불성실한 행태를 제어하지 못해 경질하는 등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회장님께 있습니다. 홍명보 감독 선임에 큰 잡음이 난 것도 적재적소에 적임자를 임명하지 못하고, 무능력하거나 아첨만 일삼는 인물들을 배치한 회장님 책임이 큽니다. 와중에도 회장께서는 4선 도전의 욕심을 가지신 듯합니다. 천안센터 등 본인이 시작한 일은 마무리하는 게 진정으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연임에 도전하려 한다는 말도 들립니다. 솔직히 명분이 약합니다. 역량이 안 되는 인물이 회장이 될 경우,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어 연임을 요구하는 측근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그만두면 나라가 혼란해져 안 돼”라는 독재자 논리와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지금 협회에 대한 신뢰가 안팎에서 완전히 바닥입니다. A매치에서 회장과 감독을 비난하는 걸개와 구호가 난무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감사, 주요 축구인 국회 출석 요구까지 이어졌습니다. 국민의 존경을 받아야 할 한국 축구 영웅들은 조롱의 대상이 됐습니다. 국가대표 선후배들이 공개적으로 싸웁니다. 대표팀 간판 선수가 서포터즈와 언쟁까지 벌였습니다. 함께 일하는 협회 직원으로 구성된 노동조합마저 회장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혼란을 그나마 수습하는 유일한 길은 회장께서 지금 바로 4선 도전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것뿐입니다. 물론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참담한 상황을 진정시키고 분열에서 화해로 물꼬를 돌리는 큰 계기가 될 것입니다. 회장께서 섭섭하실지 모르지만 그게 지금은 정답입니다.
회장께서 자서전을 통해 본인이 한국 축구를 얼마나 사랑하고 축구 발전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이제 마지막으로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남 탓만 할 뿐 책임지는 리더가 없습니다. 회장님만큼은 마지막 순간까지 책임지는 리더로 남기를 바랍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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