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는 깎아달라, 사재 출연은 부당하다?…재계의 자기모순
우리나라에는 기업이 파산 직전에 이르렀을 때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신청에 앞서 기업 재무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워크아웃이다. 이 제도는 기업 입장에서는 금융기관 지원 속에 생존을 도모하고, 채권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채권 일부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채권 전체의 부실화를 방지할 수 있게 한다. 대출금 출자전환·원리금 상환유예·신규대출·이자 및 원금 감면 등의 부채조정과 함께 감자·자산매각·계열사 정리 등도 포함된다.
워크아웃 과정에선 언제나 대주주의 책임이란 관점에서 대주주의 사재출연도 뒤따른다. 2010년 금호아시아나의 경우 박삼구 회장 등 대주주 일가는 2200억원 규모의 사재 출연과 지분포기각서를 채권단에 제출했다. 올해 초 워크아웃에 들어간 태영건설도 대주주 일가의 사재출연은 워크아웃 개시의 가늠자가 되었다. 윤석민 그룹 회장의 태영인더스트리 지분 매각대금 416억원 외에 태영건설 자회사 채권매입 30억원, 윤세영 창업 회장도 태영건설과 자회사 채권매입에 38억원을 지원함에 따라 워크아웃이 시작됐다. 이외에도 출자전환 때 대주주 지분과 일반 소액주주 지분의 차등 감자가 일반적으로 이뤄지는 것도 대주주 책임이란 관점 속에 진행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대주주 사재출연은 법적 근거도 없고 주주의 유한책임이라는 발명품을 통해 성장한 주식회사제도의 근본과도 어긋난다. 주주는 지분만큼 책임지면 된다. 대주주라고 해서 ‘특별’히 지분보다 많은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 ‘국민정서법’에 따라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한 정책·감독 당국이 사재출연을 요구할 뿐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대주주가 지분율 이상의 지배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그 지배력은 ‘경영권’이란 말로 표현된다.
경영권, 실체는 있는가
최근 자본시장에서 논란이 된 두산의 사업구조 개편 계획을 통해 대주주와 그를 대리한 이사가 어떻게 경영권을 행사하고, 대주주의 지배력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를 보면 ‘경영권’의 실체를 가늠할 수 있다. 두산이 지난 7월11일 처음 밝힌 사업구조개편 계획은 인적분할, 합병, 포괄적 주식교환과 같은 복잡한 자본거래를 매개로 하고 있다.
지배력 관점에서 거래 전후를 비교해 보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대주주가 지배하고 있는 지주회사 ㈜두산이 가장 경영상태가 좋고 현금창출력이 높은 손자회사 두산밥캣에 대한 지배력 변화이다. 개편 전에는 ㈜두산이 자회사인 두산에너빌리티의의 지분 30%를 가지고, 이 회사가 두산밥캣의 지분 46%를 보유하여 ㈜두산의 밥캣의 지배력은 13.8%(30%×46%)다. 개편계획에 따르면 에너빌리티를 인적분할하여 로보틱스와 합병함과 동시에 밥캣과 합병된 로보틱스의 주식을 포괄적으로 교환하여 ㈜두산이 로보틱스 지분 42%를 갖고 로보틱스가 밥캣의 지분 100%를 갖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두산의 밥캣에 대한 지배력은 42%(42%×100%)로 바뀐다. ㈜두산의 밥캣의 지배력이 13.8%에서 42%로 늘어난 건 대주주가 아닌 누군가, 즉 일반주주의 지배력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 개편 방안에 대해 시장과 감독 당국이 문제를 지적하자 두산은 지난 8월29일 수정안을 내놨다. 개편 단계 중 맨 마지막인 로보틱스와 밥캣의 포괄적 주식교환만 철회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로써 밥캣의 일반주주의 권리 침해는 발생하지 않지만 ㈜두산의 지배력 확대와 에너빌리티 인적 분할과 로보틱스의 합병비율에 따른 에너빌리티의 일반주주 권익침해는 여전하다. 또 밥캣과 로보틱스의 주식교환 문제는 추후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편의 본질은 변화하지 않았다고 나는 본다.
각 회사의 이사가 이런 구조개편안을 이사회에서 의결하는 것은 불법은 아니다. 이런 거래가 배임이 되지 않는 이유는 상법 제382조의 3항 이사충실의무 조항에서 이사(경영진)의 의무는 회사와의 계약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지 주주와의 계약, 즉 권한 위임이 없기 때문에 배임이 되지 않는다고 대법원이 판결했기 때문이다(2004.5.13. 선고 2002도7340).
이 거래의 계약주체를 보면 대법원 판례는 논리적으로 심각한 모순에 빠진다. 그림의 3번째 단계, 즉 로보틱스와 밥캣의 포괄적 주식교환 계약의 주체는 이사회 결의를 각각 거친 두 회사(이사)다. 포괄적 주식교환은 회사의 일이 아니고 주주의 일이다. 주주는 회사에게 주주에 관한 일을 위임한 적이 없다. 그런데 회사가 계약을 체결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다. 주주가 주주의 일을 회사(이사)에 위임한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가 주주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자본시장법상으로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 거래는 ㈜두산의 밥캣에 대한 지배력이 13.8%에서 42%로 증가함과 동시에 에너빌리티는 밥캣의 지배력이 상실되는, 즉 밥캣을 로보틱스에 매각하는 것과 동일하다. 단순히 에너빌리티가 밥캣을 로보틱스에 매각하면 될 것을 인적분할과 합병이라는 단계를 거친 것이다. 에너빌리티는 상장회사로 인적분할할 경우 기존 회사와 신설법인은 일정 기간 거래 정지된 후 두 회사가 동시에 상장돼야 하고 두 회사의 가치평가 방법은 동일해야 한다.
그러나 이 거래 과정에서 신설법인을 비상장 회사로 보고 저평가하고 상장된 로보틱스는 시가 평가(로보틱스는 적자이지만 특례상장제도로 상장됐고 AI 열풍 등을 업고 높은 시장가격이 형성됨)해 합병비율 산출하는 마법을 구사한 것이다. 회사평가의 기본 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인적분할과 합병비율의 마법을 통해 최소 약 6000억원에서 1조원가량의 가치가 대주주에게 이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더해 밥캣이 로보틱스의 완전 자회사이기 때문에 현금창출력이 높은 밥캣이 배당할 때 배당소득세가 완전 면제되는 혜택이 따라온다. 예를 들어 밥캣이 1조원을 배당한다면 ㈜두산은 4000억원의 추가이득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과 원칙의 괴리와 재계의 자기모순
대다수 소액주주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대주주에 유리하게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경영권’이 발생하는 것이고 대주주의 지분을 매각할 때 경영권 프리미엄을 주는 것이다.
상속세를 부과할 때에도 지배주주의 지분에 대해서는 20%를 할증하게 돼 있다. 상법상 주주평등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대주주가 지분 이상의 특별한 권한, 즉 ‘경영권’이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주주권 이외의 경영권의 실체를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으로는 재계는 경영권의 존재를 인정하여 그 대가를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워크아웃에서 지배주주에 대한 사재출연 요구를 주주평등의 주식회사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며 상속세 할증 폐지를 요구하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경영권은 실재하는 것인가? 근대 부르주아 혁명의 기초는 절대 왕조의 왕권신수설을 부정하고 천부인권, 즉 모든 인간은 똑같은 인권을 갖는다는 사상이었다. 이에 대응되는 것이 바로 주식회사제도의 주주평등의 원리다. 워렛 버핏이 “칼 루이스가 100m 달리기 올림픽에서 우승하였다고 그 아들을 100m 선수로 뽑아야 하는가?”라는 어록을 남긴 것은 경영권은 주주가 그 회사 가치를 가장 크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위임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경영권은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상법 개정, 밸류업의 시작
주식회사 제도의 기본 원리, 그리고 상법에 규정된 주주평등의 원칙과 우리 시장의 현실(또는 법규/관행)이 괴리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차별이 없도록 상법을 개정해야 한다. 상법 제382조의 3 이사충실의무에서 이사는 기업뿐만 아니라 주주에게도 충실해야 한다고 바꾸면 된다. 모든 주주는 자신의 지분만큼 권한을 행사할 것이기 때문에 대주주의 사재 출연 요구도, 대주주 상속세 20% 할증도 그 근거가 없어진다. 대한상공회의소가 7월28일 비상장기업 237곳을 조사한 결과, 상장 추진 기업 중 36.2%는 상법의 이사 충실의무가 확대되면 상장 계획을 재검토(34.5%) 또는 철회(1.7%)하겠다고 상법 개정에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새로운 주주를 초대하여 회사의 성장과 가치 상승을 추구하면서 새로이 초빙된 주주의 권리를 경영권이란 이름으로 마음대로 가져가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회사가 성장을 위한 자본 조달 방법은 금융기관에서 빌리는 것과 새로운 주주를 초대하는 것이다.
회사에 이자는 비용이다. 주주를 초대하는 것은 비용이 없는가? 주주 입장에서 볼 때 금융기관에 예금하면 안정적인 이자를 받을 수 있지만, 주주가 되는 것은 이 안정성을 포기하고 위험성이 높은 주식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주주의 요구수익률은 당연히 이자보다 높아야 한다(평균 2배 정도). 기업 입장에서 볼 때 주식 발행 비용은 채권보다 높은 것이다. 상법이 개정되면 상장을 재고하겠다는 것은 이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새로이 초빙된 주주의 재산을 경영권의 이름으로 가져가겠다는 것 아니고 무엇인가? 과연 이런 시장에 투자를 권할 수 있을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이 상법 개정인 것이다. 모든 주주가 똑같이 대접받는 자본시장, 이것이 밸류업 정책이며 상법개정은 그 출발점이다.
이용우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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