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퍼' 검색하자 "용돈 줄게" 글 주르륵…여중생 꾀어내는 '검은 손'
[편집자주] 머니투데이 사회부 사건팀은 지난 4개월간 전국 각지에서 실종 가족들을 만났다. '2024 실종리포트-다섯가족 이야기'는 한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실종 가족들에 대한 기록이자 오늘날 가족의 의미를 찾으려는 우리의 이야기다.
# "갑자기 울리는 소리 때문에 자꾸 깬다. 문자 좀 보내지 말라." - 민원인 A씨
지난 여름 서울경찰청 실종수사팀으로 한 중년 남성의 민원이 접수됐다. 실종 문자(실종 경보 문자)로 아침잠이 깼다는 내용이다. 경찰은 단기 실종자를 빠르게 발견하고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2021년 6월부터 실종 문자를 발송한다. 발령 가능 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다.
실종 문자 발송에 항의하는 민원이 적잖은 것으로 파악됐다. 25년간 딸을 찾던 한 아버지가 교통 사고로 숨진 사건에 한 때 국민 시선이 집중됐지만 실종 사건과 가족에 대한 보편적 관심은 높지 않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최근 실종 사건이 늘어나면서 실종 문자 발령 건수도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서울 지역에서만 △2021년 66건 △2022년 348건 △지난해 654건의 실종 문자가 발송됐다. 올해는 지난 5월까지 261건의 실종 문자가 전송됐다.
실종 문자는 재난 문자 형식으로 발송된다. 실종자의 성별과 나이, 실종 당시 인상착의 등이 문자 내용에 포함된다. 함께 첨부된 링크를 클릭하면 경찰청에서 운영하는 실종아동찾기 센터 사이트로 연결돼 실종자의 사진 등도 확인할 수 있다. 실종자를 수사하고 있는 관할 경찰서의 전화번호도 공지된다.
하루에도 여러 건의 실종 문자가 발송되면서 들어오는 민원도 적잖다. 경찰청 민원 접수번호 182나 지방경찰청·일선 경찰서 등에 관련 민원이 접수된다. '너무 많이 보낸다' '수시로 와서 불편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서울 일선서 실종수사팀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실종 문자는 재난안전통신망을 통해 관련 지역 주민들에게 일괄 전송되는데 개인 정보가 유출된 것 아니냐는 민원도 많다"고 말했다.
◇늦은 밤·새벽 실종자 가족 발 동동 굴러도…엄격 관리하는 '실종 문자'
일각에선 실종 문자가 시간대와 관계없이 발송된다는 오해도 있다. 그러나 실종 문자는 경찰청 예규인 '실종아동 등 및 가출인 업무처리 규칙'에 따라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만 보낼 수 있다.
또 △18세 미만 아동 △지적·자폐성·정신장애인 △치매 환자 등이 실종됐을 때 문자를 발송할 수 있다. 실종 사건이 발생했더라도 △보호자 동의서를 받은 경우 △실종 아동 등 상습적인 가출 전력이 없는 경우 △실종아동 등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피해 발생이 우려될 경우를 모두 충족해야 실종 문자를 보낼 수 있다.
문자를 보낼 수 있는 지역도 정해져 있다. △실종자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지역 △실종자 주거지가 있는 지역 △CCTV(폐쇄회로TV) 추적 등을 통해 발견된 실종자 현재지 중 최대 2곳에만 실종 문자를 발송할 수 있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 가족을 잃어버린 실종자 가족은 애가 타지만 이같은 규정에 따라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일부 실종 가족들은 최대한 많은 지역에 한시라도 빨리 실종 문자를 보내고 싶어 하신다"면서도 "규정에 따라 자제해 발송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아내를 7번이나 잃어버렸다 찾은 김화선씨(81)는 "방금도 12살 아이가 실종 됐다는 문자가 왔다. 아내가 없어질 때마다 너무 무서우니까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느끼는 마음을 잘 안다"며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찾기가 정말 어렵다. (시민들이) 남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실종 수사는 골든 타임 중요"…국민 피로감 낮추기 위한 고민도
실종 문자는 수사관들에게 큰 도움이다. 서울 한 경찰서 실종수사팀에서 근무하는 B 수사관은 "실종 문자를 보신 후 적극적으로 신고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며 "이틀 전에도 문자를 보고 제보 전화를 주신 덕에 10분만에 실종자를 찾았다"고 밝혔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명예교수는 "실종 수사는 골든 타임이 있다. 시간이 늦춰질수록 실종자를 구출할 가능성이 낮아진다"며 "특히 어린이나 치매 노인 등은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아 추위나 배고픔 등으로 사망할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높아진 국민 피로감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뒤따른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실종 문자뿐 아니라 재난 문자가 많이 와서 시민들이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며 "오남용되면 당초 제도의 의미가 무색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지난 5월 A씨는 가출한 여고생을 도와준다며 모텔로 불렀다. 그는 경찰에 검거된 후 억울하다고 호소했으나 '미신고 보호' 및 강제추행 혐의로 형사 입건됐다. 해당 모텔 업주도 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 지난 4월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알게된 13세 B양에게 도움을 주겠다며 접근한 40대 C씨도 경찰에 붙잡혔다. 3일간 숙식을 제공하는 등 '미신고 보호'한 혐의다. 그는 실종아동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미성년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겠다는 이른바 '헬퍼'가 활개치고 있다. 대체로 길거리 청소년 등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접근한 후 성착취 등 범죄를 벌인다. SNS(소셜미디어)상에서 시작된 헬퍼 범죄가 확산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13일 X(옛 트위터) 등 SNS에 '헬퍼'나 '헬프'를 검색한 결과 최근 1시간 내 관련 게시물이 10개 게재된 것으로 파악됐다. 헬프는 헬퍼의 도움을 받으려는 미성년자를 뜻한다. 헬퍼는 거주 지역을 밝히면서 숙식, 용돈, 옷 등 도움을 주겠다고 미성년자들을 유인한다.
경찰에 따르면 헬퍼들은 가출 청소년들에게 선의로 숙식을 제공하려고 한 것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의도를 떠나 헬퍼들이 미성년자에게 이같은 방식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불법이라고 경찰은 경고한다.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 2조에 따르면 가출 청소년은 실종아동에 해당한다. 또 같은법 7조(미신고 보호 행위의 금지)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실종아동 등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보호할 수 없다고 명시됐다. 위반 시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경찰에 따르면 C씨 역시 집에서 나온 B양에게 경기 이천에 있는 자신의 빌라를 거처로 제공한 후 선의였다고 주장했다. C씨는 실종아동법 위반 혐위로 검찰에 넘겨졌다.
아동·청소년 지원단체 탁틴내일의 정희진 팀장은 "보호할 목적이었다면 아이들을 수사기관이나 보호기관에 안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해마다 실종 아동 발생 건수이 증가하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헬퍼 범죄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뒤따른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18세 미만 실종 아동 발생 건수는 △2020년 3345건 △2021년 3699건 △2022년 5419건 △2023년 5557건으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인다.
이에 '아동 유인' 행위 자체를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찰 등에 따르면 SNS에서 성적 목적으로 미성년자를 유인할 때는 처벌이 가능하나 숙식을 제공하겠다는 것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
정 팀장은 "헬퍼들은 목적을 드러내놓고 미성년자들을 유인하지 않는다"며 "SNS 사업자의 관련 신고를 의무화하고 아동을 유인하는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탁틴내일 '2023 이슈리포트'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성범죄법'(Sexual Offence Act)에 따라 아동과 청소년을 상대로 성적인 표현을 쓰지 않았더라도 장기적으로 성적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밥을 먹자' '함께 술을 마시자' 등 대화만으로 처벌 할 수 있다.
미국 콜로라도주는 상대가 15세 미만임을 알고 온라인 만남을 제안한 이에 대해 목적 및 의도와 관계 없이 형사 처벌할 수 있다. 실제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처벌된다. 미시간주에서는 부도덕한 목적으로 미성년자에게 접근할 경우 최고 4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을 역임했던 이명숙 변호사는 "헬퍼 범죄를 사전에 막기 위해선 SNS에서 청소년에게 도움을 제공한다는 글을 올리는 행위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며 "실제 행동에 이르지 않더라도 처벌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지난 6월 요양원에 지내던 치매 어르신이 실종됐다. 실종 신고는 사건 발생 1시간 후 경찰에 접수됐다. 어르신은 3일 후 기력 없는 상태로 발견됐다.
# 지난 5월 한 치매보호센터가 어르신을 집 주변까지 모시는 과정에서 어르신이 실종됐다. 경찰 수사 끝에 24시간 후 한 빌라 공실에서 발견됐다.
치매 어르신들이 이른바 '시설 부주의'로 실종되는 사건이 이어지는 가운데 치매 어르신들의 신속히 수색을 위한 사전지문등록제가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질적 문제로 손 꼽히는 요양보호사 인력난 문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목소리가 뒤따른다.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한병도 민주당 의원이 제출받은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치매 환자 실종 신고 접수는 △2021년 1만2577건 △2022년 1만4527건 △2023년 1만4677건 등으로 해마다 증가세를 보였다. 연령별로는 70대 이상이 3만5373건, 지역별로는 서울 지역이 1만1835건으로 가장 많았다.
치매 환자들이 주로 찾는 시설은 △주야간보호시설(데이케어센터) △단기보호시설 △노인요양시설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 △요양병원 등으로 조사됐다. 주야간보호시설, 단기보호시설은 대체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시적으로 어르신들을 보호한다. 노인요양시설,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의 경우 어르신들이 시설에 입소해 도움을 받는다.
◇내 새끼는 귀하지만…'사전지문등록제' 등록률, 18세 미만 67.8% vs 치매 어르신 '28.4%'
문제는 시설 부주의로 실종된 치매 어르신을 찾는 데 크게 기여하는 사전지문등록제에 사회적 관심이 낮다는 점이다. 사전지문등록제는 사전에 경찰에 지문과 사진, 보호자 인적사항 등을 등록하는 제도다. 의무 사항이 아니고 자율적으로 이뤄지는데 아동과 비교했을 때 치매 어르신에 대한 등록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지난 3월까지 지문이 등록된 치매 어르신은 전체 98만4601명 중 27만9930명으로 28.4%에 그쳤다. 같은 기간 18세 미만 아동은 전체 707만7206명 중 479만8479명으로 67.8%로 조사됐다.
배회인식표도 마찬가지다. 배회인식표는 실종 가능성이 있는 어르신 옷에 고유번호를 부착하는 스티커다. 쉽게 마모되는 데다가 다리미를 이용해 붙여야 한다.
80대 치매 어머니를 매일 주야간보호시설에 맡기는 50대 김모씨는 "시설에서 봐주는데 어머니가 아직 실종된 적이 없어서 필요성을 못 느꼈다"며 "사전지문등록제나 배회인식표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혼자 여러명 대소변 처리' 요양보호사… "24시간 돌보기 쉽지 않아"
요양보호사 인력 부족도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노인요양시설 내 치매전담실, 치매전담형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은 요양보호사 1명이 입소자 2명을 돌본다. 주야간보호시설은 요양보호사 1명이 4명을 맡는다.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는 신모씨는 "어르신들이 바닥에 앉아서 대소변을 보면 한 명은 어르신을 케어하고 다른 한 명은 치워야 한다"며 "바닥과 침실에 대소변 흔적까지 치우고 나면 힘이 없다. 화장실 이동부터 휠체어 착석까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요양보호사는 "어르신들 목욕도 하고 약도 챙기고 이것저것 하다보면 정신이 없을 때가 많다"며 "어르신들 돌볼 때 체력적인 소모가 크다 보니 24시간 바로 옆에서 돌보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치매환자의 지문등록률을 높이는 동시에 배회하는 노인들을 바로 인식할 수 있는 장치들이 필요하다"며 "요양보호사 인력을 여유롭게 배치하고 시설 구조도 배회하는 노인이 쉽게 시설 내에 돌아오도록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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