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격노한 국민,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

CBS노컷뉴스 이재웅 논설위원 2024. 9. 19.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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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가 귀를 크게 여는 것이다. 민심을 제대로 파악해야 통치의 방향을 잡고 정책 목표를 달성할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통능력이 자질, 성품 등과 함께 지도자의 필수 덕목으로 꼽히는 이유다.

집권 반환점도 돌기 전에 악화일로를 걷는 민심은 그렇다 치고 집권 여당 내부의 평가는 어떨까? 한 여당 정치인은 "벽을 보고 외치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총선에 참패했다면 국정기조를 바꾸고 사람을 바꾸고 고집을 꺾는 게 정치의 상식인데, 총선 뒤 5개월이 지났지만 비서실장 바꾼 것 말고 한 게 뭐가 있냐는 것이다.

김건희 여사가 공개 행보의 보폭을 넓히고 있는 것도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마포대교 도보순찰에 동행하며 마치 통치자 코스프레하는 것처럼 비쳐졌고, 연휴 직전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추석 인사 영상에도 등장했다. 15일에는 장애아동 지원시설에서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19일엔 대통령의 체코순방에도 동행한다.

김건희 여사가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에서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근무자와 함께 도보 순찰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실은 약자와 소외계층, 자살예방 등을 살피며 대통령 배우자로서의 활동을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여당 내에조차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16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지금 온갖 구설수에 다 올라가 있지 않냐", "공개활동을 한다는 것은 국민들을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다"며 자숙할 것을 조언했다.

김건희 여사가 세간의 부정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공개행보에 나선 것은 민심에 둔감하거나 듣고도 무시하는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명품백 수수의혹이 국민의 법 감정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국민권익위를 흔들고, 청탁금지법을 사실상 무력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대국민사과도 없이 지난 여름휴가 때 광폭행보를 재개하더니 이번 추석 연휴에도 공개행보를 이어갔다.

김건희 여사만큼 다양한 사건에 연루되고 여러 구설에 휘말린 대통령 배우자는 일찍이 없었다. 혹여 자신감의 배경에 힘 있는 정부 조직이 영원히 바람막이를 해 줄 거라는 기대가 작용했다면 오산이다. 법적 심판의 상위 개념에 민심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취임 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TK지역과 60대 이상 연령층에서조차 부정평가가 많았다. 추세 반전이 없다면 10%대로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관측도 나온다. 민심이반의 이유는 오만, 불통의 국정운영 방식과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 장기화되는 의료대란 때문일 것이다. 의대증원에 대한 국민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의료대란의 장기화를 막지 못한 정책적 미숙과 함께 유연함과 세밀함 부족도 지적된다. 과격한 증원만 앞세우다 의료개혁 선결과제를 등한시해 의료계의 불신을 불렀다. 윤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내걸고 당선됐으나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법의 잣대가 흔들린 것도 국민을 돌아서게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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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국민의 감정선(線)을 건드린 건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 배우자가 온갖 구설에 휘말리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싶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건희 여사에 여론의 조명이 쏠리도록 한 것을 볼 때 대통령실 내부의 통제 시스템이나 정무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의문이다.

지지율 추락으로는 윤 대통령이 시급하다고 공언한 의료개혁, 연금개혁 등 굵직한 개혁과제는 물론 사소한 정책도 추진하기 쉽지 않다. 과거 온 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한 것에서 보듯, 어려운 개혁과제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지지와 통합된 힘이라는 동력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국정운영의 대전환과 함께 김 여사를 평범한 배우자의 자리로 돌아가게 해야 하는 이유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심각한 현실 인식이 선행돼야 하고, 먼저 바뀌어야 할 사람은 대통령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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