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권거래제, 느슨한 할당량 탓 ‘탄소 감축’은 뒷전 밀려
Q. 기업들 온실가스 줄이게 하는 제도 배출권거래제…뭐길래?
A. 우리나라에서 2015년 도입된 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기업과 시설에 일정량의 온실가스 배출권을 할당하고, 할당량보다 덜 배출한 기업은 남은 배출권을 다른 기업에 판매해 이윤을 남길 수 있도록 합니다. 반대로 더 많이 배출한 기업은 추가로 배출권을 구매해야 합니다. 핵심은 배출권 거래 시장을 만들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배출권거래제에 포함된 기업들의 배출량은 우리나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73.5%를 차지합니다.
최근 배출권거래제 얘기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정부가 올해 말이면 배출권거래제 제4차 계획기간(2026~2030년)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4차 계획이 얼마나 더 강화되는지에 따라 향후 우리나라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여부가 달려 있기 때문에 현재 중요한 결정 시점에 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제1차 계획기간을 시작으로 제2차(2018~2020년), 현재 제3차(2021~2025년) 계획기간까지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우리나라 배출권거래제는 배출권의 가격이 낮고 거래량이 많지 않아 온실가스 감축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환경부가 지난 6월 발표한 ‘2023 배출권거래제 운영결과보고서’를 보면, 할당 배출권(KAU)의 연도별 평균 거래가격은 2015년 톤당 1만2044원에서 2020년 3만713원으로 올랐다가 지난해 8월 기준 1만1178원으로 떨어졌고, 이후엔 더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 9월 기준 가격은 9990원이었습니다.
이렇게 배출권 가치를 떨어뜨리는 주된 요인으로, 우선 정부의 배출허용총량(30억4800만톤) 자체가 너무 느슨하다는 점이 지적됩니다. 너무 넉넉하게 설정하다 보니 기업들이 별다른 감축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할당 받은 배출권을 다 쓰고, 남는 배출권은 판매해 이윤까지 챙길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기후환경단체 플랜1.5 자료를 보면 제1~3차 배출권거래제 기간 동안 포스코 등 10개 다배출기업은 배출권 판매수익으로 약 4747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됩니다. 탄소배출권 판매업체 에코아이는 지난해 약 6230만톤, 올해 9173만톤의 잉여배출권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몇몇 기업들이 감축을 잘해서가 아니라, 산업 부문 전체적으로 배출권이 남아도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결국 전반적으로 느슨한 배출허용총량에 따른 배출권 과잉 공급과 수요 감소 때문에 배출권 가격이 낮아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배출권 가격이 낮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감축 사업에 굳이 투자하지 않은 채 할당량보다 더 많이 탄소 배출을 해도 값싼 배출권을 사서 해결할 수 있는 구조가 됩니다. 그러다보니 배출권에 대한 수요는 더욱 떨어져 배출권 가격이 낮아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상황입니다.
정부가 기업에 공짜로 나눠주는 ‘무상 배출권’의 비중이 너무 높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처음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됐을 때 시장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정부가 기업에 100% 무상으로 배출권을 제공했습니다. 이후 2차 기본계획에서 유상할당 비중을 3%로, 현행 3차에서 10%로 늘렸으나 실제 비율은 4%대로 평가됩니다. 이 때문에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2026년부터 시행되는 제4차 계획기간에서는 유상으로 할당하는 비율을부문별로 차등적으로 대폭 늘려 배출권 가격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유상할당 비중이 늘어나면 기업들의 배출권 수요가 많아져 비정상적으로 낮아 톤당 1만원대(유럽연합의 경우 10만원 안팎)에 머물고 있는 국내 배출권 가격을 정상화시킬 수 있습니다. 가격이 올라가면 배출권을 파는 기업들에게는 이득이, 사려는 기업들에게는 부담이 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환경단체에서는 궁극적으로 전환, 산업, 수송 등 모든 분야에서 유상할당 비중이 100%로 늘어나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 부문에서 유상할당 비중을 급격히 늘리면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국내 공장을 해외로 이전시키는 일 등이 발생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변동 요인이 적은 발전소 등 전환 부문에서 먼저 5년 동안 단계적으로 유상할당 비중을 100%로 늘리는 방안을 현실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배출권 가격이 올라가면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도 함께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전기를 판매할 때 배출권구매비용을 원가에 반영해 판매 대금에 포함시키도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유상할당 확대에 따른 전기요금 상승 요인은 유상할당 비율이 10%일 때 1.14원/kWh에서 50%일 때 4.98원/kWh, 그리고 100%일 때 9.79원/kWh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환경단체들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비용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권경락 플랜1.5 활동가는 “제4차 계획기간에서는 2030년 100%를 목표로 전환부문 유상할당 비율을 확대해야 한다”며 “다만, 감축 여력과 전기요금 인상 요인 등을 감안해 그 비율을 단계적으로 증가시키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물론 배출권 가격이 상승하면 전기요금 부담은 증가할 수 있지만,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로 ‘전력믹스’(다양한 에너지원의 효율적인 조합)가 개선되면, 전환 부문에서 우선 배출량이 감소하면서 유상할당에 따라 비용이 올라가는 요인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산업계는 방향성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배출권거래제 관련 토론회에서 이경수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정책과장은 “2027년이 되면 배출허용총량이 급격히 감소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에 탄소권거래 할당량도 줄게 될 거라 자연스럽게 가격도 상승이 이뤄질 텐데 유상할당 비중까지 올리면 산업계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담당 부처인 환경부도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이영석 환경부 기후변화정책관은 최근 “4차 기본계획에서 유상할당에 대한 대략적인 방향을 준비하고 있지만, 개별 기업이 직접 피부에 느낄 수 있는 수치는 할당계획 때 나와야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습니다. 환경부는 최근 시설 가동 중지 등의 이유로 발생한 잉여배출권을 더 쉽게 회수하는 방향으로 배출권거래제 관련 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현재엔 할당된 배출권 대비 배출량이 50% 이상 감소해야 잉여배출권을 회수할 수 있는데, 앞으론 15%만 감소해도 회수할 수 있도록 강화한다는 것입니다.
기후변화 ‘쫌’ 아는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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