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점프업] ‘165㎝·40㎏’ 휴머노이드 앨리스, 2026년 국내 공장에 뜬다
테슬라는 공장에 휴머노이드 ‘옵티머스2′ 투입
중국도 가격경쟁력 앞세워 휴머노이드 개발 본격화
에이로봇 ‘앨리스’ 4세대 모델 10월 공개…2026년 실증
한 대 5000만원 목표…외국인 노동자 대체할 것
지난 7월 네덜란드 아인트호벤공대에서 열린 ‘로보컵(Robo Cup) 2024′.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경기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가 발로 공을 차는 ‘휴머노이드 어덜트(Humanoid Adult)’다. 한재권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 겸 에이로봇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이끄는 히어로즈(HERoEHS)팀은 중국 칭화대 팀을 5대 1로 누르고 3위를 차지했다. 우승은 데니스 홍(한국명 홍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기계공학과 교수 팀이 차지했다.
한 교수는 대회가 끝나고 소셜미디어에 “중국은 올해부터 정부가 팔 걷어 붙이고 휴머노이드 로봇에 전방위적 투자를 하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중국의 공세를 무서워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우리가 기술적으로 아직은 중국에 비해 우위에 있다는 메세지를 주기 위해 다른 팀을 몰라도 중국 팀들은 압도적으로 이겨야 한다고 다짐했다”고 적었다. 한 교수가 만든 휴머노이드 앨리스는 예선부터 중국 팀을 9대 0으로 이기고, 3·4위 결정전에서도 칭화대 팀을 누르며 이 다짐을 지켰다.
지난 12일 경기도 안산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창업보육센터의 에이로봇에서 한 교수를 만났다. 한 교수는 올해 안식년을 맞았지만, 앨리스 4세대 모델을 준비하기 위해 거의 매일 학교에 나와 일하고 있었다. 지난 7월 로보컵은 한 교수가 만든 휴머노이드인 앨리스 3세대 모델의 고별전이었다. 지금은 10월에 열리는 대한민국 최대 로봇 축제인 ‘로보월드 2024′에 앨리스 4세대 모델을 공개하기 위해 막바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 교수에게 왜 소셜미디어에 중국 팀을 꼭 이기고 싶었다고 적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한 교수는 “미국보다도 중국이 더 위협적으로 느껴진다”며 “중국이 가격경쟁력으로 밀고 들어오는 게 오히려 우리 산업에는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머스크가 연 휴머노이드 시장…中 맹추격
사람을 본 딴 로봇인 휴머노이드는 한동안 대중은 물론이고, 로봇업계도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과학(SF) 영화나 소설의 아이디어 정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2011년 일본에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휴머노이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사람처럼 두 발로 걷는 로봇이 아니라면 실제 사고 현장에서는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미국 방위연구고등계획국(DARPA)이 2015년 로봇공학 챌린지를 열었는데 결선에 올라간 24개 팀 중 21개 팀이 휴머노이드를 만들었다”며 “DARPA가 제시한 문제가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8가지 임무를 한 대의 로봇이 해결하도록 한 건데, 휴머노이드가 아니면 불가능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대회에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휴머노이드인 ‘휴보’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이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후 한국에서는 휴머노이드 개발의 맥이 끊겼다. 휴보를 만든 KAIST 연구진은 레인보우로보틱스를 만들고 사업에 나섰는데, 휴머노이드 대신 산업용 로봇을 주력으로 삼았다. 반면 DARPA 대회에서 한국에 뒤졌던 미국과 중국, 일본은 휴머노이드에 지속적인 투자를 했다.
미국은 최근 결실을 맺었다. 일론 머스크가 세운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자체 제작한 휴머노이드 옵티머스2를 올해부터 테슬라 공장에 시범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오픈AI와 손 잡은 미국의 피규어AI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BMW, 아마존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속속 휴머노이드를 도입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이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의 로봇 기업인 유니트리로보틱스는 지난 5월 휴머노이드 ‘G1′을 출시했는데 가격이 1만6000달러(약 2100만원)로 파격적이었다. 유니트리는 “G1은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두 팔에는 손가락이 3개씩 달렸고, 프라이팬 음식 조리와 호두 까기 같은 집안일도 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 8월 중국에서 열린 ‘세계 로봇 컨퍼런스’에 직접 다녀온 한 교수는 “유니트리 외에도 G1을 카피한 로봇을 내세운 기업이 30곳은 있었다”며 “다만 G1도 여러 옵션을 추가하다 보면 가격이 높아지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가격경쟁력에서 우리도 해볼 만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 따라잡지 못하면 이제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로봇 혁신은 휴머노이드…제2의 스마트폰
왜 로봇 업계가 휴머노이드에 주목하는 걸까. 한 교수는 “로봇은 정해진 임무만 수행하는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 학습하면서 다양한 임무를 할 수 있는 존재가 돼야 한다”며 “기존 산업을 무너뜨리고 파괴적 혁신을 일으킨 PC(개인용 컴퓨터)나 스마트폰은 정해진 하나의 목적만 가지고 만들어진 제품이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휴머노이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 교수의 설명대로 최근 나오는 휴머노이드는 단순히 짐을 옮기거나 용접을 하는 기존 산업용 로봇과 달리 수많은 임무를 한다. 빨래를 개고 요리를 하거나 청소기를 돌리는 등 집안일도 척척이다. 세계 로봇 컨퍼런스는 붓글씨를 쓰거나 발레를 하는 휴머노이드도 선보였다. 하나의 로봇이 하나의 임무만 하던 기존 산업용 로봇과 달리 학습만 하면 수십 가지, 수백 가지 임무도 할 수 있는 게 휴머노이드의 특징이라고 한 교수는 말했다.
에이로봇이 만드는 앨리스 4세대 모델은 3세대와 외향부터 큰 차이가 있다. 한 교수는 연구실 한 편에서 제작 중인 4세대 모델을 소개하며 키 165㎝, 무게 40㎏ 정도라고 설명했다. 3세대 모델이 키 136㎝, 무게 20㎏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사람과 비슷한 모습이다. 한 교수는 “3세대 모델은 실제 일을 하기에는 버거운 면이 있었고, 팔도 강하게 만들지 못했는데, 4세대 모델은 성인 수준의 강력한 팔과 지탱할 수 있는 다리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공장이나 농장 같은 산업 현장에서 실제 사람이 하는 일을 대신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2022년 기준으로 로봇밀도가 세계 1위다. 노동자 1만명당 로봇 대수가 1036대다. 주로 자동차 공장 같은 산업 현장에서 단순 작업을 반복한다. 한 교수는 로봇 수요가 더 많다고 본다. 제조 기업들, 특히 중소기업들은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산업용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휴머노이드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수요가 많은데 한국이 휴머노이드를 개발하지 않으면 값싼 중국산 휴머노이드가 우리 제조 현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산업 기술이 중국에 유출될 우려도 덩달아 커진다. 한국산 휴머노이드가 필요한 이유다. 한 교수는 “안산은 중소기업도 많고 포도농장도 많아서 일손이 많이 필요한데, 기업들을 만나면 휴머노이드를 빨리 만들라고 난리”라며 “아무리 구인 공고를 내도 젊은 사람은 오지 않고 외국인 노동자도 소통에 문제가 있다 보니 휴머노이드에 대한 현장의 수요는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가격 5000만원 앨리스, 외국인 노동자 대체
앨리스는 2026년 안산시에서 POC(기술검증사업)를 할 예정이다. 실제 제조 현장에 제한적으로 앨리스를 투입한 뒤 데이터를 모아 성능을 더 높이는 과정이다. 상용화 시점은 2028년이 목표다. 한 교수는 “한국이 휴머노이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지노선이 2028년”이라며 “우리도 그 때까지는 제조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를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앨리스의 가격은 3만7000달러, 한국에서는 5000만원 정도가 될 전망이다. 한 교수는 외국인 노동자의 급여 추세를 보고 2028년 판매 가격으로 5000만원을 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2028년에는 사람과 로봇이 함께 일하는 과도기적인 단계가 될 것”이라며 “로봇 한 대가 사람 한 명 몫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 휴머노이드가 산업 현장에서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로봇은 최근 35억원 규모의 초기 시드 라운드 투자를 유치했다. 창업 6년 만의 첫 투자 유치였다. 투자 받은 돈은 인력 충원과 생산라인 확보 등에 투자하고 있다. 2028년이라는 마지노선이 정해지면서 한 교수도, 에이로봇도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다.
테슬라와 오픈AI 같은 거대 테크 기업들이 뛰어든 휴머노이드 시장에서 한국의 스타트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한 교수는 “휴머노이드는 진입 장벽이 높은 기술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휴머노이드에 집중한 에이로봇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와 산업계의 지원이다. 한 교수는 “정부가 휴머노이드 수요처를 계속해서 발굴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정부기관이나 관공서에서 휴머노이드를 도입하면 거기서 쌓이는 데이터가 굉장히 소중하다”고 말했다. 휴머노이드를 위한 산업 생태계 조성도 시급하다. 한 교수는 “앨리스만 해도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 수가 500개에 달하는데, 모든 걸 우리가 직접 만들 수는 없다”며 “휴머노이드는 수많은 부품들의 집합체인데 이를 위해서는 공급과 수요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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