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000억 이상 자산가만 상담하는 이 사람... 정연규 삼성증권 상무 “그들이 원하는 서비스가 뭐냐면요”
KB경영연구소의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을 10억원 이상 보유한 개인은 2022년 42만4000명에서 지난해 45만6000명으로 1년 새 7.5% 증가했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직전인 2019년 32만3000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과 4년 만에 13만명 넘는 자산가가 추가된 것이다. 이들이 보유한 금융자산은 총 2750조원에 달한다. 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앞다퉈 자산가 대상 서비스를 내놓는 배경이다.
그런데 최근 증권가의 눈높이는 더 높아지고 있다. 초부유층을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이른바 패밀리오피스 사업이다. 패밀리오피스는 초부유층에게 매력적인 투자 기회는 물론 가업 승계와 절세 상담, 자녀 교육, 석학 세미나 등을 제공하는 ‘거부(巨富) 종합 관리’ 서비스다. 대를 이은 부자가 많은 외국에서는 패밀리오피스가 흔한 개념이다.
한국에서는 2020년 6월 삼성증권이 증권업계 최초로 패밀리오피스 사업을 시작했다. 투자 가능 자산이 1000억원 이상인 자산가만 삼성증권 패밀리오피스의 관리를 받을 수 있다. 2024년 8월 말 기준 삼성증권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는 102가문, 자산 30조8900억원을 돌파했다. 가문당 평균 예탁금은 3000억원에 달한다. 국내 증권사 중 압도적인 1위다.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삼성증권 사옥에서 삼성증권 SNI·법인전략담당 정연규 상무를 만나 증권업계가 패밀리오피스 사업에 공들이는 이유를 물었다. 정 상무는 창업했던 회사를 매각하면서 거액을 손에 쥔 젊은 기업가 고객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들 곁에 투자·세무·부동산 등 각 분야 전문가를 전담 관리자로 붙여 자산을 불리는 일이 패밀리오피스 비즈니스의 핵심이다. 부를 이어받을 자녀 교육도 패밀리오피스 전문가들의 몫이다.
다음은 정 상무와 일문일답.
─자산가 관리가 증권사 비즈니스에서 점점 중요해지는 분위기다.
“자산가 수가 계속 늘고 있다 보니 많은 증권사가 초고액 자산가를 위한 전담 조직과 서비스를 고민하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흐름이 그렇다. JP모건·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도 초부유층 고객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국내에선 삼성증권의 입지가 확고하다.
“지난 2010년 증권업계 최초로 30억원 이상 초고액 자산가 전담 브랜드인 ‘SNI(Success & Investment)’를 도입하고 이 시장을 주도해온 결과라고 본다. 초고액 자산가 수요에 맞춘 SNI 전용 상품을 설정하고, 여러 부서가 협업해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한 게 자산가들 사이에 입소문을 탔다. 2021년에 SNI 고객 자산만 100조원을 넘어서며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확립했다.”
─젊은 창업자가 과거보다 많아져 고객 연령대도 낮아졌을 것 같다.
“맞다. 최근에는 젊은 연령대의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 오너 고객이 많아졌다. 2022년 뉴리치 전담 센터인 ‘SNI 센터(The SNI Center)’를 출범한 이유다. 이곳에서는 스타트업, 벤처캐피털(VC),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관련 고객을 위한 전문 콘텐츠와 네트워킹 기회를 많이 제공한다. 스타트업의 기업공개(IPO)와 자금 조달, 투자 유치, 인재 채용, 전략적 제휴, 정보 교류 등이 SNI 센터를 통해 이뤄진다.
올해 초에는 패밀리오피스센터 문을 열었다. 이로써 전통 부유층-신흥 부유층-패밀리오피스 고객을 모두 아우르는 슈퍼리치 자산관리 조직을 갖추게 됐다.”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는 어떻게 이뤄지나.
“고객이 처음 방문하면 담당 임원과 프라이빗뱅커(PB)가 우선 미팅한다. 고객이 자산을 관리하려는 이유가 뭔지, 어떤 걸 특히 기대하는지 등을 면밀히 파악한다. 이후 60여명으로 구성된 가문별 전담 위원회(커미티·Committee)에서 해당 가문에 가장 필요한 전문가 6~7명을 추려 전담팀을 만든다. ‘패밀리 오피서(Family Officer)’라고 부른다.
패밀리 오피서들의 전공 분야는 프라이빗 딜부터 리서치, 기업금융(IB), 세무, 부동산, 인사 등 다양하다. 이들은 전담 고객이 원하는 모든 걸 한다. 경제 상황을 분석해 기대 수익률에 부합하는 포트폴리오를 짜고, 주기적으로 성과를 보고하며 리밸런싱(투자 종목 재조정)한다.”
─초부유층인 만큼 요구 수준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그렇다. 대부분 고객이 기업 오너, 사업가, 투자자 등이다. 자금 동원력이 막강한 만큼 평범한 상품에는 만족하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삼성증권에서만 만날 수 있는 상품을 원한다. 패밀리오피스가 고객에게 기관투자자급 투자 기회를 제공하고자 노력하는 이유다. 빠른 의사결정을 토대로 거액을 태울 수 있는 딜 발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달라.
“소규모 투자자만 참여하는 클럽딜(Club Deal), 삼성증권 자기자본과 함께 투자하는 공동투자(Co-Investment) 등이 대표적인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다. 골드만삭스·칼라일·MBK파트너스 등 글로벌 탑 티어(Top Tier) 기관의 사모대체펀드를 패밀리오피스 고객에게 독점 공급한다. 국내 우량 비상장 프로젝트 딜(Project Deal), IB와 연계된 사모대출 투자 등도 고객 만족도가 높은 패밀리오피스 전용 상품이다.”
─수치로 말해줄 수 있나.
“지난해 KT클라우드·SK팜테코 등 국내 대기업 계열사의 비상장 투자 딜에 단일 기관으로는 최대 규모를 모집하며 기관투자자 이상의 핵심 출자자(LP) 역할을 맡았다. 2020년부터 지금까지 누계로 보면 1조원에 가까운 패밀리오피스 전용 상품을 모집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상장사 구조화 상품 1150억원, 해외 인공지능(AI) 반도체 비상장 기업 프로젝트 딜 710억원, 글로벌 운용사 사모대체펀드 550억원 등 2400억원 넘는 자금을 모았다. 이 중 상장사 구조화 상품은 연 5% 이상의 수익을 보장하면서 주가 상승 시 추가 수익이 가능한 구조로 설계돼 초고액 자산가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부자 중 부자의 돈을 굴리는 만큼 투자 실패 시 후폭풍도 거셀 것 같다.
“투자할 때 자산 배분은 필수다. 초부유층 투자자에게는 더욱 적용해야 하는 요소다. 자본차익 비과세를 통한 절세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저쿠폰 채권과 미국 국채 등 채권 중심의 안전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먼저 구성한다. 그다음 여윳돈으로 기관투자자가 주로 투자하는 사모대체상품 등을 통해 추가 수익을 추구한다.
그리고 패밀리오피스의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서 고수익 여부는 우선순위가 아니다. 엄격한 리스크 관리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다. 절대로 아무 곳에나 투자하지 않는다. 수많은 리스크 단계를 통과한 상품만 고객에게 제공한다. 직원들이 팔고 싶다고 가져왔다가 리스크 위원회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리젝트(reject·거부)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젊은 부유층 고객이 늘었다고 했는데, 그들만을 위한 서비스도 있나.
“해외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인베스트 콘퍼런스, CEO포럼, CFO포럼 등의 행사를 좋아한다. 투자자와 스타트업을 잇는 ‘코리아 스타트업, 스케일업 데이(KSS IR Day)’도 젊은 초부유층 고객이 선호하는 행사다. KSS IR의 경우 삼성증권에서 추천한 기업이 프레젠테이션에 참여해 투자 유치 기회를 잡는다. 이들을 VC와 연결해주기도 하고, 본사 검토 작업을 거쳐 상품화하면 삼성증권 초고액 고객이 직접 LP로 참여하기도 한다.”
─패밀리오피스 고객에게 제공되는 또 다른 특별 서비스가 있나.
“패밀리오피스 고객을 위한 맞춤형 세미나나 강의를 종종 진행한다. 고객 본인과 그 자녀를 대상으로 개최하는 세미나가 가문당 연평균 10여차례에 달한다. 이들 자녀 중 금융이 아닌 다른 분야를 전공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향후 가업 승계나 가문 자산관리에 대비한 교육 니즈가 크다. 각 수요에 맞춰 세무·부동산·경제·투자 기초·심화 학습 커리큘럼을 구성해 1:1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
또 지난 6월 18일에는 로보틱스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MIT 김상배 교수를 모시고 ‘AI와 로봇의 미래’를 주제로 대담과 토론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행사에는 패밀리오피스 고객 40여명만 참가했다. 애널리스트가 사회를 봤다.”
─상속 관련 상담 수요도 많을 듯하다.
“패밀리오피스 고객을 위한 텍스 센터가 있다. 10년 이상 경력의 노련한 세무사들이 고객 맞춤형 절세 플랜을 짜준다. 대부분 고객이 사업가인 만큼 그들에게도 전담 재무팀이 있다. 고객 회사 세무사가 주는 컨설팅과 삼성증권 패밀리오피스가 제공하는 절세 아이디어를 모두 살피면서 가장 유리한 방향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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