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섬마을 불 밝혔는데 무단 해고…한전, 노동의 가치 무시”
‘섬 발전소 불법파견’ 판결에
한전, 직고용 대신 항소
반기 든 섬 근무 184명 해고
“저임금에 애향심으로 일해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어
우린 쓰다 버리는 도구 아냐”
인천항에서 북서쪽으로 165㎞ 떨어진 인구 230명의 작은 섬, 북방한계선(NLL) 턱밑에 있는 소청도에도 전기가 들어온다.
박한수씨(61)와 아들 박시영씨(32)는 고향 소청도의 발전소에서 발전기를 돌리고 배전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었다. 정원 10명인 작은 발전소에는 위험하고 힘든 일이 많았지만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동네 노인들의 집에 전기를 공급해주는 보람이 더 컸다.
아버지와 아들은 지난달 14일 한날 한시에 해고됐다. 한국전력은 소청도를 포함한 65개 도서지역 발전소를 JBC라는 민간 하청업체에 위탁해 관리해왔다. 한전이 업무지시를 내리고 직원들도 한전 조끼를 입지만 소속은 하청업체인 ‘불법파견’이었다.
1심을 맡은 광주지방법원은 지난해 6월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한전이 도서지역 발전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한전은 직접고용을 거부하고 자회사인 한전MCS를 통해 이들을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발전노조 도서전력지부)가 반발했지만 한전은 되레 ‘한전MCS에서 일하려면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취하하라’고 요구했다. 앞으로 소송을 걸지 않겠다는 확약서도 받겠다고 했다. 이를 거부한 184명은 지난달 14일 최종 해고됐다.
“39년 동안 섬을 지켜왔는데 대가는 해고 통보였습니다. ‘고맙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한수씨가 말했다.
노동의 대가를 요구했다가 해고당한 박씨 부자를 지난 12일 인천 미추홀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985년, 경운기 모터에 벨트를 걸어 발전기를 돌리던 시절부터 소청도에서 일해온 한수씨는 “고향을 위해 불을 밝힌다는 애향심과 자부심으로 일해왔다”고 했다. 홀로 발전기를 돌리다 심근경색으로 큰 위기를 겪기도 했고, 저임금과 3교대 근무의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자리를 지켰다. 학업을 위해 육지로 떠났던 시영씨도 아버지를 따라 소청도 발전소에 들어왔다.
섬마을이 정전되거나 발전소에 문제가 생기면 어김없이 한전에서 연락이 왔다. 노동자들은 한전에 일일보고서를 올리고, 한전은 노동자들에게 e메일·카카오톡으로 명절 연휴 근무표나 안전교육 실적 자료를 요구했다. 한전 소속 노동자처럼 일했지만 하청 구조에서 임금은 쪼그라들고 노동 압박은 강해졌다.
지난해 6월 1심 법원의 불법파견 인정 판결은 이들에게 희망을 줬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끝내 직고용을 거부하고 항소에 나선 한전을 두고 한수씨는 “39년을 일했는데, 필요할 때 쓰다 버리는 도구라는 생각이 들더라”며 “노동자들에게 주면 될 돈을 대형 로펌에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자회사 직고용’이라도 소속 업체 이름만 바뀔 뿐, 처우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걸 다들 알았다.
하지만 일자리가 거의 없는 섬마을에서 생계를 포기하는 건 쉽지 않다. 많은 노동자가 한전의 제안에 흔들렸다. 도서지역 발전노동자 600여명 중 184명을 제외한 이들이 자회사 직고용을 받아들였다. 한수씨는 “한전이 약점을 이용한 것이고, 우습게 보는 것”이라고 했다.
자회사에 들어간 이들도, 거부하고 싸우는 이들도, 어릴 때부터 고향에서 알고 지낸 사이였다. 시영씨는 “발가벗고 같이 수영하면서 큰 형들”이라고 했다.
각각 집안의 가장인 두 사람은 가족들에게 한없이 미안하다. 4년 전 결혼해 30개월 아들을 둔 시영씨에게 실업급여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들 부부를 바라보는 한수씨도 가슴이 아프다. 현실에 지쳐 종종 타협을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수씨는 “부끄럽지 않은 가장이 되고 싶었다”며 “정당하게 일하면 정당하게 대우받는 사회를, 내가 못 만들더라도 바랄 수는 있지 않나”라고 했다. 시영씨는 이번 일을 겪으며 ‘노동의 가치’를 처음으로 깊게 생각해봤다. “힘들지만 떳떳한 아빠와 할아버지가 되자. 이번에는 정말 이런 일을 끝내자. 내 아들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세상을 만들어주자는 생각이에요.”
시영씨는 “요즘 지방소멸 위기라고 하잖아요. 그런 곳에서 사람들이 일하며 살게 해주지는 못할망정 내쫓는 건 섬을 죽이는 일입니다. 공기업이 그래도 되나요?”라고 했다. 섬마을 등대를 바라보며 살아온 부자는 작은 섬의 불을 밝히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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