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사장님의 ‘코리안 드림’] ①외국인 근로자에서 4개 식당 주인으로...“한국은 좋은 나라”
한국인과 결혼 후 정착, 식당 4곳 운영
“월급 많고, 안전한 한국은 좋은 나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귀화자, 이민자 2세, 외국인 등 이주 배경을 가진 인구가 총인구의 5%를 넘으면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한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한국도 다문화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은 전체 인구의 4.89%인 250만7584명을 기록했다. 역대 최다(2019년 252만4656명)보다는 적지만, 비율로는 2019년(4.87%)보다 많다. 조선비즈는 ‘코리안 드림’ 품고 한국에 온 외국인 중 자영업을 하는 이들을 만나 그들이 한국에 터를 잡은 이유,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에 대해 물었다. [편집자 주]
2023년 12월 31일 기준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근로자는 41만4806명이다. 여기서 말하는 외국인근로자는 E-9(비전문 취업) 비자와 H-2(방문취업) 비자를 가진 이들이다. 외국인근로자는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2019년(전년비 -2.7%), 2020년(전년비 -11.2%), 2021년(전년비 -4.8%)에 감소하다 2022년(전년비 3.1%)부터 증가세로 돌아섰고, 지난해에는 전년보다 4.1% 늘었다.
국가별로 E-9 비자를 소지한 외국인근로자를 따져보면 올해 3월 기준, 네팔 국적자가 4만7710명으로 가장 많다. 그 뒤를 캄보디아(4만6427명), 베트남(3만8055명), 인도네시아(3만7723명)가 뒤따랐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서 인도네시아 전문 음식점 ‘할로인도네시아’를 운영하는 배리안사 씨는 외국인근로자였다. 인도네시아 남부 수마트라 출신인 배리안사 씨는 지난 2011년 외국인근로자로 한국에 입국했다. 당시 200~300명의 사람과 같이 한국에 온 배리안사는 13년 동안 한국에 살고 있다. 1991년 생으로 20살에 한국에 온 청년은 한국 나이로 33살이 된 지금 서울 이태원과 홍대, 인천, 경북 왜관에 각각 1개씩, 총 4개의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조선비즈는 지난 4일 배리안사 씨를 만났다. 점심 장사가 막 끝나가던 할로인도네시아에는 인도네시아인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앉아 식사 중이었다. ‘사장님 계시냐’는 질문에 한국말로 “전데요”라고 말하며 배리안사 씨가 주방에서 나왔다. 자그마하지만 다부져 보이는 체구에 미소를 머금은 배리안사 씨에게서는 여유가 느껴졌다. 손님이 뜸해질 무렵 배리안사 씨가 ‘테흐 보틀(Teh botol·인도네시아 말로 ‘병에 담긴 차’라는 뜻)이라는 이름의 인도네시아산(産) 음료 한 병을 건네며 자리에 앉았다. 인도네시아인이 자주 마신다는 ‘테흐 마니스(Teh manis)라는 차를 바탕으로 한 음료로 홍차를 우려낸 물에 설탕을 탄 맛이 났다.
먼저 ‘한국말을 잘 한다’고 하자 베리안사 씨는 “주로 반말만 안다”며 멋쩍어했다. 배리안사 씨는 한국 외국인근로자로 오기 위해 한국어 시험을 봐야 했고, 석 달 동안 한국어를 공부한 뒤 한국에 왔다. 이후에는 일을 하면서 몸으로 한국어를 배웠고, 드라마로 한국어를 익혔다.
한국에 어떻게 오게 됐냐고 묻자 당연하다는 듯 “일하러 왔다”는 답이 돌아왔다. 배리안사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동안 코코넛 오일 공장에서 일하다 한국에 왔다. “일본과 비교해도 한국에서 외국인근로자로 일하는 근무 조건이 더 좋다”는 것이 배리안사 씨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은 외국인근로자에게 식사도, 숙소도 제공한다”며 “일본보다 임금도 더 많이 준다”고 했다.
배리안사 씨는 양식장에서 일했다. 경북 포항에서 6~7년, 전남 영광에서 2년 동안 일했다. 배리안사 씨는 “배를 타는 건 너무 힘들어서 하지 않았다. 배를 타면 하루에 14~16시간을 일해야 해서 정말 힘들다”며 “나는 양식장에서 하루에 12~13시간씩 일했다”고 했다. 그는 2011년 기준으로 95만 원을 월급으로 받았다.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받던 월급보다 당시 기준으로 네 배 이상 많은 금액이었다.
외국인근로자는 기본 3년에 1년 10개월을 연장해 총 4년 10개월 동안 한국에서 일할 수 있고 한 차례 연장만 가능하다. 합법적으로는 8년 20개월만 한국에 머무를 수 있다. 배리안사 씨가 추정하기로 본인과 함께 2011년에 입국했던 이들 중 30~40%는 인도네시아로 돌아갔다. 하지만 배리안사 씨는 한국에 남았다. 결혼이 결정적이었다. 배리안사 씨는 포항에서 인도네시아 출신 지인의 소개로 아내를 만나 6개월 만에 결혼했다. 결혼 시점을 묻는 질문엔 “2017년인가 2018년이었다”며 “한국 여자들은 이런 걸 잘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인도네시아 사람이 숫자에 약하다”며 웃었다. 두 사람은 2021년에 쌍둥이 딸도 얻었다. 현재 배리안사 씨가 갖고 있는 건 결혼비자다.
배리안사 씨는 결혼 이후에도 양식장에서 일했다. 그러다 아내와 식당을 차리기로 했다. 다만 “어떻게 식당을 시작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며 “먹고 살아야 하니까 뭘 해볼지 고민하다가 식당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예상과 달리 “식당을 열기 전까지 요리에 큰 흥미가 없었다”는 배리안사 씨는 “내가 한 음식이 어떤 사람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식당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며 “주변에서도 ‘네가 식당을 한다고?’라는 반응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이태원에 처음 문을 연 인도네시아 식당 ‘박소린두깜풍’은 인기를 끌었다. 이태원에서 식당이 잘 되자 인천과 왜관에 식당을 또 열었다. 이태원을 선택한 것은 인근에 이슬람 사원이 있기에 인도네시아 음식점을 찾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고, 인천과 왜관은 외국인근로자가 많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올해 2월 홍대 인근에 식당 문을 또 열었다. 최근 들어 홍대에 외국인이 많이 오가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외식업체 폐업률이 20%가 넘는 상황에서 배리안사 씨가 식당을 추가로 내기로 한 결정은 눈에 띈다. ‘맛이 비법이냐’는 질문에 배리안사 씨는 “한국에 없는 인도네시아 소스는 현지에서 공수하지만, 한국식으로 맛을 맞추기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양이 많다”고 했다. 실제로 이날 먹어본 나시고랭 양은 여타 식당의 1.5배 이상이었다. 인터넷 후기에도 “양이 엄청나다”, “사장님이 현지인이라 현지 맛이 난다”, “현지 맛을 가장 비슷하게 낸다”라는 등의 후기가 올라와 있다.
그렇다고 식당 운영이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게 배리안사 씨의 말이다. 처음에 식당 문을 열었을 땐 아내와 둘이 거의 하루 종일 일했다. 배리안사 씨는 “양식장에서 일할 때보다 더 오래 일했다”며 “주변 사람들은 나보고 ‘사장님’이라고하지만, 그건 겉만 보고 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여기다 직원을 관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배리안사 씨는 “인도네시아인이 전체 직원의 90%”라며 “직원을 구하는 것부터 나와 맞는 사람이랑 함께 일하는 것도 힘든 일”이라고 했다.
배리안사 씨는 이야기 중간중간 나름의 경영 철학도 이야기했다. 서울 이태원과 홍대 식당 이름이 다른 것이 대표적이다. 배리안사 씨는 “이름이 같으면 한 곳이 장사가 안될 때 다른 곳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지역별로 식당 이름을 다르게 쓰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효율성을 위한 경영방침도 소개했다. 일례로 준비에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미트볼은 공간이 넓고 배달 중심인 인천 식당에서 일괄로 만들어 이태원, 홍대에 공급한다.
배리안사 씨는 ‘’한국은 당신에게 어떤 나라냐’는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더니 “좋은 나라”라고 간단 명료하게 답했다. 그는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기자에게 “인도네시아보다 월급도 많고, 범죄율도 낮으니 얼마나 좋냐”고 되물었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선 오토바이를 주차해 놓고 고개만 돌려도 도둑맞기 일쑤”라며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나쁜 게 아니라 먹고 살아야 하는데 일이 없어서 벌어지는 일이다. 한국 카페에선 노트북을 놓고 자리를 비워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다. 한국이 부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앞으로 목표는 뭘까. 배리안사 씨는 “서울에만 4개, 구미에 1개의 식당을 더 여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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