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디, 파, 보기의 탄생[골프 트리비아]
보기는 스코틀랜드 도깨비 ‘보글’서 비롯돼
파는 주식시장 액면가···미국서 개념 정립
1903년 12월 겨울바람이 강하던 어느 날. 애브너 스미스라는 골퍼가 미국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 컨트리클럽의 12번 홀 티잉 구역에 섰다. 그의 티샷이 페어웨이를 갈랐다. 이어 페어웨이에서 친 두 번째 샷은 홀 바로 옆에 붙으면서 손쉽게 1타를 줄일 수 있게 됐다. 그러자 일행 중 한 명이 “정말 대단한 샷이었어(That was a bird of a shot)!”라고 소리쳤다. 스미스 일행은 이 한 마디가 역사가 될 줄 몰랐다.
미국에서 당시 버드(bird)는 속어로 ‘훌륭한’ ‘뛰어난’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스미스 일행이 외친 ‘버드 오브 어 샷(bird of a shot)’은 점차 ‘버디(birdie)’로 변형되면서 1언더파를 의미하게 됐다. 애틀랜틱시티CC는 버디가 처음 울려 퍼졌던 그 자리에 표지석을 세워 기념하고 있다.
애틀랜틱시티에서 탄생한 버디는 1913년에는 새처럼 날아 애틀랜틱 오션(대서양)을 건넜다. 찰스 다윈의 손자이자 유명 골프기자였던 버나드 다윈이 미국을 방문한 뒤 잡지 ‘컨트리 라이프’ 9월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영국인이 버디가 한 홀에서 1언더파를 쳤다는 걸 이해하려면 아마 하루 이틀은 걸릴 것이다.”
스미스와 애틀랜틱시티CC의 업적은 버디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들은 나중에는 2언더파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그들은 일반 새보다는 훨씬 멋져야 한다는 점에 착안해 독수리를 떠올렸고, 2언더파는 이글로 불리기 시작했다.
보기와 파도 처음부터 있었던 용어는 아니다. 1890년 영국 코번트리 골프클럽의 책임자였던 휴 로더햄은 실력이 뛰어난 골퍼가 각 홀에서 기록해야 할 타수를 표준화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영국 서부 해안에 있는 그레이트 야머스 클럽의 브라운 박사는 이 아이디어를 채택했다. 클럽 멤버들의 동의를 얻어 매치플레이에 도입했다. 한 경기에서 찰스 웰먼 백작이 브라운 박사에게 “당신네 클럽 선수들은 실력이 좋은 ‘보기 맨’입니다”라고 추켜세웠다. 이 말은 당시 영국에서 유행한 노래 ‘서두르세요! 보기 맨이 와요(Hush! Hush! Hush! Here Comes the Bogey Man)’라는 노래에서 유래했다.
보기 맨은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보글(bogle)’이라는 단어에서 비롯됐다. 보글은 스코틀랜드 도깨비를 의미했고, 보기 맨은 도깨비나 악마에 널리 사용됐다. 보기 맨은 골프에 적용되면서 한 홀에서 기록해야 할 타수 즉, 오늘날의 파와 같은 의미로 사용됐다.
파는 주식시장의 용어 액면가(Par Figure)에서 유래했다. 1870년 영국 골프 작가인 AH 돌먼은 프레스트윅에서 골프 전문가 데이비드 스트라스와 제임스 앤더슨에게 당시 디 오픈에서 우승하려면 몇 타를 기록해야 하는지 물었다. 스트라스와 앤더슨은 프레스트윅의 12개 홀에서 49타를 쳐야 우승자에게 주어지던 챌린지 벨트를 얻을 수 있다고 답했다. 돌먼은 49타를 프레스트윅의 ‘파’로 정했고, 영 톰 모리스는 3라운드 36홀 경기에서 149타를 쳐 2오버파(two strokes over par)로 우승했다.
영국에서 파는 보기보다 앞서 사용됐지만 오늘날과 같은 홀의 기준 타수 개념이나 표준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파의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한 건 1911년 미국골프협회(USGA)에 의해서다. USGA는 파를 결정하기 위한 현대적인 홀의 거리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225야드까지의 홀은 파3, 226~425야드 홀은 파4, 426~600야드 홀은 파5, 601야드 이상은 파6 홀이 됐다.
골프가 발전함에 따라 실력이 뛰어난 아마추어 골퍼나 프로 골퍼들은 보기보다 더 낮은 스코어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홀에 대한 거리의 표준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국은 보기 기준을 정하는 작업을 각 클럽의 자율에 맡겼다. 결국 영국의 보기 개념은 프로 골퍼에게 적합하지 않게 됐다. 이후 미국은 1오버파를 보기로 언급하기 시작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버디가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날아간 9월이다. 지난주에는 여자골프 미국과 유럽의 대항전인 솔하임컵이 열렸고, 다음주에는 미국과 인터내셔널팀의 남자골프 대항전인 프레지던츠컵이 열린다. 둘 다 매치플레이 방식으로 치러진다. 골프는 본래 두 사람 또는 팀의 대항전인 매치플레이 방식이었다가 현대에 들어 스트로크플레이가 주류가 됐다. 스트로크 방식의 도입으로 타수를 세기 시작하면서 보기, 파, 버디 등도 만들어졌다. 매치플레이에 대해 생각하다 용어의 탄생까지 이어진 가을 잡념을 정리해봤다.
김세영 기자 sygolf@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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