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핵심서 진보와 교류한 ‘시대의 조정자’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서울신문 편집국장과 주필을 지낸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지난 16일 별세했다.
보수 정권 핵심으로 있으면서도 진보와의 교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밖에 '스튜던트 파워', '모래 위에 쓰는 글', '정치인을 위한 변명', '문제는 리더다', '남재희가 만난 통 큰 사람들', '진보 열전 남재희의 진보인사 교유록 오십년' 등의 저서가 있으며 새마을훈장 근면장과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보수 정권서 노동부 장관 등 역임
공권력 아닌 협상으로 현안 풀어내
서울신문 편집국장과 주필을 지낸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지난 16일 별세했다. 90세.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청주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58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1962~ 1972년 조선일보 기자와 정치부장, 편집부국장을 거쳐 1972년 서울신문 편집국장, 1977년 서울신문 주필을 지냈다. 1979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서울 강서구에 출마해 제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13대까지 4선을 했다.
1980년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해 정책위의장을 두 차례 역임하는 등 전두환 정권의 핵심 정치인으로 활약했다. 당시 두 딸이 운동권 학생이라는 점이 화제를 불렀다. 1986년 3월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다. 고인이 벽으로 던진 술잔 파편이 군 장성에게 맞은 것이 일이 커지는 계기가 됐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3~1994년 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1994년 현대중공업 파업을 공권력 투입이 아닌 협상으로 풀어냈다. 5년간 호남대 객원교수로 지내면서 정치 문제를 강의했다.
보수 정권 핵심으로 있으면서도 진보와의 교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자신을 ‘체제 내 리버럴’이라고 표현했고, 유족에 따르면 한 시인은 ‘의식은 야(野)에 있으나 현실은 여(與)에 있었다/ 꿈은 진보에 있으나/ 체질은 보수에 있었다’고 쓴 적도 있다.
지난해 초에는 ‘시대의 조정자’라는 저서를 펴냈다. 이 밖에 ‘스튜던트 파워’, ‘모래 위에 쓰는 글’, ‘정치인을 위한 변명’, ‘문제는 리더다’, ‘남재희가 만난 통 큰 사람들’, ‘진보 열전 남재희의 진보인사 교유록 오십년’ 등의 저서가 있으며 새마을훈장 근면장과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변문규씨와 4녀(화숙·영숙·관숙·상숙), 사위 예종영·김동석씨 등이 있다.
장진복 기자
Copyright © 서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외국인 미혼모 “韓 유학왔다 감금·성폭행당해 임신…탈출 후 애 낳았다”
- “눈썹이 다른데요?” 실수로 바뀐 딸…“신생아는 매일 변한다” 태국 병원의 황당 변명
- ‘9세 연하♥’ 조세호, 웨딩화보 공개…부케 들고 ‘행복 미소’
- “내비 안내대로 갔다가 논길에 5시간 갇혔다” 귀경길에 낭패
- [속보] 아라뱃길서 50대 남성 시신 훼손 상태로 발견
- 블랙핑크 제니, LA 목격담…함께 있던 남자 아이돌 정체 보니 ‘깜짝’
- “이게 한국 명동 맞나” 보관대 놓인 음료 족족 마셔버린 남성(영상)
- 김연아♥고우림, 한옥 데이트 사진 공개 “풍성한 한가위”
- 학생들 지하실로 부르더니 ‘문신’ 겁박…무시무시한 학원
- 상위 10% 유튜버·BJ 연봉 보니 ‘깜짝’…“하위 10%와 빈부격차 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