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눈물 닦아줘야 해요"…자전거와 함께 사라진 6세 소녀

김학진 기자 2024. 9. 1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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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근처 공터서 놀다 실종…주위엔 술 마시던 아저씨들[사건속 오늘]
아무런 단서 없이 '증발'…해외 입양 가능성도, 살아있다면 현재 25세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부모님을 참 잘 따르고 동생을 먼저 챙기던 착한 아이, 어린 나이에도 자기 이름 쓰기는 물론 집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모두 외울 정도로 영특했던 그 아이는 20년 전 오늘 자기가 가장 아끼고 좋아했던 자전거와 함께 홀연히 사라졌다.

그날 이후 아이 가족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밤낮 할 것 없이 주유소와 대리운전 기사 일 등을 병행하던 아버지는 일을 그만두고 아침 일찍부터 딸의 실종 전단을 돌리며 하루를 시작했고, 어머니는 누군가에게 딸에 대한 연락이 오면 전국 어디든지 찾아가며, 답답한 마음에 심지어 역술인까지 찾아가 굿판까지 벌이며 딸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 부모님 맞벌이로 식당 운영하는 큰어머니 집 오가며 자라

추석 연휴를 1주일 앞둔 2004년 9월19일 낮 12시 30분쯤. 경기 광주시 역동에서 실종된 아이의 이름은 우정선(6)이었다.

우 양은 둘째를 출산한 후 부모가 맞벌이를 시작하게 되자, 순댓국밥집을 운영하는 큰어머니댁에 맡겨져 집과 큰집을 오가며 자랐다. ​ 실종 당시 우 양은 평소처럼 큰어머니의 식당 근처의 공터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며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큰어머니는 아이가 공터에서 노는 것을 가끔 한 번씩만 확인할 뿐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게다가 공터는 인적이 드문 곳도 아니었고, 당시 공터 근처에는 동네 아저씨들 몇 명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 "아저씨 눈물 닦아줘야 한다"…큰어머니가 본 마지막 모습

그러던 중 우 양이 갑자기 가게 안으로 들어와 휴지를 뽑아 들고 나가며 다급한 말투로 "아저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닦아줘야 한다"고 큰어머니에게 말하곤 부리나케 밖으로 나갔다.

이는 술을 마시던 한 아저씨의 눈에 막걸리가 튀어, 그것을 본 우 양이 아저씨가 눈물을 흘렸다고 착각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큰어머니는 당시 바쁜 와중이었지만 이런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자신이 우 양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 "아이만 돌려보내 주면 책임 묻지 않겠다" 전단 돌리며 수소문 ​ 식당은 늘 많은 손님으로 분주했다. 그렇게 긴 시간 바쁜 가게 일을 마친 큰어머니는 공터로 나가봤지만 우 양은 타고 있던 자전거와 함께 사라지고 없었다.

큰어머니는 불길한 예감에 우 양을 애타게 찾아 나섰지만 아이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날 아이의 가족은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고 경찰은 바로 다음 날부터 수사본부를 편성 수색작업에 돌입했다.

경찰과 가족들은 인근 지역을 쥐 잡듯이 뒤졌으나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아이는 공터에서 어떠한 단서도 남기지 않은 채 자전거와 함께 말 그대로 증발해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런 단서도 없이 무작정 벌이는 수사에서 우 양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다. 수사는 답보상태에 빠졌고, 가족과 경찰은 아이를 찾기 위해 전단을 돌리기 시작했다.

전단에는 "우리의 아이를 돌려만 보내주신다면 아무런 원망도, 책임도 묻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 절망에 빠진 가족들…실낱같은 제보들 하나둘 들려오지만

사건 당일은 화창한 일요일 오후였고, 인근에서 마라톤 대회가 있었다는 점들은 목격자들을 찾기에 충분한 조건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사는 제자리만 맴돌았다. 그렇게 우 양이 실종된 날짜가 하루, 이틀 계속 흘러가며 가족들의 불안감은 절망감을 지나 무력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이가 어디서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 채 시간을 지우며 고통 속에 나날을 보내던 중 가족들에게 하나둘 실낱같은 희망을 안겨주는 제보들이 들어오기 시작됐다.

첫 번째는 실종 당일 오후 1시쯤 근처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신원 미상의 남자와 우 양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는 제보였다.

두 번째는 같은 날 저녁 8시쯤 실종 장소에서 차량으로 20분 정도 떨어진 한 식당 앞에서 혼자 울고 있는 정선 양을 봤다는 제보였다.

​세 번째 제보는 광주시 초월읍 늑현리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초라한 행색에 울고 있는 정선 양을 웬 30대 남자가 달래고 있었다는 목격담이었다.

(풀려난 용의자 A 씨.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 첫 번째 제보에서 지목된 신원미상 50대 남성 결국 찾지 못해 ​ 경찰은 이 같은 제보를 토대로 다각도로 수사를 벌였지만, 첫 번째 제보에서 지목된 50대 신원미상의 남성은 찾지 못했고 자전거 등이 발견되지 않으며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할 수 없었다.

이후 경찰은 계속된 수사 결과 50대 남성 A 씨를 유력용의자로 지목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A 씨는 우 양이 자전거를 타고 놀았던 공터 앞 슈퍼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또 평소 우 양에게 과자를 사 주거나 용돈을 주는 등 안면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전과 7범'의 전과자였다. ​ 그러나 A 씨는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고 직접적인 증거 없이 심증만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했기에 결국 그는 풀려났다.

가족들의 간절한 마음이 결국 하늘에 닿지 못했던 것일까?

A 씨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뒤 가족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백방으로 발품을 팔며 딸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간간이 들려오는 희미하고 불명확한 제보들은 아직 아이가 살아 있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과 궁금증만 던져 준 채 사실상의 수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이후 긴 시간 더 이상의 뚜렷한 제보는 들어오지 않았고, 아이의 행적을 쫓을 만한 어떠한 단서도 발견되지 않은 채 현재까지 장미 미제로 남게 됐다.

(남한산성서 발견된 백골 시신,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 2023년 남한산성서 의문의 백골 시신 발견, DNA는 불일치

2023년 4월 22일 오전 11시 40분경 단체로 등산하던 대학병원 의사들은 남한산성 등산로 성벽 앞에서 우연히 뜻밖의 물체를 발견하게 된다.

하얀색 돌 같은 매끈한 물체가 땅속에 묻힌 채 일부만 드러난 모습이었다. 불길한 예감에 땅을 파자, 사람의 머리뼈로 추정되는 백골이 발견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전신 거의 그대로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로 매장돼 있었다. 감식 결과 만 5세 아동의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성별이나 사인, 매장 시기도 추측하기 어려웠다.

경찰은 5세 어린아이라는 점에 관할지역 장기 실종아동 중 한 아이인 우 양을 추려내고 치아 상태를 비교 분석 함과 동시에 어머니에게 DNA 재취를 요청했다.

시신과 우 양은 모두 어금니에 충치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신경 치료를 받았던 우 양과 달리, 백골 시신에서는 치과 치료시 생기는 인공충전재 등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DNA를 대조한 결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정선 양의 어머니,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 해외 입양 가능성도, 현재 25세 되는 추정 모습도 공개

당시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수사 초기 용의자를 너무 빨리 특정한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2024년 1월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AI 기술을 적용, 2024년 25살 성인이 되었을 우정선 양의 현재 추정 모습이 공개됐다.

당시 실낱같은 희망으로 20년을 버텨왔던 우 양의 어머니는 해당 방송을 통해 남한산성에서 발견된 백골의 DNA 분석 결과가 나오기 전에 "백골의 신원이 내 딸로 결론지어질까 봐 두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우 양의 생존 가능성에 대해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해외로 불법 입양을 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가능성과 더불어 어렸을 적의 기억을 잊고 양부모 밑에서 살아있을 가능성에 대한 의견도 제기됐다.

만약 아직 살아 있다면 20대 중반의 성인이 돼 있을 우정선 씨가 직접 DNA를 등록해 스스로 가족을 찾아 나서는 날만 기대할 뿐이다.

(AI로 복원한 우정선 양의 현재 추정 모습.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khj80@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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