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의무수입 중단하자는데…
공급과잉·가격하락 주범 지목
수출국과 약속…파기 어려워
본격적인 수확기를 앞두고 쌀값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쌀 수입을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매년 의무수입하는 쌀이 공급과잉을 부추겨 쌀값을 떨어뜨린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외국산 쌀이 가격 하락의 주범이 아닐뿐더러 수입을 중단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전국 곳곳에선 지역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쌀값 보장과 쌀 수입 중단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전국농민회 부산경남연맹 진주시농민회는 4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수입 쌀을 무조건 들여오며 쌀이 남아도는 것은 농민 탓이라고 한다”며 “연간 국내 생산량의 11%에 달하는 수입 쌀이 밀려와 공급과잉을 불러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방 의회도 가세했다. 전북도의회는 3일 임시회 본회의에서 ‘쌀값 폭락 부추기는 쌀 의무수입 중단 건의안’을 채택했다. 최미희 전남 순천시의회 의원은 6일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통계치를 보면 쌀 수입이 필요하지 않은데도 매년 40만8700t의 쌀이 의무수입 물량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지적하며 쌀 수입 중단을 촉구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10일 ‘2024년산 쌀 수확기 수급안정대책’을 내놓은 뒤에도 이런 요구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올해도 공급과잉이 반복될 것이란 불안감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쌀 수입을 중단할 수 있을까. 정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못 박는다. 무엇보다 의무수입 물량을 바탕으로 세계무역기구(WTO) 설립협정을 맺은 5개 수출국과의 약속을 마음대로 깰 수 없기 때문이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 이후 우리나라는 20년간(1995∼2014년) 쌀 관세화를 유예하는 대가로 의무수입 물량 격인 최소시장접근(MMA) 물량을 수출국들에 허용했다. 이때 최종 확정된 40만8700t의 물량이 2015년 관세화 전환 이후에도 계속 유지돼 저율관세할당(TRQ) 방식으로 사실상 의무수입되고 있다.
의무수입 물량에 대한 국별 할당량(쿼터)은 2004∼2014년 유지되다가 쌀 관세화를 단행하면서 총량(글로벌) 쿼터로 전환했다. 어느 나라건 국제 입찰을 통해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국가가 우리나라에 쌀을 수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의 제기 5개국(기존 국별 쿼터 보유 4개국+베트남)이 관세율 검증협상에서 국별 쿼터 부활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결국 쌀 관세율 513%를 지키는 대신 국별 쿼터를 내주기로 하면서 2020년 1월부터 5개 수출국 쿼터에 대한 협정이 발효됐다. 국별 쿼터는 ▲중국 15만7195t ▲미국 13만2304t ▲베트남 5만5112t ▲태국 2만8494t ▲호주 1만5595t이며, 나머지 2만t은 총량 쿼터로 남겨뒀다. 협정이 발효된 지 10년이 경과하는 2030년에는 국별 쿼터만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모든 국가의 동의가 필요해 조정 가능성이 낮다.
결국엔 현상 유지만 가능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비단 쌀 수출국과의 문제뿐 아니라 지금의 의무수입 물량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쌀 관세율 513%를 지키고 있는데 이걸 흔들면 관세율이 (하향) 조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쌀 관세화와 관련해 1995∼2004년 WTO 쌀 협상부터 2005∼2014년 재협상, 2015∼2019년 관세율 검증협상 등 아주 오랜 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쌀 수입문제는 큰 담론”이라며 “여기에 다시 많은 에너지를 쏟은 만큼 실익을 얻을 수 있을지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수입 쌀을 쌀값 하락 요인으로 보지 않는다. 수입 쌀은 대부분 가공용으로 활용해 국내 밥쌀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의무수입 물량 40만8700t 가운데 4만4000t가량을 밥쌀용으로 쓴다.
농식품부는 “밥쌀용으로 소비되는 외국산 중 일부는 국내 외국인들이 주로 찾는 장립종 등으로 국산 밥쌀과 다르다”며 “우리나라 쌀과 유사한 중립종 수입 쌀은 2023년 수확기 이후부터는 극소량만 시장에서 소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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