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상암벌 잔디'에 죄가 없다…국내 '콘서트장 생태계'가 문제
웸블리 스타디움·닛산 스타디움 잔디 관리 등 참고 필요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톱 가수 겸 배우 아이유(IU·이지은)의 서울월드컵경기장(상암벌) 입성을 앞두고, 경기장 잔디 문제로 K팝 업계와 축구계에서 동시에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아이유는 오는 21~22일 이곳에서 '2024 아이유 HEREH 월드 투어 콘서트 앙코르 : 더 위닝'을 연다.
과거 서태지, 지드래곤 단독 콘서트와 대형 음악축제 '현대카드 시티 브레이크' 등이 펼쳐진 이곳에서 올해만 해도 아이유 이전에 대세 그룹 '세븐틴', 톱 가수 임영웅이 공연했다.
그런데 이달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북중미월드컵 3차 예선 팔레스타인 전이 졸전으로 치러진 뒤 축구 국가대표 캡틴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FC)이 이곳 잔디 문제를 지적하면서, 아이유에게 불똥이 튀었다. 일부 누리꾼은 아이유의 콘서트를 취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마치 서울월드컵경기장 잔디 문제 책임이 아직 콘서트를 치르지 않는 아이유에게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형국이다. 아이유 소속사 이담 엔터테인먼트는 이런 여론을 일찌감치 인지하고 잔디 관리에 각별히 신경 쓰겠다고 누누이 밝혀왔다.
서울시는 결국 지난 14일 아이유 콘서트는 이미 티켓이 전석 매진돼 계획대로 열린다며 "콘서트 등 문화행사 대관을 금지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콘서트 관람에 대한 수요가 있고 현재 서울에 2만명 이상 관람객을 수용할 대형 공연장이 없어 내년부터 그라운드석 판매를 제외한 부분 대관만 허용하기로 했다"는 입장을 냈다.
그럼에도 일부에선 서울월드컵경기장 잔디 훼손의 가장 큰 원인을 K팝 콘서트에게 돌리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8월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다.
이 콘서트가 계획 없이 급작스럽게 열리면서 잔디 보호 장치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훼손된 잔디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당시 차질을 빚던 잼버리 대회에 구원투수로 나섰던 이들이 K팝 아티스트·기획사 관계자였다. 이 콘서트의 주최가 K팝 기획사나 관계자가 아니었지만, 뭉뚱그려 '잼버리 K팝 콘서트'로 명명하는 것 자체가 K팝계에 책임을 지우려는 인상이 짙다.
이번 상암벌 잔디 문제도 마찬가지다. 평소 국내 여론은 K팝이 국위선양에 앞장서고 있다며 치하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작 K팝이 처한 국내 생태계는 톺아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아이유가 꼭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열어야 하냐고 물음을 던지는 이들이 있다. 아이유 같은 아낌없이 콘서트에 제작비를 쏟아붓는 거물급 뮤지션의 공연 규모를 감당할 수 있는 국내 4~5만석가량의 스타디움은 올림픽주경기장과 서울월드컵경기장 정도다.
콘서트 관객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곳으로 대형 K팝 콘서트가 주로 열렸던 잠실주경기장은 지난해 8월부터 리노베이션에 들어가 서울월드컵경기장 수요가 몰리고 있다. 그간 잔디훼손 문제로 대관이 까다롭기로 알려진 곳이지만 올림픽주경기장 공사, 국내 콘서트장 부족 등과 맞물리면서 점차 문턱을 낮춰왔다. 세븐틴과 싸이가 공연한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 애초 청음회을 표방했다 콘서트가 된 미국 힙합스타 카녜이 웨스트 내한공연이 열렸던 고양종합운동장, SM타운·조용필 콘서트 등이 열린 '빅버드' 수원월드컵경기장 등이 대안으로 통하지만 교통, 시설적인 측면 등에서 일순위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K팝 업계의 관심이 쏟아진 CJ라이브시티의 K-컬처밸리 사업이 무산된 것이 뼈아프다. 다행히 CJ라이브시티가 K-컬처밸리 사업 중 K팝 전용 아레나 사업의 재개는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
외국 사례는 어떤가…웸블리 스타디움·닛산 스타디움 벤치마킹 필요
웸블리 스타디움은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이 홈구장으로 사용하는데 현지 축구 성지이자 콘서트계 성지이기도 하다. 이곳은 국내 음악 팬들에게도 익숙한 장소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하이라이트인 1985년 자선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가 펼쳐졌던 곳이자, 글로벌 슈퍼 K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019년 한국 가수 처음으로 두 차례 공연해 큰 화제가 됐다. 올해 여름엔 미국 팝 슈퍼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여덟 차례 공연하며 솔로 가수 단일 투어 최다 공연 신기록을 썼다. 15년 만에 재결성을 선언한 브릿팝 전설 '오아시스'가 내년 이곳에서 네 차례 공연도 예정했다.
이처럼 웸블리 스타디움은 유명 팝스타의 콘서트 등을 통해 세계적인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방탄소년단이 공연할 당시 손흥민이 속한 토트넘 홋스퍼 FC가 이곳을 임시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방탄소년단 공연으로 잔디가 훼손된다고 일부에서 지적하자 토트넘은 "축구 비시즌 동안 웸블리에서 콘서트가 일상적으로 열려왔다"며 방탄소년단을 환영한다고 반응했다. 그해 여름엔 방탄소년단을 시작으로 스파이스 걸스, 본 조비, 이글스, 핑크 등이 이곳에서 공연했다.
그럼 웸블리 스타디움의 잔디는 어떻게 관리될까.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소유한 이곳은 홈페이지 등에 잔디 상태에 대해 꾸준히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웸블리 스타디움은 여름 시즌마다 콘서트를 열어 약 50만명이 다녀갔는데도 잔디가 멀쩡하다. 작년 8월 웸블리 스타디움 홈페이지에 업로드된 자료에 따르면, '레이 앤드 플레이(Lay and Play)'라 불리는 하이브리드 카펫 잔디 경기장 같은 최신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이곳 잔디는 경기장에서 수백 마일 떨어진 잔디 농장에서 재배된다. 이곳에서 720롤 이상이 여러 대의 트럭에 실려 경기장으로 운반된다. 각 롤은 길이 10m, 폭 1.2m로 이를 경기장에 설치하는데 60시간이 걸렸다.
웸블리 스타디움의 그라운드 매니저인 칼 스탠들리는 "레이 앤 플레이는 웸블리 스타디움과 같은 다목적 경기장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전에는 축구 경기를 위해 경기장을 준비하는 데 콘서트 후 최대 5주가 걸렸다. 지금은 단 5일 만에 끝낼 수 있다"고 했다. "경기장 밖에서 잔디를 재배한다는 건 콘서트와 축구 경기 사이 경기장이 회복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웸블리가 세계적인 수준의 이벤트의 글로벌 개최 수요에 계속 부응할 수 있는 이유"라고 부연했다.
웸블리 스타디움 팀은 이를 위해 3년 이상의 연구와 개발을 했다. 잔디가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는데 14주가 걸리는데 태양, 물, 영양소의 특정 조합을 테스트해 이 같은 모형을 완성했다. 스탠들리 매니저는 "재배 시간, 운송 중 손상 가능성, 경기장에 들어왔을 때의 반응 등 프로세스의 모든 단계를 테스트해야 했다. 모든 단계를 면밀히 모니터링한다"고 강조했다.
오래된 잔디의 재활용 문제에도 신경 쓰는 등 지속 가능성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잔디, 모래, 플라스틱을 분리해 잔디는 자연적으로 분해되고 모래는 재사용한다. 플라스틱은 녹여 스포츠 팀의 장비를 생산하는 데 사용한다.
올해 세븐틴, 트와이스 같은 인기 K팝 그룹이 공연한 닛산스타디움의 잔디 관리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2004년 일본의 자동차 기업 닛산이 명명권을 얻은 이곳은 요코하마 F. 마리노스 홈구장이다. 이곳에서도 축구 경기, 콘서트가 병행해서 열리는데 홈페이지 등에 '잔디 관찰 일기'를 공유하며 잔디 상태를 꾸준히 축구 팬들에게 알리고 있다.
예컨대 2022년 7월 일본 인기 아이돌 그룹 '슈퍼 에이트'(옛 칸쟈니∞)가 18주년을 기념해 닛산 스타디움에서 두 차례 콘서트를 열었는데, 이후 잔디의 회복 상태를 자세한 설명과 함께 전달했다. 그해 '슈퍼 에이트'까지 세 번의 콘서트가 이곳에서 펼쳐졌고 콘서트 후엔 잔디 보호재를 설치했다고 전했다.
"일조량 부족과 습기로 인해 다소 노랗게 변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매번 콘서트가 개최되는 시기와 잔디 상태, 전후 이용 등 다양한 요건을 고려해 계획을 수립하고 잔디 보호재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슈퍼 에이트 콘서트에선 가장 대중적인 잔디 보호재인 테라플러스와 그물을 조합해 사용했다고 했다. 임영웅 측이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서울월드컵경기장 공연 당시 이 테라플러스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상과 접하는 원형 다리 부분은 하중을 받고 있어 흔적을 남기지만, 전체적으로 하중이 가해지지 않기 때문에 잔디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 주는 장치로 알려졌다. 슈퍼 에이트 콘서트 이후 2주 만에 J리그가 예정돼 있어 당시엔 테라플러스 아래 완충재까지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닛산 스타디움 측은 "현재 잔디 보호재와 완충재는 여러 종류의 조합 패턴이 있어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이만큼 구분해서 사용하는 곳은 우리 뿐이 아닐까"라고 자부했다.
물론 우리도 잔디 관리에 아무 노력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서울시설공단은 3년 전 10억원을 들여 천연·인조잔디를 섞은 하이브리드 잔디를 새로 깔았다. 이 잔디는 15~24도 사이에서 잘 자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30도를 넘는 폭염이 이어지면서 잔디밀도가 60%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잔디는 축구경기장의 얼굴로 더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아울러 K팝 아티스트의 인지도 등을 활용해 브랜딩에 나서는 유연한 자세도 갖춰야 한다는 아이디어 제안도 있다. 웸블리·닛산 스타디움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K팝 기획사 콘서트 부문 관계자는 "국내 여건상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콘서트 주최를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멀리 내다보고 웸블리 스타디움처럼 체계적인 기술 개발과 계획이 필요하다"면서 "K팝 콘서트 주최는 경기장 운영에도 도움이 되는 만큼, 잔디를 최대한 보호하면서 경기장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찾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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